화가 ElGreco15141614와 근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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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Greco(1514-1614)와 근대성
16 세기 유럽 회화가 그 특징으로 질서와 조화를 위한 형식적 규범을 찾는 고전적 태도를 내세운다면 그것은 그 세기초에 나타난 극소수의 이탈리아 작가들의 작품에 한정시킬 수 밖에 없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은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의 초기 작품과 마찬가지로 최소한도 그 범주 속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작가의 후기 작품을 보면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여러 곳에서 고전적 범주를 벗어나는 요소들을 보게 된다. 어딘가 의도적이고 어딘가 과정된 것 같고 어딘가 부자유스러운, 한마디로 비고전적인 요소들을 놀랍도록 많이 찾아내게 된다. 비고전적 특징은 한동안 후기 르네상스적, 또는 전기 바로크적, 또는 매너리즘적이라고 불려 왔다. 진정한 뜻에서 이들은 같은 시기에 유사한 경향을 가졌지만 상호 약간의 차이점을 띤 복합적인 방향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매너리즘적인 작품은 상당한 기간 동안 말기적 또는 퇴폐적이고 비창의적인 것으로 과소평가되어 왔다.
20 세기초에 접어들어서야 막스 드보르작을 위시한 학자들에 의해 이런 부정적 시대 개념이 지양되고 매너리즘은 독자적인 하나의 미술 양식으로 재평가되었다. 피렌체의 폰토르모에서 출발하여, 파르미지아니노, 로소 피오렌티노, 브론치노, 후기의 미켈란젤로, 틴토레토, 쥬제페 아르침볼디, 엘 그레코, 몬수, 바사리로 이어지는 16 세기의 예술가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들은 그와 같은 비고전적인 경향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커다란 주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한 역사적 시기의 작가들이라는 매너리스트들로서의 평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그들의 진정한 예술 세계 때문에 현대인의 커다란 공감의 대상이 되어 현대에 와서 재발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시대어로서 모던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이 매너리즘의 시대는 그런 뜻에서 이전의 가치 체계에 대한 하나의 반역의 시대로서 그런 특징이 생활 감정과 예술 전반에 다 함께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비고전적 내지는 반고전적인 것으로 주관주의와 기능주의를 그 근본 성격으로 한다. 그것은 주지주의적인 시대에 반주지주의로, 합리주의적인 시대에 반합리주의로 등장해 전자에 반대 입장을 가지면서 공존했다. 이런 특유한 현상은 르네상스 시대가 이상적인 고전적 예술이 개화될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된 시대였다는 통념을 깨뜨리고 사실상 얼마나 실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던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의 서양 미술에는 고전적 미술과 그것이 표방하는 질서와 균형과 적당한 척도의 절도 있는 시대에 혹은 공존하고 혹은 교체해 가면서 그에 반대되는 가치 체계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말해 주는 것이 된다.
미술과 반종교개혁
15세기 말, 로마 가톨릭 교회는 유럽에서 실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고, 그로 인해 교회의 지나친 부와 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1517년 독일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교회의 폐단을 지적하며 개혁을 부르짖어 종교개혁의 발단을 주도했고, 그 결과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생겨났다. 프로테스탄트의 발생은 종교미술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왔다. 많은 예술작품들이 교회에서 사라지거나 파괴되었고, 새로운 제단화의 주문은 엄격히 제한되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여 자체의 개혁프로그램을 착수하였다. 이를 위한 대부분의 법령들은 1545년에 처음으로 열렸던 교회 지도자들의 모임인 트렌트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여러 가지 종교법안들은 반종교개혁의 선봉 격으로 실행되었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이 1534년 성이냐시오 로욜라에 의해 설립된 예수회이다. 이들의 영향력은 주로 교육분야에서 발휘되었지만, 그들은 그 일환으로 많은 새로운 예술 작품들을을 의뢰하였다.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는 낡고 상투적으로 변해가는 많은 종교미술이 묵인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기독교적 주제들을 부흥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시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음란하거나 부적절한 것이 묘사되지 못하도록 주제들에 대해 주의 깊은 감시가 이루어졌고, 어느 부분에서는 이러한 방침이 종교재판에 의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와는 반대로, 그림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치 감상자 자신이 겪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새로운 유형의 이미지를 장려하려는 계획적인 노력도 생겨났다. 순교자, 성인, 성모 마리아 등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장려되었고, 특히나 이들이 깊은 명상의 상태나 영적 엑스타시 상태로 그려진다면 더더욱 환영받았다. 엘 그레코의 성모승천이나 성모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 등의 이미지들은 이러한 새로운 류의 주제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면모는 회화보다는 조각에서 그 정수가 더 잘 드러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의 작품 (1645-52)이며, 이 작품은 테레사가 가슴에 천사의 화살을 맞고 신의 환영을 경험하는 희열의 순간을 보여준다.
미술사조 - 매너리즘
1. 미술사조, 매너리즘
마니에리즘, 이탈리아 어로 마니에리스모(Manierismo)라고도 불리우는 매너리즘은 원래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사이에 가교역할을 했던 16세기 후반의 미술사조를 뜻하는 일컫는 말이다. 시기적으로 라파엘로가 죽은 이후 1525년부터 바로크 미술이 시작되는 1600년까지의 75년간인데, 예전에는 후기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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