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1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1
 2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2
 3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3
 4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4
 5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5
 6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6
 7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7
 8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8
 9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9
 10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1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레포트 - 성리학의 발전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성리학의 발전
1. 성리학의 개념과 발전
일반적으로 성리학은 주자학과 양명학을 아울러 가리킨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성리학이란 정이-주희 계열의 성리학, 즉 주자학을 가리키는데 그렇다면 그 특징은 어떨까?
첫째, 주자학은 “성품이 곧 이치이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하여 전개되는 송명 유학의 한 유형이다. “성품이 곧 이치이다”라는 명제는 “세계는 이치와 기질의 오묘한 조화로 이루어졌다.”는 명제, 그리고 “마음은 이치와 기질의 오묘한 조합이다”라는 명제와 서로 상관되어 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한국철학』, 예문서원, 1995, p56
둘째, 주자학이란 정이와 주희 계열의 사상적 입장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된 사상적 유형을 말한다. 북송 초기 송학은 세계와 인성人性을 존재론적으로 설명하는데 기론적 바탕을 상속으로 받아 이루어진 것이었다. 북송 초기 신유학의 역사에 나타나는 주돈이·소옹·장재·정호 등은 세계와 인성이 기질로 이루어졌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이에 반해 세계와 인성을 이루는 존재론적 개념으로서 기질 이외에 이치가 있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한 사람은 정이였다. 주희는 이러한 정이의 입장을 상속받아 송유학(성리학)의 완성된 형태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자학이란 정이로부터 시작된 신유학적 실험이 주희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이 후 조선 주자학이나 일본 주자학에까지 이어져 나가는 사상적 흐름이라 하겠다. 위의 책, 같은 곳
셋째, 주자학은 송명 유학 또는 신유학의 사상적 중심에 놓이는 사상의 한 형태이다. 송명 유학은 새로운 사상적 화두를 갖는데, 그것은 바로 유학을 혁신시켜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유학은 일상적 삶 속에서의 바른 행동과 실천을 추구하였던 학문이었다. 그런데 일상적 삶이란 구체적이고 상황적인 것인지, 논리적 문맥을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유학은 세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낸다거나 형이상학적인 구조를 갖추는 데에는 그다지 적극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송대에 들어서 유학이 놓은 환경은 다른 사상가들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나야 한다는 치열한 것이었다. 유학자들은 그것을 시대적 소명으로 여겼고, 불교나 도교와 같은 사상적 적들을 이겨낼 수 있는 무기로서 자신들을 단련해 낼 필요가 있었다. 유학의 특징은 바로 그것이 일상적 삶 속에 뿌리를 두고 바른 행동과 삶을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위의 책, p57
넷째, 주자학이란 인간을 이원적 구조를 통해 바라보는 태도를 가진 사상의 유형이다. 주자학에서 세계는 ‘이치’와 ‘기질’이라는 두 요소를 바탕으로 구성되며, 인간의 마음도 이치와 기질이라는 두 요소의 복합으로 이루어진다. 주자학은 이와 같은 기본 구조 위에서 도덕주의라는 이념을 구현해 나가는데, 이 때 특히 이치의 권능에 의존하며 기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주자학에서 도덕의 구현이란 어떤 측면에서는 현실적 인간과 현실적 인간의 마음으로 서부터 떠나서, ‘이치’자체 또는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이치’로서의 ‘성품’ 자체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욕을 버리고 천리를 보존한다.”는 주자학적 수양을 주장하는 명제는 유학의 가장 건강한 특성 중 하나인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간의 도덕’에 상처를 입힌 채 ‘창백한 이성주의’를 낳고 말았던 것이다. 위의 책, p58
다섯째, 주자학은 이념성이 강조되는 유학의 역사 속에서도 더욱 강력한 이념성으로 무장되어 있는 전투적인 유학이다. 유학은 원래 스스로가 인간과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이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치는 주희 계열의 성리학의 이르면 훨씬 실제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며, 이치의 순결성도 더욱 강하게 주장된다. 주희 계열에서는 이치의 순결성에 대한 주장을 유학 외적인 것을 대상으로 말하는 데서 그치지 고, 유학 내적인 것을 대상으로도 강도 높게 말한다. 위의 책, 같은 곳
