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소설] 위진남북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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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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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위진남북조 시대적 특징과 문학 사조
2. 위진남북조 소설의 특징
3.대표작
본문내용
1. 위진남북조 시대적 특징과 문학 사조
이 시대는 실제로 위(魏)나라 조조(曹操)가 천하의 권세를 잡았던 동한 헌제(獻帝) 때부터 시작된다. 동한(東漢)은 말년으로 올수록 황족들의 생활이 부패하고 외척(外戚)•환관(宦官)과 관료들 사이의 심한 세력 다툼으로 정치가 극도로 혼란하여 백성들의 삶은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 빠져 있었다. 영제(靈帝)의 중평(中平) 원년(184)에 일어난 「황건적의 난」은 백성들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터진 것이고, 또 이것은 한나라의 명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헌제의 초평(初平) 원년(190)부터 건안(建安)13년(208)에 이르는 19년 동안에는 하루도 전쟁이 멎을 날이 없어 황하 유역 일대는 크게 파괴되어 수많은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였다. 그리고 건안 13년 「적벽의 싸움」이후 나라가 조조의 위(魏), 유비(劉備)의 촉(蜀), 손권(孫權)의 오(吳)나라로 갈라졌다. 이들은 서로 싸우면서도 서로 국력을 길러 위 나라는 황하 유역의 농업 생산을 상당히 회복시켰고, 촉 나라와 오 나라는 각기 중국의 서남(西南)과 동남(東南) 지역을 개발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위 나라를 찬탈한 서진(西晉)이 서기 280년에 전국을 통일한다. 위 시기의 문학은 예부터 연호를 붙여 「건안 문학(建安文學)」 이라 부른다. 동한 중엽 사회적인 책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던 지식인들, 또는 문학에 있어서의 개성(個性)을 발견했던 문인들의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한대 민가(民歌)의 내용과 오언(五言)의 형식을 발전시켜 문인들이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전개한 시기이다. 이 건안 문학은 조조 삼부자와 이른바 「건안 칠자(建安七子)」 가 주도하였고, 서정시가 그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위 나라에서 문인들이 왕후를 중심으로 모여 문학 활동을 했던 일에 주목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시대적인 의의가 뚜렷한 왕찬(王粲)의 「칠애시(七哀詩)」와 완적(阮籍) 의 「영회시(詠懷詩)」같은 작품도 나왔다. 서진(西晉)은 태강(太康)년 간의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으나, 정치 사회면에서 있어서의 사족과 문벌의 지위가 굳어지고, 이들은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며 극도로 부패한 생활을 하였다. 서진(西晉)은 사족들의 힘을 빌어 정권을 잡고 황족들의 힘을 빌어 천하를 유지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제왕으로 봉했다. 그러한 결과 「팔왕(八王)의 난」 이 일어나고, 연이어 서쪽과 북쪽 각족(各族)들이 서로 싸우는 바람에 서기 316년에 서진(西晉)은 망해버렸다. 그러나 서진(西晉)의 일파가 강남으로 옮겨 와 건강(建康, 지금의 南京)에 자리를 잡고 동진(東晉)이란 나라를 지탱하게 되는데, 이후로는 계속 남북이 대치되어 이른바 남북조(南北朝)시대가 전개된다. 위 나라에 이어 서진(西晉)시대에는 사회의 혼란 속에 지식인들은 현실적인 뜻을 잃고 동한 때에 이룩된 도교(道敎)를 반전시켰으며, 지식인들은 현실에 초연하고 방달(放達)한 태도를 지니며 현리(玄理)를 주제로 하는 청담으로 세월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리고 정치뿐만이 아니라 문학까지도 완전히 사족들의 것으로 굳어져 귀족화하고 형식화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의의가 뚜렷한 좌사(左思) 의「영사시(詠史詩)」같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였다. 흉노의 유연(劉淵)이 군사를 일으킨 때(304)로부터 북위(北魏)가 북방을 통일하기까지(439), 북조(北朝)의 130년 간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이라 부르는 여러 민족의 나라 사이의 대 혼전의 시기였다. 이 혼전으로 황하 유역 일대는 위•진의 정치성과도 남기지 않고 동한 말기보다도 더 철저히 파괴되었다. 북위가 통일한 뒤로 북방의 사회가 어느 정도의 안정을 되찾아 경제와 문화는 발전을 보이는 듯 했으나, 결국은 다시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갈라졌고, 뒤에 다시 찬탈에 의하여 북제(北齊)와 북주(北周)가 이들을 계승한다. 남조(南朝)는 동진에서 시작하여, 송(宋)•제(齊)•양(梁)을 거쳐 진(陣)나라가 수(隋)나라에게 멸망 당하기까지 이다. 이들 남쪽의 다섯 나라들 간에 전쟁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역들이 전란에 휩쓸리지 않고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