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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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낭만주의의 이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낭만주의란 무엇인가
18세기에 주요한 유럽 국가들은 17세기 프랑스에서 확립된 고전주의를 일반적으로 계승함과 동시에 이성을 인식의 유일한 수단으로 삼은 계몽주의의 지배를 받았다. 고전주의는 보편절대적인 미(美)의 관념에 입각하여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복잡보다 간명함을,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을, 토속성보다 도회성을, 노골적인 것보다 우아함을, 파격보다 균제를 중시하는 귀족문화였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이 되면서 절대왕정의 이완 및 부르주아지의 발흥과 함께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욕구가 분출하는 한편, 계몽주의 그 자체에서도 이성에 의한 비합리적인 면이 드러나자 지금까지 경시되었던 감각현상들에서 인간성의 진실을 찾음과 동시에 고전주의가 모범으로 삼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고대로부터 자국의 과거로 눈을 돌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문화의 원천을 찾으려는 기운이 일어났다. 이 무렵에 일어난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사람들의 마음에 환멸감을 일으켰다. 계몽주의의 최고의 성과가 이성에 의한 비합리적인 정치체제의 타파였는데, 혁명을 통하여 드러난 인간의 취악한 면을 보고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주변이 어지럽게 변하는 데 당혹하였으며, 모든 원리가 붕괴되는 것을 보고 일체에 대한 불신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정신의 폐허 위에 자신의 심성(心性)에 맞는 문화를 이룩하려고 한 것이 낭만주의 정신의 본질이며, 그 결과 자아(自我)에 대한 확인과 그 내부에로의 침잠이 시작되었다. 내면에야말로 진실이 있다고 주장하고 1798년 독일의 예나에서는 A.W.슐레겔과 W.슐레겔 형제가 《아테네움:Athenaum》지를 창간하였으며, 영국에서는 워즈워스와 S.T.콜리지가 자연의 관조 중에 상상력에 의한 우주와의 영적 합일감을 노래한 《서정민요집》을 간행함으로써 각기 자국 낭만주의의 효시를 이루었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에 낭만주의가 대두하였다. 동인지 《백조》를 중심으로 홍사용 박종화 이상화 등이 중심이 되어 전통적 도덕과 인습에 반발하면서 개인의 가능성과 창조적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들의 추구는 낭만적 정열이기보다는 낭만적 허무에 빠졌으며, 이 때문에 프로문학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2. 낭만주의의 기원
낭만적이란 말은 고대 불어의 로망(roman)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로망의 고형(古形)인 로망스(romans)와 로망(romant)은 라틴어의 부사 로마니스(romanice)에서 기원하고 있다.로망(roman)이란 원래 중세 루스티카 지방의 방언으로 표준어인 라틴어에 대한 각 지방의 향토어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라틴어로 쓰인 고급의 문학에 대하여 방언으로 된 각 민족어로 쓴 방언의 문학을 지칭하기도 한다.로망이 처음에는 기이가공경이환상 등의 의미로 사용되다가 18세기 말을 전환점으로 하여 비로소 고전주의에 대립된 개념으로 낭만주의(romanticism)란 특정의 문예사조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로맨틱(romantic)이나 로맨티시즘(romanticism)은 그 이입의 초기에는 낭만적(浪漫的) 또는 노만적(魯漫的)과 낭만주의(浪漫主義) 또는 노만주의(魯漫主義)로 각각 번역되고 있었으나, 오늘날은 대부분 낭만적과 낭만주의로 사용하고 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서 일어난 낭만주의는 유럽의 전역을 풍미한 문학운동으로 그 시대의 철학사상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는 음악미술건축정치사회의 전반에 걸쳐서 한때를 풍미한 사조이기도 하다. 따라서 브륀띠에르(Bruneti0x8045re,F.)나 허포드(Herford,C.H.) 같은 문학비평가들도 이미 지적하고 있는바, 낭만주의가 함의하고 있는 다양성 때문에, 그 개념을 정확하고 명쾌하게 정의하기는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낭만주의의 본질과 개념을 명쾌하게 정의하기 위해 수많은 시인과 비평가들이 시도했으나, 아직도 그에 대한 명쾌한 해명은 없다.
3. 낭만주의의 역사적, 정신적 배경
신성로마제국은 아직도 통일국가적 중앙집권적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복잡하게 분열된 대소 영방 군주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국 내에서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대국으로 성장했으나 항상 두 나라가 대립함으로써 생기는 정치적 이원성으로 말미암아 통일을 성취할 수 없었으며 당연히 독일인의 국가, 국민의식은 형성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폴레옹 전쟁과 낭만주의는 국민적 이념 형성에 기여했다.
1789년 프랑스에서는 바스티유 감옥이 파괴되었고 혁명이 발발했다. 독일의 지식인층은 이 혁명에 그들의 공화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이념 실현의 희망을 걸었으나 혁명이 폭력화되고 전제주의는 더욱 강화된다. 공포정치가 끝난 프랑스에서는 지롱드당이 집권한 혼란기를 틈타 나폴레옹이 득세하여 1804년 황제로 즉위한다. 초기 낭만주의(1798-1806)는 바로 이러한 나폴레옹의 집권으로 인한 예나 점령기와 일치한다. 이때부터 독일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고 독일인의 민족의식이 대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중심의 중기 낭만주의는 민족문화, 조국의 역사와 자연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1815년 나폴레옹이 퇴위하고 비인회의에 의하여 독일연방이 탄생하였으나 이 또한 40여개의 주권국이 모인 집합체에 불과했을 뿐 통일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메테르니히의 정통주의, 혁명 이전의 복고주의때문이었다. 민족의 독립, 국가 통일 등은 프랑스 혁명의 유산이라 하여 배격되었고 재등장한 구체제는 유럽 전역에 복고적 반동의 시대를 초래했다.
