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묵가철학과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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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묵가철학과 민중
1.일화로 알아보는 묵자
초나라에 공수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천민 출신인데도 기술이 뛰어나서 대부 자리에까지 올랐다. 공수반은 아무리 높은 성에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구름까지 닿을 만큼 높은 사다리를 제작해 놓고 송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제나라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들은 묵자는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꼬박 열흘을 걸어 초나라로 왔다. 공수반이 묵자에게 물었다.
“선생은 무슨 일로 이 먼 곳 까지 오셨습니까?” “북쪽 지방에 사는 어떤 사람이 나를 귀찮게 하는데, 당신이 그 사람을 없애 주었으면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공수반은 아주 불쾌해 했다. “그렇게 해 주면 천금을 드리지요.” “나는 의기가 있는 사람이라서 남을 죽이지 않습니다.” 묵자는 마음속으로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탄복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반에게 두 번 절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당신이 구름 사다리를 만들어 송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던데 송나라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 땅과 백성이 남아돌 정도로 많으면서 땅도 좁고 백성도 적은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더구나 죄 없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어질지 못합니다. 더구나 죄 없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어질지 못합니다. 지혜롭지도 어질지도 못한 일임을 알면서도 임금에게 그만 두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고, 잘못임을 지적하면서도 임금을 끝내 설득하지 못한다면 강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한 사람도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왜 많은 송나라 사람을 죽이려 합니까?” 묵자의 말을 들은 공수반은 잘못을 뉘우쳤다. 하지만 이미 구름사다리 공격계획을 왕에게 보고한 뒤라 이제 와서 취소 할 수는 없다고 난감해 했다. 묵자는 공수반과 함께 초나라 왕을 만났다. 묵자가 왕에게 말했다.“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이 가진 보잘것없는 것을 훔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도벽이 있는 사람이겠지요.” “제가 보기에 넉넉하고 풍요로운 초나라가 가난하고 약한 송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도벽과 다를 게 없습니다. 더구나 임금께서는 포악하다는 비난만 듣게 될 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수반은 내게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주면서 반드시 송나라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소.” 묵자는 허리띠를 끌러 땅에다 원형으로 둘러놓고 그 안에 들어가선 다음 품속에서 첩이라는 이상한 도구를 꺼냈다. 그리고는 공수반 더러 모형 구름사다리를 이용해 공격해 보라고 했다. 공수반이 아홉 가지 방법을 써서 공격했지만 묵자는 다 막아냈다. 공수반의 공격기술이 바닥이 났는데도 묵자에게는 아직 쓰지 않은 방어 기술이 여럿 남아 있었다. 공수반이 묵자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선생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알기는 알지만 말하지는 않겠소.” “나도 당신이 얘기하는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만 얘기하지 않겠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공수반의 생각은 저를 죽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만 죽여 없애면 송나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송나라에선 제가 훈련시킨 제자 300명이 이 도구로 무장한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죽여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초나라왕은 공격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 일화에는 묵자의 사상과 그의 실천적인 면모를 잘 드러내준다. 묵자가 활동하던 당시는 혼란한 춘추전국시대로서 이 혼란한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사상가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리가 일어났는데 이러한 여러 사상학파들을 제자백가라 부른다. 각각의 학파들이 여러 가지 시대를 향한 여러 가지 구제책을 들고 나왔을 때 겸애설을 들고 나온 이가 바로 묵자였다. 춘추전국 시대 때에는 강대국들이 약한 나라를 집어 삼키는 겸병전쟁이 극심하던 시기였다. 대다수 약소국들은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큰 나라들의 사정도 다를 바는 없었다.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민중들의 고혈을 짜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여야 했으며, 성을 쌓거나 직접 전쟁에 나가 싸우는 일 또한 민중의 몫이었다. 이 때 묵자는 대다수 피지배 민중과 약소국의 편에 섰다. 그는 강대국과 지배 집단을 향해 서로 사랑하고 함께 나누라고 외쳤다. 묵자가 주장한 것은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이었다. 묵자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결사를 조직했다. 묵가의 이러한 사상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를 훨씬 앞선 옛 시대의 좌파적인 면모를 보여주었고 그 당시로 볼 때 가히 혁명적이었다.
2. 묵자는 누구인가?
