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시대 극장과 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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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셰익스피어 시대 극장과 극단
16세기 후반부터 영국은 문예부흥기라 할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수많은 작품들만큼 그 작품을 받쳐줄 만한 많은 극단과 극장 역시 필요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생겨난 극장과 그리고 극단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영국에서 가장 먼저 생겨났던 극장은 The Theatre였다. 이 극장은 기존의 여관 뜰과 같은 연극무대가 아닌 최초로 극장다운 극장이 설립되었다는 것에 대해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이 The Theatre를 세운 사람은 제임스 버비지(James Burbage)로 1576년 당시 설립했고 그는 상당한 자산가이며 기업가로 전해진다. 물론 이 극장은 예술을 전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상업적 목적을 위해 세워진 듯 하다. 이 당시 극장에 반대하는 청교도 세력이 많았지만 이 The Theatre에는 청교도인의 재판권이 미치지 않는 북단에 위치해 있어 안전했다고 한다. 1598년 The Theatre의 땅 소유주와의 불화로 인해 해체된다.
The Theatre이 설립된 후 1년 뒤 (1577년) 에 Curtain 극장이 설립된다. 이 극장은 The Theatre와 마찬가지로 공공극장이었으며 1590년에서 1592사이 젊은 시절의 셰익스피어가 속해있던 스트레인지 극단(Stranges Men)이 여기서 공연한 것으로 알려진다. 훗날 극단 Queens Men이 이 극장을 임대하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이 당시 런던에 위치한 유명했던 극장은 Rose극장이다. Rose 극장은 1587년 경 필립 헨슬로우(Phillip Henslowe)라는 사람이 런던 강변에 세웠으며 1594년 이후 Admirals Men이 거의 독점적으로 활동한 극장이기도 하다. Admirals Men은 당시 유명한 대학재사파 출신인 크리스토퍼 말로(Marlowe, Christoper)가 극작가로 활동하여 유명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로즈극장 역시 유명세를 탔다. 1592년 당시 확장공사도 이뤄 졌었지만 14년 뒤인 1606년에 헐리게 되었다.
Rose 극장이 설립되고 난 7년 뒤인 1594년엔 Swan 극장이 지어졌는데 우리나라에는 백조극장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 극장은 좌석이 3000여 석이나 되는 당시 가장 큰 공공극장이었으며 Lord Chamberlains Men이 첫 공연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개장 이래 3년 뒤 시 당국에 의해 문을 닫게 되는데 이유는 희극공연 ‘개들의 섬’이 너무 선동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시대 극장 중 이 극장을 빼고는 설명 할 수 없는 극장이 바로 있는데 바로 글로브(The Globe)극장이다. 이 극장이 유명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당대 최고의 문헌이었던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 활동했던 극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극장의 설립자는 바로 리차드 버비지(Richard Burbage)로 그는 The Theatre를 설립했던 제임스 버비지의 아들이었다. 글로브 극장은 1588년 (1589이라는 설도 있음)에 세워졌는데 이 극장이 설립된 결정적인 계기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The Theatre의 땅 소유주와의 계약문제로 인해 리차드 버비지는 과감히 The Theatre를 해체(극장을 뜯어내 버림)시키고 템즈강 남단에 이 글로브극장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The Theatre를 해체시키고 그 재료로 글로브극장을 만든지라 그 규모나 모양면에 있어The Theatre와 매우 흡사했다고 한다. 글로브 극장의 극단동료 배우이자 극작가였던 셰익스피어는 이 극장에서 20년간 극작가 생활을 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걸출한 작품들은 모두 이 시기에 쓰여졌다. 글로브 극장은 당대 최고라 불리우며 많은 인파들 속에서 성공했었다. 글로브 극장은 노천강당으로 천장이 뚫려있는 방식이었다. 그래서인지 겨울에는 찾는 인파가 많이 없었고 있다 해도 관객들은 추위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래서 글로브 극장의 설립자인 리차드 버비지는 실내 극장인 블랙프라이어즈(Black Friars)를 세운다. 이 극장은 당시 겨울에만 사용되었고 실내에는 어두우니 촛불로 조명을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글로브 극장은 1613년 헨리 8세의 공연 도중 화재사건으로 인해 모두 다 타버리게 된다. 1년 뒤에 다시 그 자리에 글로브극장을 지었지만 1644년 청교도인의 세력에 의해 헐리게 된다.
이 밖에도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많은 극장들이 존재했었지만 그 와중에 가장 유명했고 아직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극장은 위의 극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블랙프라이어즈는 아직까지도 공연을 할만큼 그 전통이 전해지고 있으며 글로브 극장은 20세기에 세계적인 셰익스피어 연구가인 Gurr, Andrew에 의해 17세기 글로브 극장의 모양을 그대로 나타내기도 한다.
