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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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침묵의 미래
#들어가며
김애란이 새로운 소설을 들고 왔다. 말을 잃은 세계를 다루는 이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녀의 이야기방식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언뜻 보아서는 그녀의 작품세계가 새로운 방향을 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사유’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단편은 전작 ‘두근두근 내 인생’의 속편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보다 깊어진 사유를 담고 있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자선 대표작 역시 언어와 인간의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애란의 이 낯선 사유가 뜬금없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따라서 이 작품은 김애란의 작품이 필연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어떤 지점으로 보여진다. 언어를 주시하다 보면 결국 문화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말’에 대한 사유의 깊이

지금까지 김애란은 작품에서 말의 사용자로서의 인간을 화자로 삼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이 단편에서는 다른 종류의 화자를 내세운다. ‘침묵의 미래’의 첫 단락을 읽으면 주인공이 우리가 생각하는 ‘인물’과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우선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인지 화자는 궁금해한다. 이 답을 안다면 작품을 절반 정도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규정할 수 없는 나’와 유래를 알 수 없는 ‘나’의 이름을 찾는 과정이니까. 화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지만 어떤 틀 안에 가두지 않는다. 그가 쓰는 단어는 모두 추상적인 관념이다. 그저 내가 아는 ‘나’의 특징을 알려줄 뿐이다. 독자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화자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상상해야 한다.
그는 누구일까. 작품을 천천히 주의깊게 읽어보자. 여섯째 문단에 드디어 그를 알리는 가장 확실한 문장이 나타난다. ‘오늘 태어나 곧 사라질’ 그는 ‘하나의 언어가 사라지는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오는 숨결과 기운으로 이루어진 영이다.’ 매일 새로운 언어가 사라지며 ‘그렇게 마지막 화자를 떠나, 하늘로 오르게 된 존재’가 바로 화자다. 사라진 언어가 남기고 간 기운. 따라서 그는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지 못하며 이름을 알려줄 수 없다. 그는 형체가 없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으로든 불릴 수 있다. 그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존재하며 사용자에 의해 규정된다. 그는 규정될 수 없음으로써 존재한다. ‘우리가 우리의 고유한 단어를 발음하면 저 멀리 심연으로부터 여러 개의 시간이 물수제비 뜬 듯 퐁,퐁,퐁 하고 단번에 뜀박질 해 덤벼온다. 시공이 밀려온다.’ 언어에는 세월의 변화가 담겨 있다. 그는 시간이고 공간이며 하나의 거대한 역사이다.
화자는 이런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늘어놓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조급한 독자를 위해 중대한 단어를 내놓는다. 은 사라져가는 언어를 보호하고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한 취지로 설립되었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발화자가 사라진다는 것이며 발화자가 이룩한 문화와 삶의 방식이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진다는 의미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을 세운다고 언어를 보존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언어 없이는 살 수 없으니, 언어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와의 싸움에서 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언어를 박물관에 보관함으로써 사라짐을 막을 수 있을까. 언어를 지킨다는 것은 그 고유성을 인정하고 언어가 사용되는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즉 그들이 올바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려와 같이 ‘겨우 사라져가는 언어나 보자고 (중략) 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 박물관은 언어의 소멸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며 그 소멸을 애도하는 장소로 전락한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으며 ‘죽여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의 존재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박물관은 보호라는 명분으로 언어를 가두어 결국 사라지게 만든다. 그들은 ‘살아있는 언어’를 전시하기 위해 언어의 사용자인 ‘인간’을 전시한다. 박물관을 지키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죽은 방에 ‘멸’이라는 푯말을 세워두는 일뿐이다.
작품은 이제 박물관을 구성하는 ‘징집당한’ 이들의 일상을 묘사한다. 그들은 박물관 안에서 서서히 파괴되어 간다. 전시관을 지키는 화자들이 ‘대부분 혼자’인 이유가 그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박물관이 설립된 이유가 언어의 사멸을 공인하려는 것임을 독자는 알아챌 것이다. 이제 누구도 언어를 복원할 수 없도록 차단한 조치이다. 영문도 모른채 박물관으로 잡혀온 사람 중 몇몇은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그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작가는 객관적 진술이라는 효과를 위해 언어 속에 존재하는 영을 화자로 선택하여 언어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관찰한다. 그리하여 언어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언어는 사람들의 입이 아닌 박물관에 가두어짐으로써 종말을 고한다.

#결론
[침묵의 미래]에서 눈에 띄는 점은 소설 초입에 화자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소설의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이 부분은 참신한 묘사로 소설의 미학적 특징을 살리고 있다.
작가는 언어를 화자로 내세워 언어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마치 영혼처럼 떠돌아다니며 박물관을 묘사한다. ‘말’을 주인공으로 삼아 1인칭으로 서술하는 기법은 흥미롭다. ‘말’이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의지가 없는 존재이므로 ‘화자’가 없는 말은 쓸쓸하다. 1인칭 서술임에도 건조하고 상황설명에 치중하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의지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이므로 비극적인 결말은 당연한 수순이다. 김애란이 작품 초입에 ‘마지막 화자’를 떠난 말을 주인공으로 선정한 점으로 보아 비극적 결말을 목표로 했음은 확실하다. 그러나 언어의 미래에 대한 어떠한 가능성도 남겨두지 않은 이 결말이 아쉽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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