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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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근현대사]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와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하기 까지

2.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보며
⑴ 서대문 형무소 역사박물관 입구에서
⑵ 옥사
⑶ 체험실
⑷ 사형장, 통곡의 미루나무, 시구문
⑸ 옥사 빈 터와 붉은 벽돌 영구 보존
⑹ 지하 감옥과 유관순 열사
⑺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⑻ 담장과 망루

3. 서대문 형무소를 뒤로 하고


▣ Reference















본문내용
아버지의 고향이 공주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 자주 가보았다. 또, 장손인 내가 우리집안의 족보를 보았을 나와 같은 돌림자를 사용하셨던 오세창이라는 분을 볼 수 있었는데 그분은 3.1운동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신 33인중 한분이셨다. 그때부터인지 나는 유난히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한국 근현대사라는 과목을 배우면서 다시 한번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고 이번에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서대문 형무소의 역사박물관을 가기로 결심했다.
처음, 서대문 형무소의 역사박물관이라 해서 형무소의 역사박물관은 좀 어딘가 부족한 면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앙 박물관이나 독립기념관 같이 충분한 유물이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일단 서대문 형무소에 대한 인식이 대부분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서대문 형무소 역사박물관을 가기 전에 서적이나 인터넷을 통해 사전조사를 해보았다. 서대문 형무소는 대한 제국 말에 일제의 강압으로 감옥이 지어져 80여년동안 우리 근 ․ 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우리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기관이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하고, 이 땅을 발판 삼아 대륙으로 침략하려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그들의 침략에 항거하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투옥시키기 위한 감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리하여 대한제국시대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건립한 독립문 근처에 1907년부터 대규모로 감옥을 짓게 된 것이다.
이 감옥은 일본인의 설계로 그때 화폐 약 5만원을 들여 지었고, 480평 규모의 감방과 80평 정도의 부속시설로 수용인원은 500여명 정도였다. 그때 전국 8개 감옥 총 수용인원이 300여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규모의 감옥이었다. 1908년 10월 21일에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뒤 일제에게 우리의 국권이 빼앗기자 이에 항거하는 민족독립운동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일제는 수많은 우리의 애국지사들을 체포 투옥시켰다. 수용인원이 증가하자 그들은 마포 공덕동에 또 다른 감옥을 지었고, 이 때문에 1912년9월 3일에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23년 5월 5일에 서대문형무소로 그 이름이 다시 바뀌어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기까지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어 고문을 받으며 처형되거나 옥사 당했던 악명 높은 곳이다. 1945년 11월 21일에 서울형무소로 그 이름이 바뀌고, 1961년 12월 23일에 서울교도소로, 1967년 7월 7일에 서울구치소로 바뀐 뒤 1987년 11월 15일에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가기까지 이름의 변화만큼이나 많은 민족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채 1992년 8월 15일에「서대문 독립공원」으로 개원하였다.
1987년에 경기도 의왕시로 옮길 때 옥사는 모두 15개동이었으나, 현재는 역사성과 보존 가치를 생각해 7개 동만을 원형대로 보존하였다. 그 중에서 옥사 3개동(제 10·11·12옥사)과 사형장은 1988년 2월 20일에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서대문구에서는 1995년부터 서대문 독립공원 사적지에 대한 성역화사업을 시작하였다. 조국독립을 위해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투옥되어 모진 고문과 탄압을 받고 순국하신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우리 선열들의 자주독립정신을 일깨워 주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기 위해 새롭게 단장하여 「서대문 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한국 근 ․ 현대사 과목을 같이 듣는 동아리 선배와 같이 형무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나는 독립 운동가이셨던 조상인 오세창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독립 운동가들이 이러한 감옥에 투옥되기부터 투옥의 생활이나 일제의 강압에 의해 사형당하시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주제를 가지고 형무소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2. 서대문 형무소를 둘러보며
⑴ 서대문 형무소 역사박물관 입구에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정문 처음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려서 독립공원 방향으로 나가면 지하철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서대문 형무소의 첫 인상은 다소 으산한 느낌이었는데 대문은 옅은 청록색이어서 색감이 없었고 벽은 대부분이 회색인데다가 살짝 벗겨진 부분은 붉은 벽돌이 드러나 있어서 으스스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역사관의 관람료는 1500원이었다.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부지에 낮은 건물이 몇 개 들어서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지 몇 개의 옛 건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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