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 염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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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 염상섭
염상섭(廉想涉, 1897.8.30~1963.3.14)의 본명은 상섭, 호는 횡보(橫步). 서울 종로구 적선동에서 출생했다. 염상섭은 1902년대에 나온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 활동은 한 작가인 동시에, 문학사적인 비중이 가장 무겁게 다루어지고 있는 작가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1917년 교토부립중학을 졸업하고 케이요오 대학 문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대학을 중퇴했다. 평소 고집과 술이 세기로 유명해서 호가 횡보(橫步)였고 오랫동안의 문단생활에도 내성적이고 아집이 세 특별한 친구가 없었다.
스스로 에밀 졸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으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20년 [폐허(廢墟)]동인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하여 이듬해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적 고뇌를 그린 [표본실의 청개구리] 로 명성을 얻고, [제야(除夜)],[만세전(萬歲前)], [금반지(金半指)],[조 그만일], [전화(電話)]등을 발표하여 한국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동아 일보 기자(1920), 시대 일보 사회 부장(1925),조선일보 학예부장(1929), 만선 일보(萬鮮日報) 주필(1936) 등으로 언론계에 있으면서 한때 평필(評筆)을 들어 경향파와 대립하는 입장을 취했으나, 그 후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다. 장편[사랑의 죄(罪)](1927), [이심(二心)] (1928), [광분(狂奔)](1929), [삼대(三代)] (1931), [모란꽃 필 때](1931)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해방 후 만주에서 귀국하여 경향 신문 편집국장(1946), 해군 정훈장교(1950)로 있으면서 단편[해방의 아들], [재회(再會)], [임종(臨終)], [일대의 유업], [두 파산(破産)], 장편 [취우(驟雨)]등을 발표, 1954년 서울시 문화상을 받고, 예술원 회원, 서라벌 예대 학장을 역임했다. 후기에는 주로 평면적 사실주의 수법으로 서민들의 생활 문제를 다루는 많은 단편들을 발표, 1956년 [짖지 않는 개]로 아시아 자유문학상, 1957년 예술원 공로상, 1962년 31문화상 등을 받았다.
염상섭은 항일운동가인 동시에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그는 선각자인 동시에 가난한 작가였다. 그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일본통이기도 했다. 그는 전통 지향적 보수주의자인 동시에 근대 지향적 진보주의자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염상섭의 양면적 성격은 그의 삶과 문학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는 언제고 생활을 문제 삼고, 현실문제에 집착하였다. 그의 중편소설과 장편 소설은 당대 사회의 진실을 문학 형상화한 실체이다. 염상섭 소설 쓰기의 원동력은 생활현실 체험과 상상력이었다. 그의 소설을 사회관찰의 기록이라고 부르는 뜻도 여기에 있다.
그가 이같이 현실문제에 집착하게 된 것은 당대 사회가 최대의 민족 수난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민족 수난기의 극복과 그에 따른 현실대응이 문제였다. 그 현실 대응 방법은 한 마디로 리얼리즘 문학 창작 방법이었다. 그의 문학과 삶이 가장 빛나던 때도 민족 수난기였다. 해방 이후의 그의 작품이 일제시대 즉 1930년대 작품만큼 돋보이지 않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 염상섭의 작품 세계 >
① 자연주의 문학의 수립 :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통하여 자연주의의 선구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초기 작품에서는 무겁고 침울한 자연주의적 경향을 보였고, 그 현실을 주관적으 로 해석했다. 암울하고 절망적인 사회 현실을 실험 주의적, 자연 과학적인 방법으로 작 품 화 하였다.
② 사실주의 문학의 확립 : 그의 초기 자연주의는 점차 사 실주의 경향으로 발전하였다. 그 의 사실주의 경향은 삼대로 대표되거니와, 본격적인 전형적 인물의 설정, 객관성을 띤 사건 의 전개, 현실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③ 근대 문학의 확립 : 그는 근대 사회의 특성을 도시에서 발견했고, 생활의 바탕을 개인에 게 두었다. 인생과 사회를 종합적이고 전면적인 입장에서 관찰했고, 사실성 위에 기록 했다. 그의 문학이 폭 넓은 근대 문학적 특성을 내포한 리얼리즘의 도시 문학으로 평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한국에서 자연주의 문학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염상섭 >
한국에서 자연주의 문학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염상섭(廉想涉)이다. 한국의 자연주의 문학을 말할 때 문제가 되어온 것은 개념의 모호성과 혼돈, 자연주의와 개성, 자연주의와 개인주의의 관계, 자연주의와 프로 문학,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문제 등이다. 염상섭은 전기 논문에서 자아의 각성, 개성의 발견, 창작상의 개성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자아의 각성에 대하여는 인간 정신의 가장 본질적인 의의는 자아의 각성 및 그 회복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인의 특색이며 그 가치관으로 볼 때 곧 문예부흥이다. 개개인의 눈으로 보면 어떤 신성(神聖)이나 경건이 도리어 추악·비속으로 보일 때가 있다. 이런 심리상태를 보통 현실 폭로의 비애, 또는 환멸의 비애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사상은 중추가 무너지고 암담과 고독을 낳고 가치관의 혼란이 야기된다. 이에 이상주의적 낭만주의시대를 경과하여 자연과학과 함께 자연주의 또는 개인주의 사상을 유발한 것이다.
참고문헌
※ 참고문헌
. 김종균. 국학자료원 1999년.
. 강인숙. 고려원. 1991년.
사이트 : http://myhome.naver.com/q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