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쉐퍼의 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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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란시스 쉐퍼의 문화관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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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종교와 문화의 관계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
프란시스 쉐퍼의 문화관을 알아보기 전에 종교와 문화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문화관을 공부함에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종교와 문화는 어떠한 신념을 기반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형성된 문화는 종교의 관심을 표현하는 한 형식이 된다. 또한 종교는 문화에 의미를 주는 실체가 된다. 둘째 종교 중에서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에서 공동체나 집단 즉 사회를 이루게 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이 세속적인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문화가 기독교적인 삶의 방식의 결정체로서 형성되어야 하는지 생각할 때 기독교와 문화는 관계가 깊다고 볼 수 있다. 셋째로는 인간의 종교성의 표출로서의 문화를 통해서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종교성을 심어두셨고 인간은 이를 표출하는 한 형태로 문화를 사용한다. 특별히 여기서는 문화가 표출되는 방향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향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배척하는 방향이다. 이렇게 종교와 문화에 관한 논증을 통해서 종교와 문화는 땔 수 없는 관계이며 이는 문화를 이원론적으로 이해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2.프란시스 쉐퍼의 생애와 라브리(LAbri)
프란시스 쉐퍼는 1912년 미국 펜실베니아의 노동자 계층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쉐퍼는 청소년기에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8세 때 철학에 대한 회의와 성경을 6개월간 읽으며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 후 1931년 햄프덴-시드니 대학(Hampden-Sydney College)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위한 예비과정으로 철학 전공했다. 그 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여 메이첸(G. Machen), 반틸(C. Vantil) 밑에서 연구하였고 이의 영향은 쉐퍼가 개혁주의 장로교인으로 살도록 만들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3년을 공부한 뒤 훼이스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게 된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훼이스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이 그의 향후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폐허가 된 유럽교회를 시찰하며 ‘안정된 삶’을 향유할 것인가, 아니면 참혹한 전쟁의 상흔이 남은 유럽으로 갈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유럽행을 선택하게 되고 이러한 결심이 라브리(LAbri) 사역의 시작이 되었다.
라브리(LAbri)는 ‘피난처’, ‘은신처’를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영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피난처 역할을 한 라브리는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씨름하는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성경적인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특별히 시기적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람들이 실존에 대한 문제에 고민하였으며 20세기 반지성주의와 실존주의 철학의 대두는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영향은 ‘신앙은 단지 감정’이라는 생각과 함께 많은 청년들이 마약이나 쾌락 그리고 무기력증에 빠지는 영향 속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말하며 ‘무한하고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변증하는 역할을 하였다.
3.프란시스 쉐퍼의 문화관의 전제
프란시스 쉐퍼가 문화를 연구한 이유는 시대정신과 관련이 있다. 18세기 계몽주의와 근대과학의 출현과 더불어 사상과 문화의 영역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근대성에 기초한 서구 문화와 현대 과학은, 자율적이고 자충족적인 이성과 합리성으로 모든 세계를 전망하며 평가했기 때문에 형이상적 세계에 대한 논의를 불가능 것으로 만들어 왔고, 현대인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앙과 하나님을 거부하는 불신앙의 영역으로 던져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인간은 형이상학적이고 절대적인 삶의 토대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인해서 반지성주의와 상대주의, 피상성이 인간의 정신과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 쉐퍼는 이러한 시대정신 속에서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체계로 복음을 전달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문화관의 전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무한하시고 인격적인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말씀하신다.’라는 것이다. 현대인이 처한 딜레마는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기원을 부정했기 때문이라고 쉐퍼는 진단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실존의 문제는 오직 인간의 존재의 기원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아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둘째는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것이다. 쉐퍼는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며 따라서 성경이 주변문화에 판단 받게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가 끊임없이 성경에 의해 판단 받아야할 것을 말했다.
4.프란시스 쉐퍼의 문화관
프란시스 쉐퍼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화란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칼빈주의자들인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도예배르트, 헤르만 바빙크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쉐퍼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생활 각종 영역에 골고루 미치며, 말씀을 인생 모든 생활의 중심으로 삼음으로써 문화발전에 기여할 것을 말했다. 또한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없이는 어떤 문화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어 받았다. 일반은총을 통해 창조의 가능성과 문화활동 그리고 시민생활의 가능성을 설명하였다.
1)창세기에 나타난 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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