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사] 실학파의 세계관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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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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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실학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
1) 실학의 배경
2) 실학의 전개
2. 실학파의 문학
1) 성호 이익의 시
2) 연암 박지원의 산문문학
3) 다산 정약용의 시
4) 이옥의 전과 시
3. 실학의 문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1. 실학(實學)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

1) 실학 실학이라는 말은 어떤 특정한 사상이나 학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시대에 있어서 현실성 또는 현실적 의의가 있는 학문을 가리켜서 ‘실학’이라고 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말 타락한 불교에 대하여 예학을, 조선 초기 부허무실한 사장학에 대하여 성리학을 실학이라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다루는 실학은 역사상 어느 시기에나 존재할 수 있는 보편적 개념으로서의 실학이 아닌 18세기 영ㆍ정조 시기에 나타난 실용과 실증을 지향한 학문적 경향을 의미한다.
의 배경

18세기 조선 사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커다란 국가적 위기를 거치면서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급격한 변동을 마주하게 된다. 전쟁으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와 인구의 감소로 인해 대다수 농민들의 삶은 피폐한 환경에 놓이게 되어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었다. 하지만 지배층은 이러한 민중들의 삶과 국가의 현실적인 문제들은 외면한 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쓰기는커녕 오히려 민중에 대한 수탈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또 당시의 지배이념이었던 성리학(性理學) 역시 국가와 백성을 위한 현실적 의의는 희박해진 채 관념론적인 논쟁의 대상에만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현실성을 상실한 학문을 바로잡고, 우리나라의 실지 실정에 입각한 실제적인 사고를 세우기 위해 당시의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서 일어난, 실용(實用)과 실증(實證)의 학풍이 바로 실학(實學)이다. 이우성, 「실학연구서설」, 『한국의 역사상』, 창작과 비평사, 1982, p11

실학의 등장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계층이 있는데 바로 ‘사(士)’이다. 사대부의 수가 계속 증가되고 있던 조선 후기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한정된 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사대부들 간의 자리다툼은 여러 차례의 사화(士禍)와 정변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사대부는 세습적, 독점적 집권층인 ‘벌열(閥閱)’과 본래의 사대부로서의 정치적 기능을 거세당한, 몰락한 실권층인 ‘사(士)’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들 사(士)는 농민이나 수공업자, 상인과는 달리 벼슬 이외의 다른 생계수단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관직에 오르지 못할 경우 신분은 사대부이었지만 현실적 처지는 농, 공, 상의 서민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우성, 앞의 책, p18
이들 중 일부 양심적 지식인들은 벌열층에 대한 곡학아세로 출세의 길을 도모하는 대신 피지배 대중인 농, 공, 상의 이익을 옹호 또는 대변하면서, 한편으로는 집권자인 벌열층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사양치 않았는데 바로 이들에 의해서 실학이라는 학풍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2) 실학의 전개

위에서 언급했듯이 18세기 조선의 실학(實學)은 실용(實用)과 실증(實證)을 그 공통의 특징으로 가지면서 실학 각파의 기본 입장의 차이에 따라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바로 성호(星湖) 이익(李瀷)을 중심으로 하는 경세치용파(經世致用派)이다. 17세기 이후, 온갖 국가적 수탈 속에 화폐의 유통과 더불어 서울의 상업, 고리대 자본이 농촌에 침입해서 농민을 토지로부터 이탈시키고 농촌사회를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당시의 광경을 농촌에서 일생동안 농민들과 더불어 몸소 체험하고 있던 성호 이익은 무엇보다 토지제도의 개혁을 통해 소농민에게 균등한 토지 소유를 보장해 줄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두 번째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을 중심으로 한 이용후생파(利用厚生派)이다. 그들은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 속에서 상인과 수공업자와의 접촉을 통해 상공업 발전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유통의 확대 내지 생산 자체의 기술적 혁신으로 생산력의 발전을 촉진시켜 줄 것을 주장한다. 이우성, 앞의 책, p23
또 당시의 특권층과 결탁된 대상인들의 독점적 이익에는 반대하는 대신 소영업, 소생산자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성장을 옹호하였는데 이러한 점은 대토지를 소유한 부농보다 대다수 소농민의 이익을 더 중요시했던 성호 이익의 주장과 같은 맥락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한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성호학파에 기본 입장을 두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연암학파의 이용후생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중상적 이론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생산 기술 혁신론은 전적으로 도입해서 농구(農具), 직기(織機), 병기(兵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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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택, 「실학파 문학과 한문단편」, 『한국문학사의 시각』, 창작과 비평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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