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정지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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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시] 정지용 연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정지용의 생애

1. 정지용의 출생과 어린 시절
2. 휘문고보 입학과 문학적 체험
3. 교토 유학과 시인으로의 성장
4. 다양한 문학 활동, 시정신의 화려한 개화
5. 해방의 기쁨과 시련, 그 곡예와 같은 삶

Ⅲ. 정지용의 작품경향과 시론

1. 정지용 시세계의 단계
1.1. 지용 時의 출발과 흐름 -『정지용시집』시기
1.2. 제 2국면의 지용 시 - 가톨릭시즘
1.3. 명증한 말씨와 동양적 절제 - 『백록담』시기
2. 정지용의 시론
2.1.「시와 언어」
2.2.「시의 옹호」
2.3.「시의 위의」
2.4.「시와 발표」

Ⅳ. 정지용의 시세계

1. 『정지용시집』의 시기
1.1. 동요ㆍ민요풍 시
1.2. 외로움과 인식의 표현
1.3. 감각적 인식과 창조적 표현의 확대
2. 가톨릭시즘의 시
2.1 또 하나 다른 태양(太陽)
2.2 임종(臨終)
3. 은일의 산수시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1988년 1월 납ㆍ월북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정지용의 시는 우리 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졌을 뿐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해방 후 교육받은 세대의 경우 김영랑, 박목월은 알아도 정지용을 모르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정지용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고 일반 시집으로도 공개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물론 그의 이름조차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지용의 시 「향수」가 노래로 불리자 마치 정지용이라는 작사가가 작곡가 김희갑의 곡에 가사를 써준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숭원,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태학사, 1999, 13쪽.

해금 이후 정지용을 기리기 위한 움직임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정지용전집』이 간행되고 ‘지용회’라는 단체가 결성되었으며, ‘지용문학상’도 제정되었다. 정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과 그가 다녔던 대학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고, 정지용에 대한 기념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중ㆍ고등학교의 교과서에 정지용의 시가 실려서 일반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서게 된 점이다. ‘향수’의 가사가 정지용의 시라는 것도, 이제는 거의 모두가 알고 있다.
오늘날 정지용이라는 이름과 그의 문학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정지용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혼란한 시대를 살아왔다. 그러한 격동기 속에서, 과연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떤 문학세계를 가지고 시를 꽃피웠는지, 그의 시를 읽는 모든 사람들은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참고문헌
납북/월북 예술인 [월간중앙] 2005. 2. 1.

[발굴특종] 정지용의 ‘북행/죽음’에 대하여
자료 발굴ㆍ글 김종욱


▷ ‘지용은 전향하여 보도연맹에 가입, 한려수도를 여행하던 중 남침한 인민군의 강요로 문 화선무대 끌려갔다 포로가 됐다.’
- 문덕수편, (성문각, 1975)

▷ ‘정지용은 이십명 가까운 동료들과 함께 자수를 하러 나서면서도 날더러는 그냥 있으라 고 당부했다. 정지용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자수하러 가면 못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최정희 (문학과지성사, 1976)

▷ ‘6ㆍ25 때 정지용은 박영희ㆍ김기림ㆍ정인택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다. 이후 나는 그들의 종적을 모르고 있다.’
- 김팔봉 ( 1963년 9월호)

▷ ‘보련(보도연맹)에 들었다는 이유로 정지용은 완전히 푸대접이었다. 나어린 시인 이용악 ㆍ이병철 앞에서 눈치만 살피었고 옛 친구였던 조운ㆍ이원조ㆍ김남천ㆍ안회남한테 완전히 버림을 받고 처분만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 정지용ㆍ채정근 등 몇 사람은 자수를 하러 보위부에 간 후 그대로 철창에서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갔다.’
- 195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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