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생명윤리철학 기사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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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생명윤리철학 기사 비평
①.
자신이 낳은 딸이 자폐아 판정을 받자 자신과 딸의 처지를 비관해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자신의 딸을 목 졸라 죽인 친모가 징역3년에 집행유행5년이라는 살인이라는 죄목에 비해 다소 가벼운 판결을 받았다.
미성년자아동과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관심이 집중되고 늘 형벌에 대한 논란은 일어난다. 일반인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보다 사회적 약자에게 악한 짓을 했을 때는 더 가혹한 형벌을 내려야 한다는 게 대중의 심리이고 법률에도 명시되어있다. 그래서 이 자폐증에 걸린 장애아동을, 게다가 자신의 혈육을 살해한 비정한 친모는 왜 다른 사건에 비해 적은 형량을 받았는지에 대해 의문점이 들었다.
법원에서는 친모가 양육에 대한 극심한 고통이 살해동기에 참작할만한 동기이고 죄량을 떠나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라 감형을 했다. 과연 양심적 가책이 감형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사람의 양심이란 사람마다 다르고 누구도 모르는 추상적인 것인데 무엇보다 정확하고 분명해야 할 증거와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딸을 두 번이나 살해하려고 한 친모가 양육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친모가 겪은 고통이라는 것이 자신의 아이기 때문에 키워야겠다는 생각과 자폐아를 키우다가 자신의 인생이 암담해질 것 같아 저 아이를 없애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자신의 아이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을 했다 해도 자폐아 판결을 받은 지 단지 3년이 지난 후인데 가망 없는 미래라 생각하고 죽였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과 사회의 노력으로 인해 자폐증상이 나아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동반자살을 시도 한 후에 며칠 지나지 않아 사고 소리에 크게 우는 아이를 목 졸라 죽인 친모가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3살밖에 안된 아이가 무언가가 불편하면 투정부리는 것과 큰소리에 우는 것은 당연하다. 이 당연한 일을 친모는 자폐아라는 이유와 이전에 쌓였던 생각들 때문에 우발적으로 죽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다만 친모이기 때문에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 예상하기엔 자신의 아이를 죽인 친모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다. 이 죄책감 또한 ‘자폐아였으니까’ 라는 이유로 정당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반대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부모님을 죽인 자식이 있다면 과연 같은 판결이 날까 의문점이 든다. 분명 친모가 받은 형량보단 훨씬 무거운 벌을 받을 것이다. 또한 자폐아 판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가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면 과연 친모가 아이를 죽였을까 궁금하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이 판결로 인해 장애아동을 둔 부모님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부모님들에게 장애아동에 대한 책임을 더욱 요구하기보단 아이를 키우기가 힘든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아이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친모가 평생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 살아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살인에 대한 처벌을 감형시킬 정도의 고통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법원에서는 장애아동 부모의 힘든 점을 인정하고 감형시켜주기 보단 친모이기 때문에 해야 할 행동을 안 한 것에 대해 더욱 엄중히 처벌해야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또한 보다 확실하고 객관적인 이유에 따라 판결을 내려야 했다고 생각한다.
②‘유전적 암 위험군’ 배우 졸리 가슴 절제 국내 유방암 환자 느는데 따라 해도 괜찮나
지난 5월, 유명한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절제수술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유전적으로 유방암 발병율이 매우 높았고 그녀의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예방차원에서 수술을 했다고 당당히 밝혔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수술을 밝힌 안젤리나 졸리가 멋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다수가 섣부른 판단이라고 비판을 하고 있다.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확률일 뿐인데 너무 의료를 믿고 섣부르게 유방을 절제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졸리는 유방암으로 엄마와 고모를 잃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병으로 죽었다면 그 병에 대한 두려움은 확률로 나타난 것 이상으로 다가오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졸리는 자신의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힘들어 하는 과정을 보고 자라면서 많이 걱정을 했기 때문에 이를 자신의 아이들에게 겪게 해주기 싫었을 것이다.
