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서의 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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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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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공관복음서의 종말론
들어가는 말
사전적으로 종말론(eschatology)은 ‘마지막 일들’에 관한 연구라고 정의되며 전통적으로 천국, 지옥, 죽음과 심판에 관한 일들을 다룬다고 생각되었고 조직신학적으로도 이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성서학에서 이것은 반드시 전통적으로 이해되어왔던 세계의 마지막과 관련된 것들만이 아니라 그 문맥상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종말론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에서 그 문맥을 고려하여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신약의 배경이라고 볼 수 있는 구약과 유대적 맥락에서의 종말의 개념은 야훼가 온 세상의 왕으로서 통치하실 ‘그 날’에 그 동안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지배했던 이방 민족들은 심판을 받게 되고 이스라엘은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신원될 것을 말한다. 그때 온 세상을 향한 야훼의 통치를 모든 사람이 분명히 보게 될 것이고(사 45:23; 슥 14:9), 그날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이뤄지는 ‘올 세대’를 열 것이다. 이런 희망 안에는 피조계의 제거나 대체가 아니라 갱신(renewal)이 담겨 있다. 그들이 기다렸던 ‘이 시대의 끝’은 결코 시공간상의 질서의 종말이 아니라, 현재의 악한 세대의 종말이자 다가올 새 시대의 개시였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애곡과 포로생활 기간의 종언과 이스라엘의 자유와 신원의 시작이다. 이처럼 구약과 유대적 맥락에서의 종말은 ‘야훼의 날’ 또는 ‘그 날’이라는 한 시점에 집중된다.
이런 배경하에서 공관복음서에서의 종말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선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구체적인 사건이나 상황이나 시간 또는 장소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통치나 왕권을 의미하며,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선포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가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관복음서에서 예수의 가르침 중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현존하는 것으로 전제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아직 그 나라가 오지 않은 듯이 보이기도 한다.
본 소고에서는 공관복음서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각각의 복음서 별로 살펴보고 또한 종말과 관련된 언급들에서 각각의 복음서들의 차이점들을 살펴봄으로써 각각의 복음서 별로 종말론을 다루고 각각의 종말론을 비교하며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마가복음의 종말론
최근의 마가복음의 구조에 대하여 학자들은 요 1:1-18과 같이 막 1:1-15이 그 복음서의 전체적인 주제를 요약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서론으로서 기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1절과 14-15절은 모두 ‘복음’(euvagge,lion)을 언급하면서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마가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나님의 복음’일 것이다. 그리고 막 1:15은 그 복음의 내용이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라고 요약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일 것이다. 마가복음의 종말론을 살펴보기 위하여 먼저 마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주로 시간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종말과 관련된 주제인 영생, 심판, 인자의 옴 등에 대하여 언급한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의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 예수의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종말론적 성취
마가복음의 종말론을 논함에 있어서 가장 자주 논의되고 있고 가장 중요한 구절은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막 1:15)라는 예수님의 선포일 것이다. 여기서 ‘때가 찾다’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과 공간적으로 아직 임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이 왔다는 것인가?
C. H. Dodd는, 실현된 종말론을 주장하는 학자로, 마 12:28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에서 사용된 동사(e;fqasen)와 막 1:15에서 사용된 동사(h;ggiken)가 같은 아람어(naga)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들어서 막 1:15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은 ‘이미 임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Matthew Black은 보다 면밀한 아람어 연구를 통해서 막 1:15에서 사용된 동사(h;ggiken)는 아람어 naga가 아니라 qrb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 의미도 ‘이미 임했다’가 아니라 ‘이제 막 임하고 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Dodd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편, 신현우는 막 1:15을 막 14:25과 연관해서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임했다고 주장한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과는 달리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언급은 없고, 막 14:25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며, 막 15:36에서 주님께서 신 포도주를 마실 때가 막 14:25의 성취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에서 임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마가복음에서 주님의 세례 받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백부장의 입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사건이 바로 이어진다(막 15:39)는 것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두 구절만 놓고 보면 일면 일리가 있지만, 마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나 새 시대의 도래와 관련된 언급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는 의문이 간다. 만약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면, 예수의 지상에서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하신 새 시대의 도래를 나타내는 모든 일들(예를 들면, 강한 자를 결박하고, 죄인들과 식탁교제를 통해서 메시아 잔치를 벌이는 것과 신랑으로서 혼인잔치를 하는 것,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들을 모으는 것, 그리고 병자들을 치유하는 것 등)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아직 새 시대가 도래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예수의 이런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통치(또는 나라)가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보다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 막 1:15로 돌아가 보자. 이 구절은 아래와 같이 대조적 평행을 이루고 있다. A와 B의 동사는 모두 완료시제 형태를, A′과 B′의 동사는 명령법 현재의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에서는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