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열풍과 신중화주의

 1  유학열풍과 신중화주의 -1
 2  유학열풍과 신중화주의 -2
 3  유학열풍과 신중화주의 -3
 4  유학열풍과 신중화주의 -4
 5  유학열풍과 신중화주의 -5
 6  유학열풍과 신중화주의 -6
 7  유학열풍과 신중화주의 -7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유학열풍과 신중화주의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유학열풍과 신중화주의
1. ‘중국학’의 개념과 ‘중국학열’
중국 학계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형성된 ‘중국학열’과 ‘중국학열’에 참여한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는 ‘중국학’에 대해 ‘중국학열’과 ‘중국학’이라고 부르지 않고 ‘국학열’과 ‘국학’이라고 명명한다. 이 개념은 과학기술로 무장한 서양의 침입에 무기력하게 당하던 근대 전환기의 중국에서 활약한 적지 않은 사상가들에 의해 당면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 과정에 중국의 전통 사상을 연구하는 붐이 조성되면서 전해지고 확산되었다. 이철승「현대 중국 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 2006, p502
즉 ‘국학’이라는 개념은 보편성을 담보한 개념이라기보다, 자기 민족의 특수성에 국한하는 제한된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1920년을 전후하여 중국에서 사용된 ‘국학’개념은 중국 고유의 학술을 의미하는 ‘국고학’과 혼재되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개념은 전통 문화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적지 않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확대하였다. 이러한 ‘국학’개념은 1990년대 이르러 중국의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중국학열’의 이론 배경이 되었다. 1990년대에 많은 학자들에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 이 ‘국학’의 개념은 본국주의를 지칭하는 ‘국’에 해당하는 중국의 학술을 의미한다. 이것은 상고시대부터 은주와 한당과 송명을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형성되고 발전해 온 전통의 철학·경학·사학·정치학·법학·군사학·자연과학(천문·수학·지리·농학·수리·의학)·종교·예술 등을 포함한 학문영역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1990년대에 ‘중국학열’을 조성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중국 전통의 제사상에 대한 학술적 체계를 ‘중국학’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중국 전통의 고유한 학문 체계를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조명하여 중국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고자 한다. 그들은 애국주의를 겸비한 상태에서 이러한 전통 사상에 대한 연구열을 확장시키면서 세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한다. 이철승「현대 중국 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 2006, p503
그런데 이러한 학문적 경향에 동참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개인의 관점에 따라 ‘국학’이라는 말의 사용을 지양하고, ‘전통문화’·‘중국학’·‘중화학’등의 개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구자들 사이에 이러한 미세한 개념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들은 중국 전통의 제사상을 연구하는 학문 체계라는 의미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공통점이 결국은 중국이라는 국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중국 전통의 학문을 연구한다는 면을 고려하여 ‘중국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에 중국의 사상계에서 형성된 그들의 학문 조류에 대해 ‘국학열’과 ‘전통문화열’과 ‘유학열’등의 분류 방식도 결국은 ‘중국학열’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기에 ‘중국학열’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철승「현대 중국 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 2006, p504
2. ‘중국학열’의 전개 과정
중국학열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는 사건은 ‘6·4 천안문 사태’이다. 1989년의 일어난 사건으로 자유주의 이념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구축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시위에 대해 중국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진압한 후 중국의 지도부는 자유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판단된 전통 사상에 대한 연구를 강화시키며 ‘중국학열’을 조성시켰다. 이철승「현대 중국 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 2006, p505
중국 정부의 정책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중국 사상계의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일본과 ‘아시아의 작은 제 마리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경제 성장의 배후에 유교의 이념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외 일부 ‘유교자본주의론’자들의 담론을 주시하면서 ‘중국학’에 대한 열기를 중국 사회의 곳곳에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들은 중국 전통 문화와 사상 가운데 당면한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중국 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는 면에 특히 유가사상이 필요함을 절감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유가사상을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중국학열’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유학열’을 조성하는 면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철승「현대 중국 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 2006, p507
