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의 통일천하의 정치적 주장과 천명, 인성에 대한 독창적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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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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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三 순자의 ‘통일천하’의 정치적 주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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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天命), 인성(人性)에 대한 독창적 견해
순자(기원전 313년-238년)는 이름은 황(況), 자는 경(卿)으로 ‘순경(荀卿)’ 또는 ‘손경(孫卿)’으로 불렸으며, 전국시기 조(趙)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공자의 재전제자(再傳弟子) 자궁(子弓)에게서 배웠고, 후에 제(齊)나라의 직하학궁(稷下學宮) “稷 ”은 제나라 수도 임치(臨淄)의 한 성문의 이름으로, 이 성문 부근에 제나라 군주가 일종의 아카데미(學宮)를 세워 “직하학궁”이라 부름.
에서 제주(祭酒) 제나라 직하학궁에서 지위가 높은 관직
를 세 번 맡았다. 만년에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 문하에 들어가 난릉(蘭陵, 현재 山東 縣 남쪽)에서 수령을 지냈다. 춘신군이 피살당하자 그는 면직 되었고 난릉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유가의 여러 파에 대해 ‘속유(俗儒;세속에 물든 선비)’, ‘천유(賤儒;천한 선비)’라 칭하며 맹렬히 비판하였고,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에 대해서도 많은 비평을 하였다. 그는 묵가(墨家)는 ‘실용에 가려져 문(文)을 알지 못하고’, 도가(道家)는 ‘하늘에 가려져 사람을 알지 못하며’, 법가(法家)는 ‘법에 가려져 현명한 사람을 쓰는 것을 알지 못하며’, 명가(名家)는 ‘말의 개념과 형식에 가려져 현실의 내용을 모른다’고 여겼다. 그의 임무는 곧 ‘그러한 폐단을 푸는 것(解幣)’이었으니, 그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여 백가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종합하는 것이었다. 그는 공자 이래의 유가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동시에 묵가, 도가, 명가, 법가 등의 여러 사상의 장점을 취해 자신만의 남다른 사상 체계를 구축하였다. 유가와 법가 사상의 결합이 그 주류를 이루며, 정치적으로는 예를 융성하게 일으켜 세우고 법을 중시하고, 천하를 통일하고, 정치를 평화롭게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주장하였고, 철학적으로는 천명론(天命論)을 반대하고 무신론적인 자연관을 제기하였고, 성선론을 반대하고 성악론을 주장하였으니, 그는 고대(古代) 중국의 걸출한 정치 이론가이자 유물주의 철학가라 할 수 있다.
1. 순자의 ‘천하 통일’의 정치 주장
순자 정치 주장의 핵심은 ‘천하 통일’이다. 그는 일찍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이러한 주장을 반복적으로 선전하였는데, 마땅히 ‘신하는 제후로 하여금 천하를 하나로 통일해야 하고’, ‘사해(四海)의 안은 마치 한 집안과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그는 다양한 정치 이론을 제기하였는데, ‘융례중법(隆禮重法;예를 융성하게하고 법을 중시한다)’, ‘상현사능(尙賢使能;현명한 사람을 높이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한다)’, ‘평정애민(平政愛民;정치를 평온하게 하고 백성을 사랑한다)’의 3가지로 간략하게 개괄할 수 있다.
