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 및 철학 비평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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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 및 철학 비평 과제
1. 존엄사와 관련하여, 「존엄한 죽음」
존엄사는 무척 다루기 어렵고도 껄끄러운 주제이다. 우선 존엄사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는 죽음을 말한다. 이는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http://www.doopedia.co.kr
존엄사가 논란의 쟁점이 되는 그 근본적인 이유는 환자 스스로가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점에 근거한다. 환자 자신은 식물인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의사표현은 물론, 기본적인 사고기능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 환자의 존엄사를 결정하는 것은 환자가 아닌 환자의 보호자와 같은 유의미한 주변사람이 된다. 과연 환자가 이를 원하고 있는 지는 결국 모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환자의 죽음의 존엄성 여부에 대한 판단 또한 환자가 아닌 그 보호자가 하는 것이다. 환자가 기계에 의존해 인공적으로 연장하는 수명이 정말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지 알 수 없으므로 호흡기제거 등을 통해 환자가 임종을 맞이하도록 하는 방법은 자칫하면 존엄사가 아닌 소극적 안락사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그만 살고 싶다고 결정하는 주체가 환자일 경우는 존엄사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부 소극적 안락사로 분류되어야 한다.
나는 존엄사에는 찬성하지만 소극적 안락사를 포함해 안락사에는 반대한다. 존엄사라면 환자의 무의미한 고통을 덜고 환자에게 직접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할 수 있도록 존중하는 것이 되므로 인정해야한다. 그렇지만 안락사는 결론적으로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게 되므로 어떠한 의미에서는 살인이라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을 보면 일부 자식들은 부모님이 겪는 치명적인 고통이 삶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그렇게 인공장치에 의해 수명을 연장하는 것은 오로지 생물학적으로만 생존하는 것이므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세상의 온 몸과 정신이 심한 상태로 온전치 않은 수많은 환자들의 삶 역시 질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 또한 무의미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므로 살지 않는 편이 나은가? 물론 그렇지 않다. 삶의 질과 그 가치의 문제를 당사자가 아닌 제 3자가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자 자신에게 질병의 말기 상황이 닥치기 전에 미리 서면으로 또는 적어도 구두로라도 서약을 받아놓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때, 말기암 판정을 받아 임종을 준비하는 것과는 달리 영상에 나온 김할머니의 경우와 같이 자신이 식물인간상태에 빠지게 될 것을 미리 예측하고 그 이후의 상황을 가정해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연관되는 문제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죽음에 대해서 대비하는 문화가 성립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잘 알려진 고사성어 중에 ‘유종지미(有終之美)’라는 말이 있다. 시작과 마찬가지로 끝 역시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죽음 역시 인생의 연장선인데 인생을 직접 내 손으로 마무리짓고 이를 준비할 수 있다면 그것은 회피해야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하고도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해야할 일인 것이다. 물론 죽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늘 당황스러운 문제겠지만,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야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본인과 주변 사람들에게 한결 나은 선택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전환시키고 말기암환자의 경우에는 이를 환자에게도 알리는 풍토를 확장시켜 자신의 마지막 생애를 정리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말기암환자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노인인구의 경우에는 비록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다소 껄끄럽게 여겨지더라도 만일을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교육하고 연명치료거부에 대한 사전의사결정제도를 확립시키는 것이 요구된다. 이런 환경이 조성된다면 더 이상 사람들도 존엄사 및 안락사 문제로 정답이 없는 논의를 벌이는 일이 줄어들고 불의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보다 나은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2. 「봉사활동을 하다가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네요……」
본문에는 한 자원봉사자가 정신병원에서 봉사를 한 후 그곳의 실태를 목격하고 이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조치를 취할 수 없어 죄책감이 든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정신병원에서는 마치 영화나 소설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이 실재하고 있었다. 환자를 강제 입원시키고, 성분 의문의 약을 다량 투여시키고, 투여 시에도 장정들에 의해 사지가 억제된 채로 강제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장기간 약을 복용한 환자들은 무기력해지고 정신이 흐려지고, 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어떤 처벌도 없이 조용히 넘어가는 그런 일들…….
정신병원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는 것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정신병원 강제입원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읽고 찾아보게 된 우리나라의 정신병원 강제입원 조항은 다음과 같다. 현행 정신보건법에는 보호의무자 2인이 동의하고, 정신과 전문의 1인이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강제로 입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법이 얼마나 허술하고 인권의식이 미비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비록 올해 초에 한 의원이 강제입원 규제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아직까지는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는 이야기가 없다. 심지어 정신보건법에는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법하지 않은 입원·수용을 금지하고 있다는 규정이 있는데 환자의 동의조차 없이 입원을 할 수 있다니, 이게 어째서 적법한 입원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의문스럽다. 법조차 모순성을 띌 정도이니 환자의 권익은커녕 기초적인 인권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 질 리가 없다.
정신병은 말 그대로 정신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나타나서 눈에 보이는 증상이나 징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특정인을 대상으로 질환자라고 판단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입원절차에 당사자의 동의가 제외되어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칫하면 이 조항을 악용해 사람을 감금시키는 데에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에 나타난 것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병원의 수많은 환자들 중 누가 진짜 유병자이고 누가 비유병자인지 명확히 구별해내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그들이 입원한 이상 병원이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이미 온전히 환자를 대하는 방식뿐이다. 병원은 입원한 환자가 진짜 환자인지를 궁금해 하지도 않고 이를 판별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병원에 입원함과 동시에 ‘정신질환자’의 꼬리표가 붙음으로 인해 모든 언행이 정신이상적인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는 실로 소름끼치고 무서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입원 전에 사전 절차를 더욱 세밀하고 까다롭게 만들어야함은 물론이고, 입원 절차에는 환자 당사자의 입원 동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환자가 집에 있을 땐 완전히 병자이고 가족들을 못살게 구는데, 진료만 받으면 그가 정상인처럼 이야기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강제 입원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경우에는 환자의 문제 행동이 나타날 때 집에서 녹취나 영상물을 통해 증거물을 남겨두면 해결이 가능하다. 평소에는 이상 행동을 보이던 환자가 전문가 앞에서 마치 정상인과 같이 행동한다면, 전문가는 증거물인 영상 등을 보고 이상여부를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강제 입원 외에도 정신병원에서 개선시켜야 할 점이 있다면, 첫째로 그것은 환자에 대한 대우일 것이다. 백과사전에는 병원의 제1의(第一義)가 환자를 수용하여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이라고 나온다. 정신‘병원’역시도 당연히 병원의 한 부류이다. 그런데 어째서 정신병원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지 않고 오직 수용 및 감금만 하는 것인가? 정신질환이 아무리 다루기 어렵다고 하여도 계속해서 노력하지 않고 하루에 세 번씩 사람을 멍청하고 아둔해지게 하는 약물을 투여해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병원이 할 일이 아니다. 만일 병원들이 이러한 행태를 지속한다면 차라리 그 이름을 정신병원에서 정신질환자 수용소 및 감금소로 바꾸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병원이라면 마땅히 그 의에 맞는 일을 하고 환자를 도와야 한다. 외과병원, 내과병원은 입원 경력이 있다고 해서 차별받지 않는데 유독 정신병원만 입원경력이 있으면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정신병원이 그 직분을 다하지 않으니 정신질환자체보다도 병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정신병원에 입원 경력이 있는 환자는 사회에서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