그만큼 많은 극장이 있었던 만큼 이 시대엔 많은 극단이 있었는데 16세기 중반 무렵 연극을 하기위해 생겨난 극단들은 모두 다 떠돌이 극단들이었다. 자신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극단생활을 시작했던 이들은 점차적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한 동안 적잖은 부를 누릴 수 있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이 등극하던 1559년경부터 이 극단들은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내용을 소재로 공연한다 하여 이들의 공연을 전면 금지시켰다. 그리고는 극단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에서 허가한 사람에 의해 후원, 지금으로 말하면 스폰서가 있어야 만이 극단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선포한다. 이 바람에 귀족의 후원을 받은 극단들은 날로 달로 성장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극단들은 점차적으로 쇠퇴하고야 만다.
이 시기 유명했던 극단들로는 Queens Men, Pembrokes Men, Lord Chamberlains Men, Lord Admirals Men, 그리고 King Men (Lord Chamberlains Men에서 개명된 극단)이 있었다.
먼저 Queens Men은 일명 여왕극단으로 1585년 (1588년이라는 설도 있음) 엘리자베스 1세 여왕 궁정의 연회담당관이었던 에드먼드 틸니(Edmund Tilney)가 설립했다. 결성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의 등극을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조금은 정치적인 목적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여왕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들은 거의 순회공연을 하였는데 이 극단이 때마침 1587년 어린 셰익스피어가 살던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븐에서 공연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문예에 관심이 많던 셰익스피어가 이 공연을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며 이를 계기로 이 시기 셰익스피어가 극작활동을 하기위해 런던으로 건너오지 않았나 하는 설이 있다. 아무튼 이 Queens Men은 이 시기 런던 연극계를 주름잡지만 크리스토퍼 말로의 Lord Admirals Men과 셰익스피어의 Lord Chamberlains Men이라는 뛰어난 극단이 등장하면서 Queens Men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1594년 런던에서는 왕실 귀족 헨리 카라(Henry Carey)에 의해 이 시대를 대표할 극단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극단은 바로 Lord Chamberlains Men이다. 이들의 첫 공연은 1594년 6월 뉴잉턴 버츠 극장(Newington Butts Theatre)에서였고 이내 제임스 버비지의 소유인 The Theatre로 본거지를 옮겼지만 이 당시 리차드 버비지(제임스 버비지의 아들)이 이 극단에 참여, 3년 뒤인 1598년 리차드 버비지의 소유로 된 그들의 마지막 본거지 글로브 극장(The Globe)으로 옮겨간다. 이 극단이 유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이들에 대한 영국 왕실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 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왕실에서의 공연을 9년간 32차례나 했으며 이는 당시 그들의 최고 라이벌 극단으로 간주됐던 Lord Admirals Men 보다 훨씬 뛰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는 이 극단에서 그의 명성을 쌓아 나갔으며 훗날엔 셰익스피어의 친구이자 유명한 극작가인 벤 존슨(Ben Jonson)의 작품도 공연됐다.
이러다가 1603년 제임스 1세가 왕으로 등극하면서 Lord Chamberlains Men에도 변화가 오게된다. 이 제임스 1세 왕은 엘리자베스 여왕에 버금갈 만큼 아니 어쩌면 보다 더 문예활동과 공연을 좋아했던 제임스 1세는 Lord Chamberlains Men이 자신의 눈에 잘 들었었는지 자기 자신이 후원자가 되어주기로 한다. 이 시기 Lord Chamberlains Men이란 이름에서 Kings Men(왕의 극단)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되며 이를 계기로 궁정 공연의 횟수는 훨씬 더 증가하게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당시 Lord Chamberlains Men에게 대적할 만큼 유명했고 라이벌이기도 했던 극단은 Lord Admirals Men이었다. 당시 대학 재사파 출신이자 셰익스피어와도 훗날에 많이 비교되고 있는 크리스토퍼 말로(Marlowe, Christopher)가 이 극단의 작가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1576~79년경에는 후원자 노팅엄 백작 1세 겸 에핑엄의 하워드 남작 2세인 찰스 하워드의 이름을 따서 로드 하워드 극단(Lord Howards Men)으로 처음엔 알려졌다. 1585년 하워드는 영국의 해군제독이 되었고, 따라서 극단도 Admiral(제독)‘s Men으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훗날에는 계속하여 노팅엄 극단, 헨리 왕자 극단, 엘렉터 팔라티네이트 극단으로 불리기도 했다. Lord Admirals Men의 주요배우는 에드워드 앨린이었으며 이 극단의 매니저이자 실제 고용자는 필립 헨즈로였는데, 그는 1616년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일했다. 그가 1592~1603년에 쓴 〈일기 Diary〉는 엘리자베스 시대 극장과 그 시대의 조직에 관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Lord Admirals Men은 1625년에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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