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백범일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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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범일지] 백범일지 서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김구는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애초에 임시정부의 문파수를 지원하였던 것이 경무국장으로, 노동국 총판으로, 내무총장으로 ,국무령으로 , 오를대로 다 올라가 다시 국무위원이 되고 주석이 되었다. 이것은 문파수의 자격이던 내가 진보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없어진 때문이었다. 비기건대 이름났던 대가가 몰락하여 거지의 소굴이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 때는 중국인은 물론이오 눈 푸르고 코 높은 영.미. 법 등 외국인도 정청에 찾아오는 일이 있었으나 지금은 서양 사람이라고는 불란서 순포가 경관을 대동하고 사람을 잡으러 오거나 밀린 집세 채근을 오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한창 적에는 천여 명이나 되던 독립운동자가 인제는 수십 명도 못되는 형편이었다.

머지 않아 독립의 서광이 비치리라던 조선의 운명은, 나날이 강해지는 듯이 세력을 뻗쳐 가는 일제의 욱일승천(旭日昇天)과 같은 '발전'에 독립투사들은 모두 기가 죽고 절망해 김구가 개탄한 바와 같이 이광수,정인과 같은 임정간부들이 일제에 투항, 귀국해 버렸다. 또한 그간 국내 각도 각군에 조직되어 있던 연통제도 발각되어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고 게다가 생활난까지 겹쳐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임정에는 돈도 사람도 모이지 않아 이승만도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박은식이 대통령이 되었고 이상룡이 국무령이 되어 서간도부터 상해로 취임하러 왔으나 각원을 고르다가 지원자가 없어서 다시 서간도로 돌아갔다. 다음 홍진이 선임되어 진강으로부터 왔으나 역시 내각조직에 실패하고 되돌아갔다. 이리하여 임정은 한때 정부 없는 상태가 되고 결국 김구가 국무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의 자신의 생활에 관해 김구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나는 임시 정부 청사에서 자고 , 밥은 돈벌이 직업을 가진 동포의 집으로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얻어먹었다.

동포의 직업이라야 전차회사의 차표 검사원이 대부분이어서 70명 가량 되었다. 나는 이들의 집으로 다니며 아침 저녁을 빌어 먹는 것이니 거지중에도 상거지였다......

이것이 1920년대 후반기에서 30년대에 걸친 김구의 숨김없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불운에 좌절할 김구는 아니었다. 바로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한 것이 이봉창촵윤봉길 의사의 거사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임정을 떠나도 김구는 변함없이 임정을 고수했다. 그의 평생은 임정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었고 그가 귀국 후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을 앞장서 그토록 반대한 것도 30년 지켜온 3촵1운동의 민족염원을 연합국이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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