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만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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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만세전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만세전
나는 작년에, 대중문화에 관한 수업을 인연삼아 뒤늦게 영화 『바벨』을 감상할 기회를 얻었었다. 영화는 소통이 부재한 현대상을 희화하고 있었는데, 그 진행은 ‘다인종의 인물’이라는 시작에서 점층적으로 출발하여 장애와 국경, 언어 등에 대한 장벽 설정으로 이어졌다. 영화가 의도한 구성상의 정점은, 관객에게 이 이야기가 궁극적으로는 성경이 말한 바 있는 ‘바벨탑’의 소통 부재를 상징화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체험이다. 서사와 그 제목 간의 유기성은 그만큼의 긴밀함을 요하는 작업이다.
「만세전」은 앞으로 뿌려질 만연체 문장과는 관계없이,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기 전해 겨울이다.’라고 간결하게 설명된 한 줄의 문장에서 출발한다. ‘만세’는 그 후, 작품이 끝나기 전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을 단순한 시간적 배경의 제시라고 생각하고, ‘때는 1918년 겨울이었다.’라고 말할 것을 염상섭이 무슨 변덕이 생겼는지 ‘만세의 전해였다’며 가볍게 은유하고 넘어가는 것이라 판단하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추리의 과정은 끝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럴 수 없는 것은 이 작품은 서두보다도 이전에, 그러니까 제목의 위치에서 이미 ‘만세前’이란 언급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일면 욕심에 가깝다. 시대의 성찰이 결여된 지식인의 내키지 않는 여정이 ‘만세’의 격정 직전이었다는 것이 뭘 어쨌다는 건지? 물론 만세의 前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만세의 後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당연하다. (작품에 언급 되었건 안 되었건, 그건 기본적인 도출 과정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 쯤에서(원래라면 결론에서 제시해야 할 과제적 성격이 농후하긴 하지만), 우선 ‘아내의 죽음은 시대의 종말로 해석할 수 있는 소재인가’라는 의문을 먼저 내던지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내는 어디에 있는가
이인화에게 부재한 것은 우선적으로 애정이다. 애정의 부재는 방황으로 표현된다. 서울에 가는 여정이 ‘에둘러’ 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와 숙박’을 영위하는 지체이다.(사실, 동경 유학생으로 머물러 있는 이인화의 전반적인 모습은 지식인의 총체적 지체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인화의 이런 결핍은 사뭇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는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 자신이 안위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은 세태와 상황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 허탈한 면죄부이다. 여기서 세태는 물론 망국 현실이며, 상황은 아내의 병고이다. 여담일 수 있지만, 나는 아내의 병고가 ‘산후더침’이라는 애매한 병명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에 탁월함을 느꼈다. 그것은 현진건이 「운수 좋은 날」에서 말한 어떤 시대적 고통을 수반하고 있는 병환이 아니다. (이인화의 가문 풍경 또한 망국민의 피폐함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 아내의 병고는 시대의 아픔과 분리되어 인식된다. 동경 유학이라는 한 가지 선택은 놀랍게도 이 두 가지 풍경을 훌륭히 외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아내는 어디에 있는가? 물론 그녀는 서울에 있다. 작품은 동경에서 출발하여, 서울까지 이르는 이인화의 여정에서 그가 느끼는 시대의 인식과 생각의 변화 과정을 쫓고 있다. 여기까지는 쉽게 설명된다. 아니, 서울에서 완성된 듯 보이는 인식과정을 통해, 그가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며 슬픔을 진정으로 소화해내는 데까지는 쉽다. 일본의 수도에서 조선의 수도까지, 유학이라는 외도에서 안식처로의 귀환으로 파악한 뒤부터가 중요하다. 그의 종착점은 세태적으로 망가져 있고, 상황적으로 종결에 다다라 있다. 처음의 분리된 인식이 합쳐지는 순간이다. 연락선의 목욕탕에서 일본인들의 수다 조선의 추위와 온돌에 대한 일본인들의 잡담을 말한다. (「만세전」, 『실전독서논술작품선』3권 109p., 계몽사)
가 말해주듯, 시간 설정은 겨울이고, 따뜻한 남쪽에서 추운 북쪽으로 올라가는 여정은 이인화의 종착점에 대해 애초부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론 그것이 예견된 죽음을 방관하러 가는 과정일지라도) 남과 북이라는 위치적인 설정은 안정과 불안정, 지배와 피지배, 침략과 피탈 등으로 다양화시킬 수 있겠으나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조선의 농민들이 일본인들의 감언이설에 이끌려 징용된다는 북해도가 가질 위치적 상징성을 생각해 보고 싶다. 만약에 정말로, 염상섭이 남쪽과 북쪽이라는 위치로 깊은 사유를 거쳤다면, 북해도는 그가 알고 있는 한 최악의 장소일 것이다. 그곳은 위도적으로 최북단이라는 것은 물론, 침략자들의 사유 공간을 위해 망국인이 일해야 하는 모순의 공간이며, 문명적 시혜로서도 가장 뒷순번에 있어 보이는 장소이다. 이인화가 이런 현실에 대해 ‘엿듣게 된다는 것’은 운명론적 서사 구조처럼 보인다. 그의 의지가 닿지 않은 부분에 그의 계몽을 위치시킨다는 것 그가 유학생이었다는 점을 연동시켰을 때, 작품의 처음에 있던 이인화는 조롱할 만하다.