물론 많은 연구결과들이 있지만 아직 사람 몸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의학적인 발병은 확답을 주지 못하고 확률로 나타낸다. 이로 인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예정된 삶보다 길게 사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나중에 유방암에 안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병에 걸린다’가 아닌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안 걸릴 수도 있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100%로 발병을 장담할 수 있는 병은 소수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종합검진을 받고 몸에 작은 이상이라도 있으면 병원을 가서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는다. 그러면서 졸리가 일종의 예방적 치료를 한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는 것은 이중적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위에 혹이 생겨서 이것이 암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혹을 제거한다. 이를 확률만 믿고 제거했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와 비슷하게 유방을 절제하는 것은 예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수술 후에 외적으로 변하는 것은 수술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문제이고 수술한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사실 졸리의 유방절제수술이 강하게 비판을 받는 이유는 수술이 서투른 판단 이였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의 행동이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노파심에 절제술을 많이 하고 유전적 검사를 위해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검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영향력 때문에 그녀의 수술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그녀에게 가혹한 간섭이 아닐까 생각된다. 연예인도 한 인간일 뿐이고 특히 목숨에 관련 된 일은 누구나 두렵기 때문이다. 졸리의 행동이 회사에 대한 홍보나 자신을 따라하라고 한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그녀가 겪었을 두려움이 더욱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수술사실을 기고하면서 수술 후에도 당당한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나타나고 예전과 같은 여성의 매력을 풍기는 그녀를 보면서 많은 여성들이 희망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범한 유방암 환자보다 졸리가 유방절제를 결심하고 이를 밝히기 까지는 몇 배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녀의 용기와 진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돈과 기업의 상술이라는 것을 통해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③“우리애 ADHD 아닌지…” 학기 초 정신과 줄서는 초등생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많은 초등학생들이 정신과를 찾고 있다. 이들이 정신과를 찾는 이유는 선생님이 ‘애들이 너무 정신이 없으니 정신과상담을 받아보라’는 말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부모님들은 혹시나 자신의 자녀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에 정신과를 찾아간다. 이로 인해 ADHD판단을 받는 아동의 수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ADHD가 정말 장애라고 판단하고 약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질병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든다.
질병에 대한 정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하여 변하였다. 예전에는 몸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질병이라고 했다면 요즘은 자기간호를 못하거나 사회와의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다면 질병이라고 칭한다. 즉 질병이라는 범주가 예전에 비해 크게 확대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예전에 없었던 질병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지금도 계속 질병들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예전에 없던 질병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엔 자연스럽게 지나가던 행동들을 장애라고 판단하는 기준들이 생긴 것뿐이다.
ADHD도 역시 마찬가지다. 몇 십 년 전 아이들도 요즘 아이들처럼 수업시간엔 떠들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교사들이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토대로‘아이들이 정신없다’면서 ‘정신과상담을 받아봐라’라고 말하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예를 들면 수업시간에 돌아다닌다고 하면 아이의 집중력부족이라는 장애를 의심하는 것이다. 그 아이의 기질은 생각하지도 않고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아이가 체육시간엔 다른 아이보다 집중을 잘한다면 이 아이를 ADHD라고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ADHD검사를 하는 상황 또한 아이들에겐 집중력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ADHD가 장애라 판단 받는 이유는 요즘 시대에는 공부를 잘 하는 것이 부모님들의 기대이기 때문이다. 활발하게 돌아다니지 않고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는 아이를 부모님들은 이상적인 아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아이가 이처럼 행동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이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회였다면 상황은 반대로 몸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아이가 장애라고 판단할 것이다. 무엇보다 ADHD환자수가 증가하는 데에는 과잉진료와 제약회사의 상술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ADHD치료약의 매출은 18년 사이에 약 50배가량 증가했는데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그 수를 통계 내는 집단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약회사와 계약을 맺은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다. 특히 정신병은 우선적으로 약이 투여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각하다. 제약회사가 대중들의 심리를 이용해 약을 팔기 위해 전염병에 대한 불필요한 약을 판매한 것은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ADHD는 장애라기 보단 사회의 요구와 제약회사들의 이익추구 결과로 만들어진 질병이다. 따라서 자신의 아이가 정말로 주의력 결핍인지 아닌지 검사를 통해 검증받기 보단 우리 스스로가 좀 더 관찰을 하고 판단을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또한 약으로 치료를 하기보단 아이가 집중을 못하는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약회사들은 ‘무지’의 대중들을 이용해 이익을 창출하려 하기 전에 그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와 약을 공급하여 사회발달을 추구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