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사를 통해 배우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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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극사를 통해 배우게 된 것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연극사를 통해 배우게 된 것
연극사 수업을 마무리하며..
사실주의, 자연주의, 상징주의, 표현주의, 극장주의, 서사극, 부조리, 그리고 제의의 연극. 연극사 책 한 번 제대로 훑어본 적 없이, 연극사에 대한 개론을 좀 들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듣게 된 이 수업이 내게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경험과 고민의 부족으로 인하여 적극적으로 참여도, 동기부여도 잘 안되어서 힘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수업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고 새로운 시각으로 연극사조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 수업을 마치면서 깨닫게 된 것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시대별로 나뉘는 연극사가 아닌, 산업사회와 전쟁 등으로 시작된 ‘현대’라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 의한 다양한 시도들이었다는 점, 또한 그 고민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1차 세계 대전 때, 저 먼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유럽에서 있었던 그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연극을 하고자 하는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 것 같다. 발표내용의 대부분은 아직 내 생각으로 소화되지는 않지만, 수업을 통해 변화된 생각들, 그리고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들에 대해 정리를 해보기로 했다.
사실주의는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대학에서 했던 대부분의 연극은 사실주의였고, 그 속에서 나의 연기 또한 대부분은 사실주의 연기라고 생각했으며, 스타니슬라브스키가 말하는 사실주의 연기를 잘 해보고 싶었던 나는 사람들이 사실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진실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극적인 환상을 제공해주며,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누구에게나 쉬운 감성적인 내용을 가지고, 몰입을 하여 울고 웃고 감동하게 만드는 사실주의가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문제는 이런 것이었던 것 같다. 객관적인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다르다. 따라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된다. 텔레비전의 드라마에서 나오는 너무도 ‘사실적’인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과는 멀다. 그들처럼 부자도 아니고, 대단한 외모도 아니며, 삶이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미화하고, 극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으면서 말로만 ‘사실’인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가? 이런 맥락에서 사실주의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삶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대 위 환상을 제공하며 감동을 준다’는 것이, 실제로는 삶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거짓 환상을 제공함으로써 가짜 감동만을 주고, 결국은 그 연극을 통해 배우와 관객 모두의 삶에 어떤 변화도 주지 못하게 된 것 같다.
사실주의 연기에 있어서는 한 학기 동안 연기실습 시간 동안에 ‘사실주의 연기’라는 것에 대해 수업한 것도 연관을 시켜볼 수 있겠다. 연기에서의 사실성- 즉 배우가 무대 위 상황을 믿고(완전히 믿지는 않지만) 감정에 몰입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 그것이 줄 수 있는 진실감이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한 학기를 마치는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가능한가? 혹은 배우가 몰입한다고 해서 관객도 감동하는가? 하는 질문이 남았다. 배우가 정말 사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보여주고, 자신의 감정을 몰입해서 보여주어도 그것이 관객에게는 그대로 감동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사실주의 연극은 필요하다. 많은 연극은 사실적이고, 매체에서 사용되는 연기는 사실주의 연기이다. 그러나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사실성을 보면서 지루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뭐 어쩌런 얘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연극에게 바라는 것, 그리고 연극만이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주의만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이다.
매력적인 시도 - 표현주의적 양식
상징주의와 표현주의는 작가나 예술가 자신의 주관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한다고 보았다. 사실이라는 틀거리가 아닌 내 감정, 내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추상적으로 보일지라도, 내면에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어떤 것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갖기도 하고, 그 비슷한 감정을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내면에 흐르는 공통점을 잡아내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도들은 무대위에서 사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걷어냄으로써 오히려 내면의 본질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시도들을 가능하게 해 준 것 같다. 또한 연극에 음악이나 미술이라는 장르가 가미되었는데, 음악이나 미술은, 언어로서 설명되는 이성적인 설득이나 설명 없이, 충분히 추상적(?)임에도 사람들에게 큰 정서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연극이 어렵게 생각된 것은 이러한 추상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머리가 아닌 감성으로 느끼는 감각적인 이러한 시도들은 연극이 단지 언어를 사용하는 이성적인 활동이 아닌,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느끼는 예술임을 배우에게도, 관객들에게도 환기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표현주의 연기는 무척 어렵다고, 배우를 도구처럼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어 좋아하지 않았었다. 전체 그림과 이미지로서 보여주는 종합 선물세트로서의 연극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우가 조형성을 가지고, 음악적인 리듬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감정 표현이 아닌- 예를 들면 움직이지 않는 표정, 반복되는 동작 등을 통해- 오히려 관객에게 더욱 강렬하고 진실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배우가 많은 훈련을 거쳐 그것을 소화하고 자신의 연기에 대한 충분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만큼 진실하고 강렬한 연기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