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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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니체의 심리치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니체
생애
그의 집안은 루터의 경건주의를 신봉했다. 친할아버지는 프로테스탄트교를 옹호하는 책을 썼고, 외할아버지는 시골 목사였다.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 니체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니체의 이름은 이 왕의 이름을 딴 것임)의 명으로 뢰켄의 목사로 임명되었다. 아버지는 니체가 6세가 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 프란치스카, 누이 엘리자베트, 할머니와 두 하녀 사이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1850년 잘레 강변의 나움부르크로 옮겨 돔 김나지움을 다녔고, 1858년 프로테스탄트교 학교인 슐포르타에서 고전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 본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또, 그는 음악에서 안식처를 찾았고, 낭만파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의 영향이 두드러진 곡들을 작곡하기도 했다. 1865년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1867년 10월 군에 입대했으나 다음해 3월, 말을 타다가 가슴을 심하게 다쳤다. 장기간의 병가를 받고 그해 10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동안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게 되었고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를 만났으며 고전문학자 에르빈 로데와 우정을 쌓았다. 스위스 바젤에 고전문헌학 교수직이 비었을 때, 리츨의 추천으로 학위도 없이 교수로 임명되었다. 1869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시험과 논문없이 출판된 저술들만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나자 의무병을 지원했는데, 1개월도 안되어 환자를 수송하다가 이질과 디프테리아에 걸렸다. 건강이 점차 나빠져서 1879년 교수직을 사임했다. 1879~89년에는 책을 쓰는 것 외에는 삶에 어떠한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중병에 시달렸고 시력도 거의 잃었으며,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았다.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의 길거리에서 쓰러진 뒤 정신적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1900년 8월 25일 죽었다.
사상
니체는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 철학을 탄생시킨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19세기에 태동된 그의 철학사상은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를 거쳐서 사르트르 등에 이르러 더욱 계승 발전되면서 오늘날 교육, 문학, 예술 분야를 비롯한 현대인의 정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실존주의 철학은 합리주의적 관념론과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과 도전으로부터 시작된 사상으로 분석철학과 함께 현대철학의 2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니체 이전의 철학이 주로 인간의 합리적, 논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반면, 실존주의는 인간의 존재 자체를 중요시한다. 그 이유는 인간은 철학, 종교, 과학, 등이 탄생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질이 사물의 일반적 본성을 의미하는 데 반하여, 실존은 사물의 개별자로서 존재를 의미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실존은 본질에 선행되며, “신은 죽었다.” 라고 한 것처럼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완전히 자유로운 입장에서 스스로 존재 방식을 선택하게끔 운명 지어져 있다고 보았다.
만약 인간의 본질이 결정되어 있다면 개인은 그 결정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되지만, 본질이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 개개인의 자각적인 생활방식이 중요하게 된다. 다. 니체는 자신의 신념과 이념에 충실한 철학자였다. 자신의 삶에 가장 적합한, 그리고 가장 신선한 규칙과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찾도록 노력하였다.
적용가능한 문제
‘삶은 고난’이라고 여기며 지난한 생활에 탈출구란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이 땅에 수많은 ‘범생’들 중에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진정으로 알고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뛰고 있을 뿐이며 부모나 선생님이 옳은 길이라 규정하고 있기에 믿고 따를 뿐이다. 그네들 중 일부는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투신해 버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은 과연 ‘목숨 걸 만큼’ 소중한 것을 잃었기에 자살한 것일까? 타인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영웅 상(像)을 맹목적으로 숭배한 나머지,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는가? 이들의 삶에서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는가?
해고의 공포 속에서 쳇바퀴 돌 듯 일상을 힘겹게 반복하는 수많은 군중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삶은 원래 희생하는 것’이라며 자위 한다. 그러나 삶의 끝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영원히 웃을 수 없다.
한계
물론 주변의 위로와 고마움의 한마디가 아편처럼 이들의 고통을 완화시켜주곤 한다. 하지만 이는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지 치료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