‘융례중법(隆禮重法)’이란 유가(儒家), 법가(法家) 두 사상의 장점을 동시에 취하여 예치(禮治)와 법치(法治)를 결합하고 ‘교화(敎化)’와 ‘형벌(刑罰)’이라는 두 가지 정책을 교묘히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순자는 공자, 맹자와 분명히 구분이 된다. 공자와 맹자는 예치(禮治)와 덕정(德政)을 주장하였고 백성들에 대해서는 단지 ‘덕으로써 그들을 인도할 수 있고, 예로써 백성을 가지런히 다스릴 수 있는 것이지’, ‘정치로써 그들을 인도하고 형벌로써 그들을 다스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즉, 순자는 ‘교화하기만 하고 (형벌로써) 벌하지 않으면 간사한 백성은 징벌을 받지 않게 된다’고 여긴 것이다. 만약 예만을 융성하게 하고 법을 중시하지 않으면 예는 있으나 법이 없고, 혹은 상벌을 집행함에 타당하지 않으면 이 모두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
순자는 ‘예(禮)’는 인류 사회의 부단한 발전과 진보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사람이 태어나면 욕망이 있을 것이고, 욕망이 있으나 얻지 못하면, 구하지 않을 수 없으며, 구함에 있어 도량(度量)에 의해 나누는 한계가 없다면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싸우면 혼란해지고 혼란하면 궁해진다. 선왕(이상적인 제왕)은 그 혼란함을 싫어하여 예의를 제정하여 그것(욕구)를 나누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욕구를 실현시켜주고 요구를 충족해준다’고 지적하였다. 순자는 공동체 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인류가 자연계의 곤란을 극복할 수 있고 부단히 발전하고 진보하는 주요한 기량이라고 생각했다. 집단의 유지는 분업에 의하고, 분업의 근거는 예의이고, 이 때문에 예의는 불변의 큰 근본이다. 여기에서 순자가 말하는 것은 사실상 국가와 정치 제도의 기원 문제이다. 서로 대립적인 계급으로 하여금 쟁탈 전쟁 중에 함께 죽지 않기 위해서, 사회를 능가하는 예의 제도를 만들어내고 서로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여 사람들의 욕망을 적당히 만족시켜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순자는 ‘예’가 곧 ‘인륜의 표준’, ‘도덕의 표준’이라고 생각했다. 순자는 ‘먹줄은 곧음의 기준이고, 저울은 평평함의 기준이고, 자는 사각과 원형의 기준이고, 예는 인륜의 표준이다’라고 말했다. 자가 없으면 사각과 원형을 그릴 수 없고, 도량형이 없으면 가볍거나 무거움, 길고 짧음을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예의가 없으면 인류 사회의 안정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예란 법의 큰 갈래이자 기강(紀綱)이니 고로 학문의 극치는 예이다. 이것이 도덕의 극치다’라고 말했다. 예는 법률을 제정하는 근거와 인도하는 사상이자 사회 분업의 기강과 준칙이며, 법은 죄를 징벌하고 악을 벌하는 구체적인 조치이다. 한 명의 학습자가 예의에 통달하였다면 학문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으니, 고로 ‘도덕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다. ‘예의를 쌓으면 군자가 되니’ 사람들은 부단히 예의를 배우면 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의 작용은 ‘귀천에 등급이 있고, 자유의 순서가 있고, 빈부 경중에 각기 알맞음이 있다’는 봉건 계급 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이 때문에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천지(天地)는 생명의 근본이며, 예의는 정치의 시작이다. 군자란 예의의 시작이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있고, 나라의 운명은 예에 있다.’ ‘예를 융성하게 하고 의를 귀하게 여기면 그 나라는 질서 잡히게 하고, 예를 간단히 하고 의를 천하게 여기면 그 나라는 혼란해진다.’ ‘사람이 예가 없으면 살 수 없고, 일에 예가 없으면 이룰 수 없으며, 나라에 예가 없으면 편안하지 못하다.’ 예를 융성하게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한 개인이 소인이 되냐 군자가 되냐는 문제에 관계할 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존망과도 관계되는 것이다. ‘예를 융성하게’ 하는 동시에 순자는 또 법을 중시하는 것도 주장하였다. 순자는 두 가지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해주고 서로 이루어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예가 중시하는 것은 교화함에 있고, 법이 중시하는 것은 상벌에 있다. 국가 이익과 사회 안정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백성들에 대해 반드시 ‘예의를 분명히 밝혀 백성을 교화하고, 법을 바르게 일으켜 그들을 다스리고, 형벌을 중하게 내려 백성들이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현사능(尙賢使能)’이란 노예 사회의 세경세록제(世卿世祿制) 세경세록제(世卿世祿制) : 대대로 벼슬을 물려받음
와 왕권, 관직의 세습제를 부정하고, 출신 혈통 관계에 근거로 관리를 뽑고 사람을 쓰는 것을 반대하고, 사람들의 실제 능력과 수준에 의거하여 관리를 선발하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는 ‘덕을 잘 헤아려 자리를 정하고, 능력을 헤아려 관직을 수여해야 하며’, 덕과 능력을 용인(用人)의 주요한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기하고, ‘혈연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귀천(貴賤)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비록 왕공사대부(王公士大夫)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예의를 제대로 통달하지 못했다면 서인(庶人)에 귀속시켜야 한다. 비록 서인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문학을 배우고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여 예의에 통달할 수 있다면 경상사대부(卿相士大夫)로 귀속시켜야 한다.’ 또한 현명한 사람을 추천하는 것은 ‘밖으로는 원수라도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친한 사람에 치우치지 않아야 하며’, 오로지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쓴다는 원칙을 고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