한마디로 주자학은 기존의 유학에 비해서 훨씬 체계화되고 이념화된 유학이며, 유학의 도덕주의를 적극적으로 강화시켜 낸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로서의 이치의 순결성과 절대성을 강도 높게 주장하다보니 인간의 따뜻한 숨결을 도외시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으며, 그 체계가 완성된 이후에는 그 체계와 논리를 수호하려는 노력이 너무나 강해 시대와 인간의 삶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오히려 상실하고 말았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한국철학』, 예문서원, 1995, p60
2. 이황, 기대승의 사단칠정론
1) 사단칠정 논쟁의 배경과 발단
이황 이황(李滉). 1501(연산군 7)∼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주자의 사상을 깊게 연구하여 조선 성리학 발달의 기초를 형성했으며, 이(理)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주리론(主理論) 전통의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조(宗祖)로 숭앙된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초명(初名)은 서홍(瑞鴻)이다. 자(字)는 경호(景浩)이며, 호(號)는 퇴계(退溪)인데 ‘물러나 시내 위에 머무른다.는 뜻의 ‘퇴거계상(退居溪上)’에서 비롯되었다. ‘계(溪)’는 이황이 물러나 머물렀던 ‘토계(兎谿)’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해석된다. 청량산(淸凉山) 기슭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여 도옹(陶翁)ㆍ도수(陶搜)ㆍ퇴도(退陶)ㆍ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는 별호(別號)도 사용했다. 시호(諡號)는 문순(文純)이다. 그는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을 비롯해 다수의 시를 남기고 있을 뿐 아니라, 조식(曺植)ㆍ기대승(奇大升) 등과 교류하며 나눈 편지 등도 전해진다. 그가 쓴 편지글은 로 따로 편찬되어 간행되기도 하였다. 그 밖에 , , , , , , 등의 저술을 남겼다. 유묵(遺墨)으로 과 도 전해진다. 그의 저술들은 1958년 대동문화연구원에 의해 로 편찬되었다.
의 철학 사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기대승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발췌하여 《주자문록(朱子文錄)》(3권)을 편찬하는 등 주자학에 정진하였다. 32세에 이황(李滉)의 제자가 되었다.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편지로 유명하다. 본관 행주(幸州). 자 명언(明彦). 호 고봉(高峰) ·존재(存齋). 시호 문헌(文憲). 전남 나주(羅州) 출생. 1549년(명종 4)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고 사관(史官)이 되었다. 1563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주서(注書)를 거쳐 사정(司正)으로 있을 때, 신진사류(新進士類)의 영수(領袖)로 지목되어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삭직(削職)되었다가, 1567년(명종 22)에 복직되어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하여 문학에 이름을 떨쳤을 뿐 아니라, 독학으로 고금에 통달하여 31세 때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발췌하여 《주자문록(朱子文錄)》(3권)을 편찬할 만큼 주자학에 정진하였다. 32세에 이황(李滉)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항(李恒) ·김인후(金麟厚) 등 호남의 석유(碩儒)들을 찾아가 토론하는 동안 선학(先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학설을 제시한 바가 많았다. 특히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편지는 유명한데, 이것은 유학사상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사칠이기론(四七理氣論)의 변론 후 이황은 그의 학식을 존중하여 대등한 입장에서 대하였는데, 이 논변의 왕복서한은 《양 선생 사칠이기왕복설(兩先生四七理氣往復說)》 2권에 남아 있다. 또 서예에도 능했으며 사후 1590년(선조 23)에는 생전에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주문(奏文)을 쓴 공으로 광국공신 3등(光國功臣三等)에 추록(追錄)되었고 덕원군(德原君)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광주(光州)의 월봉서원(月峰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주요저서에는 《고봉집(高峰集)》 《주자문록(朱子文錄)》 《논사록(論思錄)》 등이 있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한국철학사상연구회,『한국철학』, 예문서원, 1995
김교빈,『함께 읽는 동양 철학』, 지식의 날개, 2006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5
정옥자,『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현암사, 2002
황의동,『기대승』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8
황의동,『우계 학파 연구』, 서광사 ,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