또한 개혁개방 정책 이후에 새롭게 형성된 인민 내부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면에서도 유가의 사상을 활용하고 있다. 그들은 실제로 2004년 9월 19일에 개최된 ‘중공중앙 제16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 회의’에서 ‘사회주의 화해사회’론을 제기했다. 그리고 국가 주석인 호금도는 각 성의 주요 간부 회의에서 ‘사회주의 화해사회’ 건설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하였다. 그의 연설에서 이 이론과 전통의 유가사상을 매우 밀접하게 관련시켰다. 오늘날 중국의 사상계는 이와 같이 1990년대 초에 조성된 민족주의적인 성향의 ‘중국학열’을 확산시키면서 전통적인 중화사상을 재현시키고 있다. 이철승「현대 중국 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 2006, p508
3. ‘중국학열’에 배태된 중화사상
‘중국학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양의 패권주의에 대한 방어적인 측면에서 중국 문화의 우수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은 표면적으로 중국 문화의 패권적인 성향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러나 대부분 전통 사회에서 화하족과 문화가 결합된 상태의 문화중심주의가 빚어내는 패권적인 성향으로 인하여 주변국들에게 고통을 안겨 준 사실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에 있지 않다. 즉 그들은 아편 전쟁을 계기로 하여 중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안겨 준 서양의 패권주의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것과 달리, 전통 사회에서 중국의 패권주의적인 성향에 의해 고통을 입은 주변국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면에 인색하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전통 사회에서 화하족의 선진적인 문화가 주변국의 후진적인 문화 수준을 향상시킨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그들이 비록 표면적으로 서양 문화의 패권적인 성향과 함께 중국 문화의 패권적인 성향에 반대한다고 말할지라도 여전히 전통적인 화하족 중심의 문화 제일주의를 반영하는 중화의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중국학열’속에 전통적인 자민족 중심의 중화사상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은 세계 역사 가운데 몇 천 년 동안 지속된 나라는 중국뿐임을 지적하며, 왜 중국의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해왔는지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더하여 중화민족이 몇 천 년 동안 창조한 전통 문화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학’을 세계에 확산시켜야 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철승「현대 중국 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 2006, p509
특히 ‘갑신문화선언’을 선포한 주역들은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와 일체화로 인해 문화적 일원화의 추세가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면서, 5000년 동안 끊임없이 다양한 갈등 요소를 해결하면서 유지해왔던 중국 전통 문화의 부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중국의 총리 온가보는 중화민족의 문화가 넓고 깊으며 역사가 오래됨을 지적하고 사랑·집단·어울림·공의·충서 등의 관념에 대해 현대 사회에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는 사상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관점은 전통 문화의 발현을 통해 중국인의 긍지를 향상시킴과 아울러 문화의 중시를 통해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21세기의 국제 사회에 중심으로 다가가기 위한 능동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철승「현대 중국 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 2006, p510
4. 화하족과 문화중심주의
‘중화사상’라고 말할 때, ‘중화’라는 말은 ‘중국’과 ‘화하’의 두 명칭 가운데, ‘중’과 ‘화’가 결합하여 형성된 개념이다. 이것은 상고 시대에 화하족인 황하 유역에서 나라를 세운 후 천자가 사는 곳으로 주변의 사방이나 사국과 구별되는 세상의 중심을 의미하였다. 이철승「현대 중국 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 2006, p511
선진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 화하족은 이웃인 강과 융의 혈통을 겸하면서 하왕조가 건립되기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왕조의 형성과 유지와 교체는 상대와 주대를 거치는 동안 주변의 많은 씨족과 부족들을 교류하고 병합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높은 문화 수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화하족이 단일한 순수 형통을 구성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주변의 많은 부족과 관계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혼합된 혈통으로 구성되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의 문화 또한 처음부터 주변 문화와 차이가 많이 나는 높은 문화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주위 문화와 빈번하게 교류하면서 형성된 과정의 산물이다. 그런데 오랜 역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종족들이 연합하여 결성된 화하족의 개념은 진의 통일을 거친 후, 한나라 때에 ‘한족’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이철승「현대 중국 사상계에 나타난 ‘중국학열’과 신중화사상」,『중국학보』제54집, 한국중국학회2006, p512
한왕조는 유가사상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설정하고 문화를 중시하는 정책을 펼쳤다. 인간을 도덕적으로 보는 유가의 이념을 문화의 핵심으로 여기는 한편 이에 동의하는 사람이나 종족들에게 문화인이나 문화 종족으로 평가하여 동질의식을 공유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들에게 야만이라는 굴레를 씌워 배제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외형적으로 도덕의 보편성을 말하여 모든 사람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할지라도, 이론 그 자체에 이미 도덕과 비도덕 및 문화와 비문화의 구별을 성정함으로 인해 여기에 해당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