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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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1. 공자의 생애
공자의 이름은 구(丘)이고, 자(字)는 중니(仲尼)이며, 주(周) 영왕(靈王) 21년인 B.C 551년에 노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邑)에서 탄생하였다. 공자는 어려운 생활 조건 속에서도 배우는 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15세에 이미 학문에 뜻을 둔 그는 아랫사람에게도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기회만 되면 주위의 사람들에게 예와 악을 배웠다. 그래서 공자는 점차 학문으로 인해 널리 ㅇ알려지게 되었고, 노나라 귀족을 비롯해 그의 명성을 듣고 각지에서 많은 제자들이 몰려왔다. 공자는 그 신분을 크게 따지지 않고 최소한의 예만 차리면 제자로 ㅇㅇ받아주었다. 공자는 단순한 학자나 교육자가 아니라 허물어진 주나라의 정치와 ㅇ문화질서를 재건하려는 큰 정치적 이상을 지니고 있었다. 학과 덕으로 이름이 높은 공자는 벼슬길에 올라 노나라의 대사구(大司寇: 지금의 법무장관)가 되기도 하였다. 이 때 그는 권신의 발호를 막고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서 물러나게 된다. 고국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공자는 이웃 나라를 다니며 자신의 이상을 펴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제후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14년간의 주유 끝에 결국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고 문헌을 정리하며 교육과 학문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였다. 공자 문하에는 제자가 3,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며, 그 중 육예에 조예가 깊은 자만도 72명이나 되었다. 공자는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사상가이자, 동시에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자였고, 또한 고대 문화와 문헌에 가장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대학자이며, 새로운 정치적 이상을 제시한 정치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장승구 외 『동양사상의 이해』 2002 p.31-33
2. 공자의 사상체계
1)천관(天觀)
공자는 오십이 되어 천명을 알았다고 하였다. 공자사상에 있어서 천과 귀신이란 무엇인가? 세계의 운동과 변화의 배후에는 그것을 주재하는 절대적 존재가 있다. 그것을 공자는 천(天)이라고 부른다. 공자의 천관은 세계와 인간의 만사를 주재하는 인격신으로서의 은주(殷周)시대의 상제천(上帝天) 관념을 일면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신비하고 불가해한 종교적 성격이기보다는 대단히 합리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공자는 귀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공경하면서도 가능한 멀리하려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는 천은 역사의 과정과 개인의 실존적 삶에서 일정한 섭리를 주재하고 있다. 공자는 스스로가 천에 의해 일정한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ㅇ확신하고 그것의 실현에 일생을 몸 바친 것이다.
공자의 천에 대한 믿음은 역사현실이 우연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천의 섭리에 의해 주재되고 있다는 믿음과 연결되고, 이러한 믿음은 역사현실에 일정한 합리성이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공자에게 역사현실의 합리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보다 이성적으로 계명되고 도덕적으로 성숙되어서 진정한 의미의 질서와 평화가 정착된 인간적 사회의 실현일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이상은 그가 천을 믿는 한에 있어서 확고한 불변적 믿음이었다. 공자는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고 부단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자 현실 역사의 과정이 합리적이지만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장기적 안목에서는 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불합리하고 불가해한 측면이 있고, 또한 그러한 이상의 실현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역사현실 속에서 자기의 이상이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최후까지 그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 최선을 다했다. 공자는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교육을 통한 이상의 실현을 추구함으로써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몸소 실천하였다.
공자의 천에 대한 향내적 믿음은 현실적 삶으로부터 유리되도록하거나 불합리한 행동을 유발하기보다는, 오히려 한층 합리적이고 현실참여적 정열의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공자와 그 이후 유교의 천관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장승구 외 『동양사상의 이해』 2002 p.33-35
2) 인간학적 전환
서양 철학은 그 시원에 있어서 자연 철학을 근본으로 했지만, 공자학은 인간철학을 근본으로 해서 출발했다. 서양 철학이 세계의 아르케(arcge)를 ‘물이다’ 혹은 ‘불이다’고 하는 자연 철학에서 출발했지만, 공자학은 하늘에 대한 신앙에서 출발한 예악을 인간학으로 전환하는 창조과정에서 그 특색을 볼 수 있다. 공자사상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무엇보다도 인(仁)의 이념으로 인간존재를 바라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을 인갑답게 해주는 본질적인 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것을 인으로 체계화하였다. 공자 이전에도 ‘인(仁)’이란 단어는 있었지만 거기에 심오한 뜻을 부여한 것은 공자의 공로이다. 공자는 종전에 계급에 의해서 위계적으로 파악되거나, 아니면 천 또는 귀신의 권위에 눌려 타율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의존적 인간관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 대신에 계급을 초월하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보편적 덕성 즉 인을 발견하였고, 인의 실현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인격을 완성해나가는 자율적 인간관을 제시하였다. 이 점에서 공자는 동아시아 ㅇ사상사에서 자율적이고 합리적이며 보편성을 지닌 인간이해를 추구한 최초의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공자사상의 획기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공자학은 수기(修己)와 안인(安人), 애인(愛人)을 기점으로 해서 사회적인 ‘너’와 ‘나’‘사이’의 인간으로서 기본원리를 인(仁)으로 파악했다. 인이란 너와 나의 인간 공존 관계에 착안하여, 서로 너와 나 사이{人의 問}가 사랑하는 관계{愛人}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간의 철학을 강조했다. 공자는 예를 천신(天神) 중심의 ㅇ신학으로부터 인간학적인 반성과 이해에 기초한 새로운 예문화로 발전시켰다.
공자는 ‘극기복례’가 인이 된다고 하였으니, 사욕을 극복하여 참다운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인의 실천이라고 분명하게 도덕적 , 윤리적 인간학을 제기했다. 또 공자는 인의 도덕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위인유기(爲人由己)’라고 하여 나로부터의 자율적 주체성을 자각하도록 했다. 그리고 “인이 멀겠는가. 내가 인을 바란다면 이에 인은 이르게 된다”고 하여, 주체적인 자기의 노력에 인의 실행이 달려있다고 분명히 했다.
또한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듣는다며녀 저녁에 죽어도 좋다.” 고 했는데, 여기서의 도는 곧 인도(人道)를 말한다. 『중용』에 “인(仁)은 인(人)이다.”라고 했듯이, 인간의 본질이 인이라고 하여 도덕적인 인간 존재를 해명하는 특색을 볼 수 있었다. 인(仁)은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 본질에 대한 관심이 인성론으로 발전하였다. 장승구 외 『동양사상의 이해』 2002 p.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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