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학] 한국사회의유교적변환을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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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 사회의 유교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특징을 부계종족 체계의 발전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의 종족은 중국보다도 더 엄격하게 구조화 되었고, 이는 ‘한국의 장자상속이 중국의 장자상속 보다 조선시기에 들어와 확고히 확립된 것을 통해 보여준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장자상속이 명목상이었던 것과 비교해 한국에서는 지가를 희생하더라도 본가를 지속 시키려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출계범위의 변동을 가져오게 한 것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은 조상숭배에 있다고 하였고 그것의 기본이 된 것이 제사이다. 제사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신의 출계 집단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사회적 의례적 기준을 규정하였는데 의례상의 지위 및 역할과 상관관계에 있는 것은 상속권과 상복의 의무였다. 출계집단에서 구성원으로의 자격을 완전히 인정받는 것만이 정치영역에서의 진출로 이어졌으므로 서자와 여자들이 차별을 받게 되었다. 서자에 대한 차별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제사에 사용되는 규제의 결과로서 중국에는 서자의 차별이 없었다. 서자는 조상을 제사 지내지 못하게 됨으로써 공적 영역에서도 제약을 받았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여성들이 자신의 남편의 출계집단에 차츰 속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처가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고 여자가 조상에 대한 의무를 할 수 없게 되자 조상들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이는 여성들의 상속권 약화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조상의례의 구조는 고려시대의 출계집단을 조선시대에 들어와 부계계통으로 한정하게 만드는 의례였다. 이렇듯 고려사회가 유교로 변환되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조선왕조 건국 이후 250여년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유교사회의 이념화는 사회의 상층부에서 주도하였으므로 상층부에서 빨리 흡수하였다. 처음 15세기에는 여전히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남아있었으므로 가끔의 저항도 있었다. 그러나 사상의 전환이 완벽하게 이루어 졌으므로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었다. 16세기가 되면서 종족사상이 내면화되고 관성이 붙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사회활동을 구속하는 정치영역에까지 자리 잡았다. 이때에 와서 한국에서 귀족의 출계집단이 자신들의 부계 구조를 획득하고 유교를 기초로 한 사회 정치적 질서도 원숙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와 17세기의 신유학자들은 그들의 사회가 고대제도를 완벽하게 이행하지 못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제도를 수정하였는데 국속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중국의 고전에 대한 한국적 특징을 강조하였다. 이는 한국 사회의 전통 요소가 있었음에 기인하는데 이와 같은 사회 전통은 국가의 유교화 이후에도 존속하였고 국속이라 불리는 것에도 남아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모계가 지속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출계집단의 구조가 엄격하여 남자는 부계와 모계를 날카롭게 구분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으로써 여자는 단지 부계와 모계를 이어주는 고리가 되었다. 이는 중국의 경우와 고려의 경우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조선전기의 신유학자들이 정립하려 했던 사회는 한국의 사회 환경을 반영하면서 유교의 모델을 한국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해석은 중국의 종족제도와는 다른 가치를 포함하는데 그 결과 중국의 사회분위기와는 다른 분위기를 창출해 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이 우리가 우리의 유구한 전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장자 상속제, 부계중심, 제사 및 의례가 그렇게 먼 옛날일이 아닌 400~500년 전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조선을 개창한 신흥 사대부들은 이전의 고려왕조가 불교로 인해 사회정의가 바로 서지 못함을 인식하고 이를 타개할 방법으로 송의 신유학을 가지고 중국 고대의 하 ․ 은 ․ 주시대의 삼대의 시절을 다시 한국사회에 이식할 목적으로 예전의 고대 경전을 해석하고 이를 사회 현실에 구현하려고자 조선을 개국하였다. 특히 고려시대의 사회제도들과 풍속을 좋지 않게 여겨서 이를 유교적으로 변환하려는 움직임을 많이 시도하는데 조선왕조 초기에는 고려완조의 전통들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그러한 시도에 사회 전체가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사회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던 이들의 지속적인 사회에 대한 교화 정책은 가족제도, 의복제도, 제사제도, 각종 의례제도의 유교적 변환을 이끌어 내었다. 그 결과 조선은 중국의 고대의 예절을 숭배하고 추구하는 본토의 중국인들 보다 더 할 정도로 유교 이념에 충실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회적 변화는 현 시대의 우리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변혁이었다고 생각된다. 마치 비유를 하자면 조선시대의 사람이 오늘날의 정보화 혁명을 이해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인즉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런 변화들이 조선시대에 어떠한 변혁을 가져왔고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제도하나 제사의식이 바뀐다고 해서 그 이전의 사회랑 무슨 의식의 변화가 생기고 무슨 생활상의 변화가 있었을까 라고 생각을 했다. 이런 어려운 주제의 문제를 필자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지는 사회학적 의미와 그 현상들을 하나씩 설명해나가고 있다. 물론 그 설명이 어려워 나의 경우에는 책을 끝까지 읽고도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 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그 변혁들을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