묵자(기원전 468~376)는 성이 묵(墨)이고, 이름은 적(翟)이란 설이 있는데 확실치는 않다. 묵자는 태어난 나라도 불분명하고, 태어나고 죽은 해도 사실 확실치 않다. 노(魯)나라 사람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가 본래 묵씨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그가 죄인의 얼굴에 죄명을 먹으로 떠 넣는 형벌인 묵형을 받았기 때문에 묵씨로 불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묵자의 노동을 많이 해서 피부가 타 검었기 때문에 묵씨로 불렸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묵자가 피지배층, 노동계층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하층계급인 농여공사지인(農與工肆之人)이라고 칭했다. 이 때문에 묵자는 물을 다스리는 치수로써 백성을 평안하게 하고 노동을 중시한 하나라의 우임금을 따른다. 그러나 유가의 관점으로 보면 묵자는 당연히 평민 계급이자 이른바 ‘소인’에 속하는 부류이다. 묵자가 창립한 묵가는 출발점부터 공자의 유가와 대립하기 시작하여 당시의 양대 “현학”을 이루었으며, 묵가와 유가가 서로 상대방을 통박하면서 소위 “백가쟁명”의 서막을 올리게 된다. 그 시대에 묵가는 유가와 세력을 같이할 정도로 큰 사상집단이었다. 묵자는 단지 이론만이 아니라 실천에 앞장섰다. 묵자를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인 마정방종, 이천하위지(摩頂放踵, 利天下爲之-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를 모두 갈아서라도 천하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하리라.)는 말과 위의 일화가 이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묵자의 제자들 역시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한결같이 고행을 사양 하지 않고 몸소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묵가는 오로지 남을 위해 산다는 종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가능한 한 삼갔다. 묵자는 춘추 전국 시대의 다른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사상을 펼쳐 보려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힘 있는 제후들은 대부분 그를 반기지 않았다. 그가 비천한 계층 출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의 사상이 지배층의 이익이 아닌 피지배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지배층의 대변자였다.
3. 오직 지키기 위해 싸운다. 묵가의 묵수(墨守)
한자어에 묵수(墨守)라는 말이 있다. 철저하게 끝까지 지킨다는 뜻인데, 이 말은 묵가 집단의 수성술(守成術,성을지키는 전술)에서 유래한 것이다. 묵가 집단에는 하급 무사들이 많았다. 그들이 보통의 군인들과 다른 점은 그들이 오직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지키는 방어 전쟁만 참여했다는 것이다. 본래 보통 군인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의 침략전쟁에 참여하는 일이었고 그 일은 그들에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묵가 집단의 무사들에 군인으로서의 일은 자신들의 철학을 실현해 가는 실천이었다. 이것의 위의 일화와 최근에 제작된 ‘묵공’이라는 영화에서 잘 드러난다. 묵공의 줄거리를 잠시 소개해 본다.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조나라의 10만 대군은 마지막 길목에서 인구 4,000명밖에 되지 않는 소국인 양 나라의 양성 함락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에 양나라 양왕(왕즈웬)은 묵가에 지원군을 요청하게 되고 묵가에서는 혁리(유덕화)를 파견하게 된다. 홀연 단신 양성에 들어와 조나라의 10만 대군에 맞서게 된 혁리는 처음에는 양나라 왕실과 백성들로부터 비웃음을 사지만 묵가의 뛰어난 병법과 지략을 바탕으로 성을 수호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점점 신임을 얻게 된다. 하지만 혁리에게 모든 병권을 넘겨줬던 양왕과 주변 간신들이 이를 지켜만 보고 있을 리가 있겠는가. 결국 혁리는 그들의 모함에 휘말리게 된다.)
묵가집단은 실질적으로 전쟁을 막기 위해 힘썼다. 그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면 어제의 친구도 적으로 적도 친구로 돌릴 수 있는 투철한 사명감이 있었다. 영화에서 묵가는 조나라로부터 양성을 지키지만 후에 양성의 왕자가 묵가사람인 혁리에게 만약 반대로 우리가 조나라를 침략한다면 우리와 맞서 싸울 것인가? 라고 묻자 혁리는 그러겠노라고 말한다. 자칫 너무나도 이상적, 차라리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묵가의 이러한 사상은 그들이 어떠한 집단이었는지 잘 설명해 준다. 그들은 당시의 세계관과 다른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철학자들임과 동시에 그들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실천가들이었다.
4. 시대를 앞선 반전평화운동가들
"죄 없는 사람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고 열 명을 죽이면 인간 백정이 되는데, 전쟁을 일으켜 수만 명을 죽인 자는 도리어 영웅이 되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참고문헌
참고문헌
김교빈, 이현구 『동양철학에세이』동녁,1993
장승구 외 『동양사상의 이해』경인문화사, 2002
기세춘 『천하에 남이란 없다』초당,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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