피히테는 칸트의 현상론에서 출발하면서 物 자체를 극단적으로 주관화시켜 해석했다. 칸트의 물자체라는 개념 대신 피히테는 자아의 절대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에 따르면 경험세계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물 자체가 아니며, 현상세계는 모두 자아(das Ich)의 생산물이라는 것이다. 절대적 주체인 자아는 객체, 즉 현상세계(자연)를 창조적 상상력의 활동을 통하여 자기 자신으로부터 유출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술 역시 예술가의 절대적 자아, 즉 주관의 창조적 상상력을 통하여 창조된 세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예술, 즉 절대적 자아의 현상형태와 그것의 창조자인 자아의 절대성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본질에 접근한 표현이라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본질과 일치 할 수 없기 때문이며, 단지 그것은 유한적 특수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창작 주체인 자아는 그 절대성에 근거하여 자신의 작품을 부정하고 파괴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갖는다. 즉 인간의 특성인 자유 창작정신은 스스로 창조하면서 파괴할 수 있고 이것이 예술적 주관의 절대적 자율성이다. 쉴레겔은 이러한 자유를 낭만적 반어(romantische Ironie)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그에게 자아의 절대적 자유는 천재의 상상활동에 완전한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낭만적 반어는 낭만주의의 창작원리로 되었고 낭만주의의 예술지상주의적 성격을 형성하는 요인이 된다.
쉘링에 따르면 정신과 자연은 다른 형태의 동일한 절대의 표현이며,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이고 자연은 정신의 현상형식이다. 따라서 정신의 발전단계는 자연의 발전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절대성의 최저단위가 물질이고 최고단계는 정신의 인식과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쉘링의 자연철학관은 낭만주의에도 영향을 끼쳐 그들의 동화문학에서는 자연 속에 주관의 감정이 개입하게 된다. 즉 자연계의 정신화가 이루어진다. 쉘링은 자연 속에서 정신이 생성되어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자연철학의 과제라 했고, 그러한 정신의 생성은 세계정신(Weltseele), 근원적 힘(Grundkraft)이라 했다. 이 근원적 힘은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으며 다만 예감할 수 있을 뿐인 영원한 실재라는 것이다. 그 영원, 무한의 추구는 낭만주의 문학의 본질적 요소가 되었으며, 그때문에 낭만주의에는 미완의 단편이 많은 것이다. 비합리적 요소, 애매모호함, 정신의 어두운 면, 무의식, 꿈의 세계 등이 그들이 추구했던 목표였다. 그들은 또한 고향과 국토에 대한 애착심을 앙양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고, 독일 민족의 기원에 대한 동경에서 역사와 고유문화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본적인 창작성향은 불행한 현실여건에서 탈출하여 관념세계로 도피하고 실제 행동을 포기한 채 문학과 예술에 탐닉하여 내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낭만주의는 문학, 예술, 종교, 철학, 각 민족의 생활양식 등의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정신의 표출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종교, 지식, 신앙, 학문은 서로를 반영하고 혼합하는 것이어서 상호간의 경계선이 없다는 관점에서 예술형식의 혼합을 주장하고 문학의 각 장르를 혼합시켰다. 인생과 사회를 시적으로, 세계를 낭만화시킨다. 그들이 주장하는 보편문학(Universalpoesie)의 중심개념은 이러한 탈한계성에 있으며 모든 문학의 총합을 뜻한다. 또한 완성이나 유한성은 정체상태를 의미한다는 관점에서 보편문학은 형식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항상 무한으로의 생성활동을 추구하기 때문에 진보적이라고 보았다.
낭만주의는 선행한 사조들, 계몽주의나 고전주의의 세계관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꼈다. 즉 이성을 통한 감각세계의 해석으로는 단지 세계의 표면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며, 세계의 보다 깊은 내면은 상상력에 의해서만 투시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앞선 사조들에게서 부족한 그런 것들을 역설적인 것, 혹은 모순된 것(die Paradoxie)이라 불렀다. 그것은 정상적인 사고과정에서 벗어난 것으로,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의성, 또는 비이성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 모순된 것, 무의식, 환상 등 정신의 어두운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들은 바로 그러한 Paradoxie 를 문학에서 반영하고자 했다. 작가로서는 노발리스가 자아의 상상력을 세계창조의 원리로서 절대화시킨 바 있다. 상상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 동화는 가장 적합한 수단이었다. 동화에서는 모든 세계를 체험할 수 있으며, 공상, 환상, 비현실이 모두 현실로 된다. 노발리스가 동화를 문학의 기준으로까지 파악했듯이, 동화는 세계의 문학적 낭만화였던 것이다. 노발리스가 세계를 낭만화시킨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세계를 창작자 자아의 절대적 주관에
참고문헌
9. 참고자료
박갑영, 서양미술사, 두리미디어
최유찬, 문예사조의 이해, 실천문학사
홍정수, 두길 서양 음악사, 나남출판사
김병걸, 문예사조, 그리고 세계의 작가들, 두레
오성근 외, 문예사조의 새로운 이해,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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