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북학파(北學派)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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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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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실학의 분류와 계보
1.1. 역사학자들의 실학자 분류
1.2. 남인과 서인 실학자
1.3. 남인과 서인 실학자(북학파)들의 차이점과 교류
2. 북학파의 성격
2.1. 북학파 형성의 효시,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2.2. 북학사상의 형성과 성격
3. 북학파의 정책론 1 : 기술, 과학, 학문론
3.1. 북학파 학자들의 기술론
3.2. 북학파 학자들의 과학론
3.3. 북학파 학자들의 문화, 학문론
4. 북학파의 정책론 2 : 신분 정책론
4.1. 신분인식 빛 정책의 변화
4.2. 중농학파와의 비교
4.3. 신분 정책에 대한 요약과 평가
5. 열하일기 : 북학파와 중국 문화의 관련성
5.1. 박지원의 저서 『열하일기』
5.2. 독특한 민족문화
5.3. 은유, 상징적인 건축문화
5.4. 발전해가고 있는 상업문화
5.5. 다채로운 문학예술
6. 북학파의 위축과 그 후 실학의 행적
6.1. 북학파의 위축
6.2. 북학파 이후 실학의 행적
7. 결론 : 북학파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1. 실학의 분류와 계보


1.1. 역사학자들의 실학자 분류

1.1.1. 시기별 분류
천관우는 『반계유형원연구』에서 실학을 '실정, 실증, 실용을 특징으로 하는 조선후기 신학'으로 정의하고 아래와 같이 3단계로 나눈다.

① 준비기(16세기 중엽~17세기 중엽)
한백겸, 이수광, 김육, 권문해
② 맹아기(17세기 중엽~18세기 중엽)
유형원, 이익, 안정복, 박세당, 이중환, 신경준, 서명응
③ 전성기(18세기 중엽~19세기 중엽)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성해응, 정약용, 김정희, 이규경, 최한기

천관우의 실학연구는 실학의 시기를 조선후기 300년으로 확장시키고, 당파상으로 남인, 소론, 일부 노론(북학파)를 망라하고 있으며, 1세기의 준비, 1세기의 맹아, 1세기의 전성을 갈라놓아 실학의 흥망성쇠를 시간계열 속에 정립시켰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조선실학의 개척자 10인』에서는 유형원이 한 번 나옴으로써 실학은 '학'으로서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이익이 한 번 나옴으로써 실학은 '학파'로서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정약용이 나옴으로써 실학은 '시대사조'로서 대표적인 하나의 경향으로 존재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1.1.2. 학파별 분류
이우성은 『실학연구서설』에서 아래와 같이 실학파를 3개의 유파로 나눈다.

① 제1기 경세치용파(18세기 전반)
성호 이익을 대종으로 하며, 토지제도 및 행정기구 기타 제도상의 개혁에 치중하는 유파
② 제2기 이용후생파(18세기 후반)
연암 박지원을 중심으로 하며, 상공업의 유통 및 생산기구 일반 기술면의 혁신을 지표로 하는 유파
③ 제3기 실사구시파(19세기 전반)
완당 김정희에 이르러 일가를 이룩했으며, 경서 및 금석․전고의 고증을 위주로 하는 유파

이우성은 실학사상이 시대조류를 이루게 된 18세기 이후의 서울 및 근기 지방 출신의 실학파 학자들을 연구대상으로 한정한다. 실학파의 학자들은 대체로 양반 신분의 소유자이면서 이조 관료국가의 권력체계에서 이탈 또는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며, 서울 및 근기 지방 출신의 학자들로 주축을 삼고 있다. 이들은 위로는 벌열층에 결탁해서 출세를 꾀할 수도 있었고, 아래로는 농․공․상의 서민층에 가까이 해서 민중의 이익을 옹호할 수도 있었으나 모두 후자를 택하였다.




1.2. 남인과 서인 실학자

1.2.1. 남인 실학자
① 성호 이익(1681~1763)
몰락한 남인계열이다. 성호사설을 편찬했으며, 순암 안정복의 스승으로 훈고를 중시했다.(정약용도 마찬가지) 양반 소외계층인 남인에 속한 이익(李瀷)은 안산 첨성리에 거주하면서, 어민․농민들과 함께 벌도 치고 닭도 기르며 채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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