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도가철학과 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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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철학과 무위
도가철학 [道家哲學]
도가사상은 유교사상과 더불어 2,000년 동안 중국과 그 주변국의 생활과 사상을 형성해온 중국 고유의 종교철학이다. 도가사상의 특징은 실용주의적인 유교와는 달리 현실세계에 대한 신비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론에 있다. 도가에 대한 엄격한 정의에는 3가지 측면이 있다. 즉 도가철학은 〈노자 老子〉 또는 〈도덕경〉, 〈장자 莊子〉 〈열자 列子〉 등과 같은 경전의 사상, 도를 숭배하는 종교로서의 도교, 도가를 모두 포함한다. 도가사상은 중국문화의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스며 있다. 종교로서 도교는 국교인 유교와 비정형적인 민간신앙의 중간에 위치한다. 도가사상과 도교는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의 한국일본베트남 등지로 퍼져나갔다. 한대(漢代 : BC 206~AD 220)를 전후하여 이전의 위대한 도가사상과 이후의 미신적인 도교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실상 도교는 형성 때부터 고래(古來)의 주술사상과 관련이 깊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도교를 철학과 종교로 구분하는 것은 단지 서술의 편의를 위한 것뿐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도가사상과 유교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양자는 고대의 전통 속에서 인간사회군주하늘우주에 대해 많은 사상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공유점 위에서 유교는 중국의 도덕과 정치체제에 관심을 두었고 도교는 보다 개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부분에 관심을 나타내었다. 한편 불교는 개인의 자아를 부정하고 현실세계의 허망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도교와 극히 대립적이다. 그러나 경쟁적인 포교과정 속에서 양자는 많은 유사성을 갖게 되었다. 송대(宋代) 이후 민간종교에서 도교와 불교는 명확한 구분없이 공존했다.
노 자 [老 子]
성명 이이(李耳). 자 담(聃).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 초(楚)나라 고현(苦縣:허난성[河南省] 鹿邑縣) 출생.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주(周)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장서실 관리인)였다. 공자(BC 552~BC 479)가 젊었을 때 뤄양[洛陽]으로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관한 가르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나라의 쇠퇴를 한탄하고 은퇴할 것을 결심한 후 서방(西方)으로 떠났다. 그 도중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상하(上下) 2편의 책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노자》라고 하며 도덕경(道德經)》(2권)이라고도 하는데, 도가사상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전기에는 의문이 많아, 노자의 생존을 공자보다 100년 후로 보는 설이 있는가 하면, 그 실재 자체를 부정하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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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자[列子]- 중국 고대의 사상가. 이름은 어구(禦寇). 정(鄭)나라 출신. 도가(道家)의 대표자, 또한 그 서적을 말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BC 8세기에서 BC 3세기에 이르는 고대 중국의 변혁기. 주(周)나라가 서북 오랑캐 침입을 받아 수도를 동쪽 뤄양[洛陽]으로 천도한 BC 770년에서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BC 221년까지를 가리킨다.
노자는 도(道)의 개념을 철학사상 처음으로 제기하였으며, 이 도는 천지만물뿐만 아니라 상제(上帝)보다도 앞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형상과 소리가 없어서 경험할 수도 없고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無)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천지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생성 소멸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무가 아니라 유(有)이다. 천지만물과 달리 도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실체이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는 면에서 보면 그것은 자연(自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도 간섭지배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보면 그것은 무위(無爲)하다고 할 수 있다. 통치자가 만약 이러한 무위자연을 본받아 백성들을 간섭 지배하지 않고 그들의 자발성에 맡긴다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진다. 노자에 의하면 일체 사물 사건들은 그들 자신과 상반하는 대립자들을 지니고 있다. 유(有)가 있으면 무(無)가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다. 이들 대립자들은 서로 전화한다. 화는 복이 되고 흥성한 것은 멸망한다. 이러한 대립전화(對立轉化)의 법칙을 알고 유(柔)를 지키면 강(剛)을 이길 수 있다. 이를 귀유(貴柔)사상이라고 한다.
노자사상은 열자(列子)와 장자(莊子)에게 계승되었다고 한다. 한(漢)나라 초기에 성행하였던 황노(黃老)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한고조(漢高祖)는 오랜 전란에 시달려온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파괴된 생산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자의 무위자연사상을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동한(東漢) 말엽에 도교를 창도한 장도릉(張道陵)이 노자를 교조(敎祖)로 추존(追尊)하고 노자오천문(老子五千文)을 신도들이 외우고 익혀야 할 경전으로 받들어 노자사상은 도교의 교리가 되었다. 위진시대(魏晉時代)에 하안(何晏)이 도덕론을 짓고 왕필(王弼)이 노자주(老子注)를 저술함으로써 노자사상은 위진 현학의 기본사상이 되었다. 또한 인도에서 들어온 불경을 해석하는 데 노자의 용어와 이론이 활용되어 격의(格義)불교 형성에 이바지하였다.
한국에서는 상고시대 이래의 신선사상이 삼국시대에 이르러 도가사상과 결합, 풍류를 숭상하는 기풍을 조성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재난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는 과의(科儀)도교가 성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산림(山林)을 찾아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선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장 자 [莊 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