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롬의 심리치료와 인간의 조건

 1  얄롬의 심리치료와 인간의 조건-1
 2  얄롬의 심리치료와 인간의 조건-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얄롬의 심리치료와 인간의 조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얄롬의 심리치료와 인간의 조건
얄롬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할 때마다 저는 늘 곤혹스럽고 두통이 동반됩니다. 마치 눈에 보일듯 말듯 하면서도 분명한 아픔으로 존재를 주장하고, 제거하려고 애쓰지만 좀체로 없앨 수가 없는 손톱 밑에 낀 작디 작은 가시 같습니다. 그의 글에서 느끼는 바도 있고 떠오르는 생각들도 있는데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조각조각 파편으로만 존재해요. 이는 저 스스로가 아직 정립된 생각을 지니지 못한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미숙하다는 건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누가 그랬지만 이런 상황에선 불완전하다는 말 이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문학상담 수업의 다른 분들처럼 잘 쓰는 건 바라지도 않고 그저 생각을 종합만이라도 하고픈데 그마저도 되지 않는다는 게 참으로 씁쓸하네요.
그럼에도 파편이라도 적어보자면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6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얄롬 박사는 인간을 참으로 신뢰롭게 생각하는구나, 라는 점과 종교는 필요 없을지라도 신앙은 필요하지 않을까, [삶의 의미를 찾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입니다. 세 가지 파편들에 대해 하나씩 짚어볼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굉장히 두서없는 이야기가 될 듯하고 뒤의 두 가지는 저의 이야기이지 얄롬 박사에 관한 이야기는 되지 않을 듯하여 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얄롬 박사가 인간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 건 다음 문장 때문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삶을 순수하고 진실되게 살 수 있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그도저도 아닌가, 라는 질문은 상담대학원을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저의 숙제입니다. 때로 정말로 착한 사람을 봅니다. 때로 정말로 악한 사람을 봅니다. 이 둘을 가르는 근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보면 그 이전에 선과 악의 기준은 어디로 두어야 하는가까지 타고 올라갑니다. 이런 저와 달리 얄롬 박사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끝에는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보고, 인간은 그것에 이를 수 있다고 -적어도 근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충실한 삶은 소위 완성된 인간의 그것이지요. 저는 여기서 맹자의 성선설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선]이라고요. 과연 그런가요?
이러한 저의 의문과는 별개로 얄롬 박사가 많은 내담자들과 많은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낸 답은 [그렇다]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담자에게 전신전령으로 맞부딪치며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동행자가 되는 일은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에게 얄롬 박사는 용기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기]
이전부터 얄롬 박사는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완성된 존재로 본다는 느낌을 받곤 했었는데 어째서인지 이유는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이 저에게 감명 깊게 다가오더군요.
심리적인 고민은 생물학적인 유전적 근저에서(심리약리학적 모델)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본능적인 욕구의 억압으로부터(프로이디언 입장) 나오는 것도 아니며, 의미 있는 어른들이 보살펴주지도 사랑해주지도 않았음으로 신경증적인 어른이 내재화된 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대상이론 입장), 잊고 있었던 외상의 기억의 사금파리들 때문도 아니며, 현재의 직업 위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인한 삶의 위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포함해서, 인간의 실존에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고민은 나오는 것이다.
왜 이 구절에서 얄롬 박사가 인간을 완성체로 보는 듯 느껴지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실존에 직면하는 것에서부터 (제대로 직면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고민이 나온다면 직면함에 성공한다면 곧 진정한 자신(=완성체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여겨진 게 아닐까 싶은데 확신은 못하겠네요. 다른 분들은 저 구절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