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생애 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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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루소의 생애 와 사상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루소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김정섭)
1. 루소의 사상이 등장할 수 있었던 사회 상황
2. 루소의 탄생과 성장과정
3. 세상에 나가기 전의 준비
4. 문학가로서 첫 발걸음을 떼다
5. 정치에 눈을 뜨기 시작한 루소
6. 다섯 아이를 고아원에 버린 아버지
7. 학문과 예술의 해악
8. 불평등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9. 자연으로 돌아가라!
10. 화형에 처해진 『사회계약론』과 『에밀』
11. 고백록 - 인간 루소는 누구인가?
12. 루소의 마지막
13. 정섭이의 기억에 남는 루소의 모습

Ⅱ. 루소의 자연관(노정호)
1. 사회상태
1) 로마 공화정; 시민
2) 루소가 살던 사회; 부르주아
3) 현대 사회; 만족할 줄 모르는 배부른 돼지
2. 자연 상태
1) 자연 상태의 인간; 자연인
2) 자연으로 돌아가라

Ⅲ. 루소의 문화 및 종교관(임정은)
1. ‘방랑시대’, 첫 번째 개종
2. 예술을 추구하던 루소
3. 예술에서의 실패
4. 예술에 대한 부정
1)
2)
5. 두 번째 개종 - 칼뱅주의로의 귀환
1)
2)
6. “자연으로 돌아가라!”

Ⅳ. 인간을 형성하는 예술 : 루소의 교육사상(윤지원)
1. 들어가기
2. 교육의 목적으로서의 자연인
3. 자연주의 교육의 의미
1) 자연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본성
2) 자연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발달단계
4. 이상적인 인간상
1) '인간다운 인간'의 개인적 특성
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 양심을 지닌 인간
2) '인간다운 인간'의 사회적 특성
 이상적 시민
 이상적 여성
5. 마무리

Ⅴ. 루소의 사회계약론(김성준)
1. 루소의 사회계약론의 의의
2. 루소의 사회계약론
3. 근대이전의 사회계약
4. 근대의 사회계약론 - 홉스, 로크를 중심으로

Ⅵ. 루소의 일반의지(김지은)
1. 일반의지가 가지는 의미
1) 일반의지의 출발점
2) 법 속의 일반의지
2. 일반의지의 속성
1) 일반의지와 전체의지의 차이
2) 민주주의
3. 루소의 정치철학의 한계점

Ⅶ. 루소와 현대 민주주의(천선필)
본문내용
Ⅰ. 루소의 생애 와 사상적 배경

1. 루소의 사상이 등장할 수 있었던 사회 상황
루소가 살았던 18세기는 유럽에 잠시 평화가 찾아온 시기였다. 유럽은 17세기 내내 전쟁에 신음했다. 30년 전쟁 1618년 유럽 전역에서 유럽 여러 나라들이 종교와 왕조, 영토 및 통상에서의 적대관계 등 다양한 이유로 벌인 전쟁이다. 발발하고 나서 30년 후인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전쟁이 끝났다.
과 루이 14세의 전쟁 프랑스의 최전성기 중 한 시기에 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나라를 다스렸으며 고전시대의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존재인 루이 14세가 국제적으로 1667~97년에 벌어진 일련의 전쟁에서 합스부르크를 희생시켜 프랑스의 동쪽 경계를 늘렸고 그런 다음 자신의 손자를 스페인 왕위에 앉히기 위해 프랑스에 적대적인 유럽 동맹과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을 벌였다.
으로 파괴된 것들을 복구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1713년 에스파냐 계승 전쟁이 끝나자 마침내 유럽에 평화가 깃들기 시작했다. 군주와 귀족들은 여전히 별것 아닌 이유로 전투를 벌였지만 용병을 동원하여 자기들끼리 투덕거리는 싸움이 대부분이었다. 나라를 걸고 국민 전체를 동원하는 전쟁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지속되지 못할 평화였지만 어쨌든 18세기 초 유럽 대륙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었다. 유럽 전역이 평화로워지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유럽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고 있었기에 소년이었던 루소가 방랑을 시작하게 된 것도 엉뚱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도 싸움질 후에 외국으로 도망가기는 했지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아들을 보러 올 수 있었다. 루소는 늘 ‘제네바 공화국의 시민’으로 기억되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그는 ‘유럽인’이었고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유럽에는 오직 유럽인만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취향, 같은 열정, 같은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다.
1689년 영국 의회는 법의 권력이 왕권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을 왕에게 요구했고, 그것이 승인되어 ‘권리장전’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다. 아무도 피 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이루어졌기에 ‘명예혁명’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영국과 몇몇 작은 공화국을 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왕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 세상이 뒤집어질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왕을 신처럼 떠받들며 살았다. 왕과 귀족들의 생활은 우아하고 멋들어졌던 반면, 일반인들의 생활 조건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 도시는 지저분했고, 컴컴한 밤거리에는 강도들이 활개를 쳤다. 농촌 또한 대부분 가난했고 흉작이 들면 전쟁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참고문헌
루소, 2002, ‘사회계약론’ 홍신문화사.
고봉만, 2004, ‘시원의 신화와 루소의 사상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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