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천황에 대한 감상문] 일본인과 천황에 대한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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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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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서론
북리뷰 목록을 살펴보던 중, ‘일본인과 천황’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에서의 천황이라는 상징을 사회․문화와 맞물려서 재조명하면서 천황이 지니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천황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경배하고 숭상하며 천황을 위해 자살까지 하는 일본 사람들을 보며, 천황이라는 대상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지라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이 미국하면 ‘자유의 여신상’을 떠올리듯, 일본하면 ‘사무라이’와 함께 ‘천황’이 떠올리게 된다. 즉, 천황은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천황을 보려고 울며 호소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실제로 천황을 만나 너무 감격한 나머지 할복자살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있다. 천황은 영국의 왕처럼 왕족이라는 존귀함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로서, 마치 인간과는 달리 무언가 오묘한 힘을 가진 신비한 존재로 각인되어, 신과 인간이라는 묘한 경계선 사이에서 존재하고 있다. 반면에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한국과 기타 점령지였던 국가에서는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국가를 강제적으로 합병․점령한 장본인’으로 보고 적대시하고, 상당히 꺼리는 존재로 상징되어 진다. 한국에서 천황에 대해 뉴스가 보도될 때는 천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일왕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밖에서 뭐라고 하든지, 천황은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 오묘한 빛을 비추며 영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비추어 지며, 천황궁의 모든 일과 천황가의 모든 일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집중되어 진다. ‘나루히토’ 황세자와 ‘오와다 마사코’ 황세자비의 결혼식 때는 전 매스컴이 총 출동 될 정도로 그 관심이 지대했으며, 그 둘의 외동 딸‘아이코’가 태어났을 때 이러한 신문기사가 1면을 장식했다. “응애 하며 첫 말씀을 하셨다.” 태어나면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태어난 공주는 모든 것이 뉴스 감이었다. 더구나 장차 황실을 이어나갈 ‘나루히토’ 황세자의 딸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뉴스감이 된다. 그만큼 일본에서 천황이 갖는 이미지는 일본전체를 흔들 정도로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현 125대 ‘아키히토’천황까지 이어져 온, 천황이 지니는 의미와 그 존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2.본론
신년이 되면 천황교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황거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 매년 정초가 되면 황거에 들어가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줄지어 서 있는 시민들과 천황을 위한 군대인 자위대의 충성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황궁에 입장하기 위해 다툼이 일어나고, 입장이 시작되면 시작과 동시에 밟히거나 밀려서 다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를 따라서 무엇을 향해 환호하는지도 모르면서 일장기를 흔들며 함성을 지른다. “천황폐하 만세”라는 함성 속에서 천황을 필두로 한 가족들이 모습을 나타내고 이때는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한다. 인사를 한 후 퇴장하는 천황의 모습을 보면서 아쉬워하고 진심으로 서글퍼하는 사람들과 건강한 모습을 봤다며 즐겁게 소리치고 기뻐하는 무리도 있다. 이처럼 천황의 등장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열광토록 만든다. 그렇다면 천황은 탄생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전부터(고대부터) 이토록 모든 이들에게 환호와 존경을 받는 존재 였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일본인이 생각하는 천황의 이미지가 아니었다면?
일본과 관련된 역사서인 중국의「위지왜인전」을 보면 야마타이국의‘히미코’여왕이 239년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왜왕’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7세기경‘야마토’정권이 통일국가를 이룩하고‘천황’이라는 호칭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중국의 천자와 조선에서 왕 칭호를 사용한 관례를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천황이라는 명칭에 대해서 607년 수의‘양제’가 동쪽 오랑캐인 주제에 감히 천황을 운운한다고 면박을 준 일화도 있다. 그러나 일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과 조선에 천황이라는 말을 들이밀면서 공인을 얻어내려고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그 후 천황의 시대는 지고 쇼군의 시대가 열리면서, 15세기 ‘무로마치’바쿠후 시대에 일본을 방문한 조선 사절단은 쇼군을 주권자로 여겨 왕 또는 국왕으로 호칭했으며, 천황은 군주로서 존경을 누리나 ‘헛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천황은 항상 막강한 존재가 아니며, 천황이라는 이름만 지닌 정도로 취급당할 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6세기 중반 세력을 떨치던‘소가’일족에 의해 황위에 옹립된 제32대‘스슌’천황이 592년, 헌사 받은 멧돼지를 가리키며 ‘싫어하는 자(소가 일족)’를 배고 싶다고 했고, 이를 들은‘소가노 우마코’는 천황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이를 괘씸이 여겨 도당을 모아 천황을 암살해 버린 일이 있었다. 쇼군의 시대에는 천황은 정치가로서의 힘을 잃고, 학자로서의 연구하는 모습만을 가진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이처럼 천황은 시대에 따라서 이름만 천황으로 불릴 뿐 천황의 권위는 갖지 못하는 존재가 되기도 했기에 항상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는 아니었다.
또 경제적인 받침이 없었기에 힘든 적도 많았다. 근대국가 확립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메이지’천황의 부친인‘고메이’천황의 경우, 당시 황실 재정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술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정도로 궁핍했다. 하지만 그랬던 황가가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을 떠받드는 무리에 의해서 천황을 신격화 하면서 천황에 대한 관심과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신격화에 알맞은 권위와 권력 그리고 부를 갖춘 가부장적 천황을 창출하려고 했다. 장군 및 다이묘들의 토지와 관유지를 황실명의로 변경하고 정부 소유의 일본 은행주를 황실 재산으로 돌리면서 천황가가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되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나타내었다. 천황은 또한 근대화의 선봉장으로서 앞장서서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다. 천황가의 근대화는 군국주의와 관련하여 추진되었다. 메이지 천황이 군복에다 백마를 타고 열병식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천황은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재벌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메이지유신의 지도자들은 천황을 동경으로 끌어올려 백성들에게 천황의 존재를 드러내어, 천황의 시각화 및 권력의 시각화의 종이 울렸다. 천황의 존재를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1876년부터 5년간에 걸쳐 전국의 주요 지방을 순회했다. 방문하는 곳곳마다 성대한 환영행사가 벌어졌으며 ‘일본은 천황의 나라이고 일본인은 천황의 신민’이라는 천황교가 널리 퍼졌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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