, 그것은 작품의 작자로서 차지한 염상섭의 신적 위치가 보여준 인형조종술이다. 작품에는 이인화가 그 운명을 확인하는 순간이 있다. 연락선에서 이유 없는 수사를 받고서 이유를 모르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그것이다. 여기서 이인화를 막무가내로 수사한 일본 경찰은 주인공의 의지라는 영역에 속해 있지 않다. 그런데 이인화의 눈물은 많은 해석을 가능케 한다. 아니 해석보다도 공감을 가능케 한다. 그가 목욕탕에서 조선인의 징용을 엿듣게 된 후에, 수사를 받았다는 과정 때문이다. 처음에 자신이 조선인임을 굳이 드러내지 않은 채 탕에 들어간 것과 그로 인해 일본인들이 맘대로 떠드는 것을 듣게 되는 이 인과의 과정, 그 후에 조선인임이 탄로나는 흐름 속에, 이인화의 내면에서는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조선인’이라는 신분(그 장소, 그 순간에서 이미 조선인은 ‘신분’이다.)이 재조정되고 있었을 것이다. 경찰의 원인 모를 추궁이 끝난 후 이인화의 눈물은 이런 인과 과정을 통해 쏟아졌다. 조선인이 일본에서 ‘지상의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 자신도 조선인이었다는 재인식, 조선인이기 때문에 현장취조를 받아야 하는 바로 눈앞의 현상. 어느 독립투사가 지하에서 해방운동을 펼치다 순사의 습격을 받는 상황이 아니다. 거기에는 투사의 의지적 행동이 부른 결과가 있다. 이인화는 피동적으로 사실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으며, 이유가 없는 취조를 받았다. 비의도가 비의도를 부른 것이다. 이 인과관계는 정당하다. 인과관계는 정당하지만 그것을 겪는 인물로서는 감당키 힘들다. 세상은 그런 것에 ‘억울함’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가? 개인적인 억울함은 시대의 울분과 연결된다.
다시 아내의 위치로 돌아와 보자. 정확히는 아내를 둘러싼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작품 속에서 이인화가 드디어 아내와 마주하는 장면, 아내는 자신의 앞에 있는 죽음에 대해 체념적이지만 자신이 떠난 이후의 자리를 걱정하며 신음한다. 그 이후 짤막한 설명, 이인화의 사촌 형은 종가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그에게 자식이 없는 것은 집안의 우환이다. 다시 그 이후, 이인화는 사랑에서 아버지와 대면한다. 아버지 옆에는 김 의관이 앉아 있다. 이미 이인화는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 김 의관은 그럴 그릇이 못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게 설명이다. 그런데 김 의관은 아버지의 강한 신뢰를 업은 채 살아 있다. 그런 아버지의 신뢰감은 한의학에 대한 신봉과 연결되며, 동시에 양의학에 대한 불신으로 반증된다. 누이동생은 김 의관의 빈궁한 행색을 목격한 이야기로 수다스럽다. 그런 누이동생을 어머니는 체통에 맞지 않다며 꾸짖는다. 그의 가문에는 이렇듯 잔존하는 ‘조선풍’이 파상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조선풍은 이미 객관적으로 망가져 있다. 이것을 ‘이인화가 아내의 병고를 목격한 뒤에’ 배치했다는 것. 앞에서 언급했던, 아내의 죽음을 시대의 종말로 해석하고픈 내 개인적인 사심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동어반복이 될 것을 각오하고 각설하자면, 아내는 부서진 장소에서 죽는다. 이인화는 평온의 장소에서 안위하고 있었다.
이인화의 변화 양상
우리는 작품의 주제가 조선의 현실에 대해 깨우쳐 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인화의 처음에 대해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만세가 일어나던 전(前)해 겨울이다.’까지는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 이후의 문장을 살펴보자.
……세계 대전이 막 끝나고 휴전조약이 성립되어서, 세상은 비로소 변해진 듯싶고, 세계 개조의 소리가 동양 천지에도 떠들썩한 때이다. 일본은 참전국이라 하여도 이번 전쟁 덕에 단단히 한밑천 잡아서, 소위 나리긴, 나리긴 하고 졸부가 된 터이라, 전쟁이 끝났다고 별로 어깻바람이 날 일도 없지마는, 그래도 또 한몫 보겠다고 발버둥질을 치는 판이다.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국에 대한 언급이 부재하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두 가지 주목할 부분, ‘세상은 비로소 변해진 듯싶고’와 ‘소위 나리긴, 나리긴 하고 졸부가 된 터이라’라고 하는 대목이다. 조선에 대한 생각 부재가 부른 ‘세상이 변했다’의 파악 단계. 이는 이미 비관도 낙관도 아닌 현상 관전에 머무른 사고를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의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냉소하는 문구의 나열. 일본을 조선의 시혜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결국 이광수같은 지식인과는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