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쓸쓸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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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너무도 쓸쓸한 당신
98년 출간된 소설집 의 표제작인 이 작품은 시종일관 주인공인 ‘그녀’와 ‘그녀’를 이루는 갖가지 요소들과의 불협화음들을 흩뿌리듯 진행된다. 철저하게 ‘그녀’의 시각으로만 조율된 사실들은 소설 수업 도중 읽었던 여러 편의 일인칭 소설들로 말미암아 무조건적인 수용을 방해하고 있었다. 어떤 치밀한 반전으로 그녀의 왜곡된 시선이 드러나는 구조는 아닌지, 그녀를 이루는 요소들 중 어떤 것이 갑자기 소멸되어 그녀의 삶에 위태로움이 가해지는 것은 아닌지, 쓸모없는 상상들은 작품 감상을 작품 추리로 바꾸어 가며 기이한 독서를 만들고 있었다. 독서를 방해한 또 하나의 요소는 작가인 박완서와, 주인공인 ‘그녀’와, 독자인 ‘나’의 판이하게 다른 세대차에 대한 의구심같은 것이었다. 서로 한 세대씩이나 차이나는 연령의 벽은 작품 속 인물이 느끼는 현실 인식에 오롯이 내가 공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바뀐다.
1. 물질이 제공하는 생의 무게감
이상한 혼란들 사이에서 작품을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뚜렷하게 제시되는 생계유지와 관련된 액수들이었다. 가족들이 몇 명이며, 그 가족이 기대고 있는 수입원의 용량은 어느 정도인가, 화장품 가게가 있었을 때와 없었을 때의 그녀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남편의 지출이 그녀의 편견을 어떤 식으로 허물어뜨리는가, 하는 등의 여러 장면을 통틀어 물질의 제시는 독자가 느끼는 공감대의 증폭에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작품의 초반에 인지하는 남편의 이미지는 굉장히 부정적이다. 장년을 통과해 노년을 향해 가는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아니라, 차라리 더 현실적이거나 어쩔 수 없는 부분들에 기대고 있다.(자녀라든지, 생계 수단으로써의 월급 봉투라던지) 그녀는 단상에 서 있는 남편의 이미지를 경멸하면서도 그런 일들로써 얻어지는 수입에 생을 맡기고 있다. 그건 자신의 생존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원활한 회전까지 의미하는 것이다. 사돈과의 관계에서 미묘한 박탈감을 경험한 그녀가 비행기 표를 이용해 신혼 여행길을 훼방 놓으려는 모습에서도 물질적 요소가 개입된 감정의 표현을 엿볼 수 있다.
삶을 구성하는 의미에서 돈의 존재는 그 풍요로움의 여부에 따라서 작중 인물의 외로움까지 조절한다. 작품의 종장에서 남편과 벌이는 설전은 자신이 남편에게 행했던 물질적 착취가 자신에게로 전이되자 그녀가 분개한 광경이다. 이 장면에서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의 따뜻한 마음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작품 내내 부정적으로 묘사되던 남편에게서 현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자식을 누군가에게 뺏긴듯한 묘한 박탈감, 그녀 스스로가 원한 듯 보이는 남편과의 별거 등에서 그녀는 이제 남은 것은 부족하지 않은 돈 뿐이라는 듯 강하게 남편과 대립한다. 남편의 정강이에서 피를 빨아간 모기는 그녀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2. 외로움의 위치
작품의 제목과도 연결되는 쓸쓸함이나 외로움과 같은 주제어가 이미 주인공의 격양된 감정 표현 덕에 감지해내기 어려운 부분은 아니다. 다만 그 외로움이 누구에게서 누구로 전이되고 있는지는 주목할 만하다. 작품 내내 그녀는 별거로 인한 남편의 부재에 쓸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돈에게 아들이 휘둘리는 모습이 그녀에겐 더 충격적이다. 표면적으로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떠나가는 마당에 홀로 서 있는 그녀에게서 외로움을 읽을 수 있다. 1인칭 소설이 아님에도 분명하게 1인칭적 시각을 견지하는 작품의 텍스트도 한 몫 한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상실은 그녀 자신만의 것으로 국한될 수 없음을 잘 알 수 있다. 남편은 퇴직으로 인한 연금 지급조차도 그녀에게 제공하며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다. 만성적인 절약 자세는 그를 버티게 한 유일한 특기이다. 그녀와 남편의 별거는 그녀에게 해방감을 제공함과 동시에 남편에게 상실감을 제공했음에 틀림없지만, 작품은 남편의 감정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어떤 방법도 동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 그녀가 남편의 외로움을 충분히 감지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무신경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니 작품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그녀가 아들을 독차지하는 안사돈의 모습에서 분개할 때, 그 상실감을 남편에게서 읽어보라는 충고의 욕구가 든다. 이제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외로움은 누구에게 있는가.
3. 그녀의 시각이 견지하는 것
남편의 지나친 보수 성향은 고스란히 그녀의 경멸로써 읽어낼 수 있는데, 이 보수적 태도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대통령의 교체와는 관계없는 남편의 복종적 태도이다. 그의 이러한 체제순응은 그녀가 느끼기에 ‘위로가 필요없는 사람’으로 비춰진다고 한다. 그녀가 남편에게서 요구하는 바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남편이 단상에서 단하의 인물들에게 요구했던 태도를 그녀는 남편이 가족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고 느낀 것으로 보여진다.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없는 기분 다 쏟아가며 일하던 직장에서의 염증 같은 것을 해소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족의 기능을 다하는 것인가. 남편은 그 기능을 가족에게서 요구한 적이 없었으며, 그것은 그녀에게서 가족원이라는 정체성을 날려버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을 읽어보면 그가 가부장으로써의 책임을 무참하게 뒤집어쓰고는 있을망정, 그 권위에 대해서는 스스로 재고한 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들의 유학을 지원하고 딸의 대학 생활을 위해 별거 생활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우리는 가족원의 복종을 강요하는 가부장을 읽을 수 없다. 하물며 전적으로 자신의 수입에 의지하는 가족에게 가부장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 같은 것도 있을 법한데 말이다. 그녀 또한 남편의 외적인 모습이나, 어떤 보수적 태도가 맘에 안 들 뿐이지 남편의 넉넉한 헌신을 경멸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니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인지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녀의 행동이나 태도가 불러일으킨 기분이라 기보다는, 그녀의 부정적 인식 자체가 쌓이고 쌓이며 오는 비루함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읽는 그녀의 시각이 삐딱했다고 느껴지는 순간, 작품 초반부에 진행된 여러 내러티브는 진실과 갑자기 멀어진다. 작품은 어떤 반전의 요소가 가미된 사건을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1인칭의 함정만은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