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보고서] 흥법사 답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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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답사보고서] 흥법사 답사보고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언덕을 지나 따가운 햇볕으로 지칠 때 쯤 고개를 살며시 든 우리의 시야 앞에는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우뚝 솟은 탑이 보였다. 삼층석탑을 발견한 기쁨에 단숨에 달려간 우리는 허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흥법사 삼층석탑과 진공대사 탑비의 귀부와 이수 단 두 개 뿐. 절터만 남은 곳에 남은 유물이 몇 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광경을 본 우리는 빈약함과 초라함밖에 느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답사를 결심하고 온 곳이라 남은 유물이라도 최선을 다해 관찰해야 했기에 허탈한 마음을 추스리고 우린 문화재 앞으로 다가갔다.
먼저 다가간 곳은 진공대사 탑비의 귀부와 이수(보물 제 463호)였다.
이 탑비의 받침돌인 귀부와 머리 장식돌인 이수는 진공대사의 공로를 기려 세운 것으로 흥법사 터에 남아 있다. 몸돌인 비신은 일본인에 의해 경복궁으로 옮겨지고 현재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으며, 이 비에 따른 부도도 역시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진공대사 (855-937) 는 강원도 양양군 진전사에서 수도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신라말 고려초의 선승이다. 고려 태조가 진공대사의 설법에 감화 받아 왕사로서 머물기를 원했으나 사양하고 소백산 수도 앞으로 갔다고 한다. 대사가 세상을 떠난 뒤 태조 23년 (940년) 에 태조가 손 수 글을 짓고 당 태종의 글씨를 모아서 비를 세웠다.
귀부는 용머리를 한 거북이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인데 네 발로 대석을 힘있게 딛고 있다. 진공대사란 전자 글씨가 새겨 있는 이수에는 구름 속에 생동하는 용이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각되어 당대 예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귀부와 이수 앞에 있는 팻말의 위 내용을 읽은 후 우린 되씹으며 자세히 관찰해가기 시작했다. 이 탑비는 신라말 고려초에 활발히 활동한 고승 진공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현재는 빗돌이 없어지고 거북 돌과 머릿돌만이 절터에 남아 있었지만 우린 머리 속으로 그 온전한 형상을 그려가며 옛 모습을 회상해보았다. 비록 온전하게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우린 진공대사의 업적과 영향을 기린 조상들의 마음과 숨결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
흥법사를 답사한 후에 작성한 답사보고서입니다. 참고하셔서 좋은 성적 받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