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과학] 한성순보에 나타난 과학기술 -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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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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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 조선에는 화학이 없었다!

Ⅱ. 한성순보에서 나타난 화학

1. 원소에 대한 기계적 설명
2. 잘못된 내용들 & 문제점
3. 주목할 점

1. 서양에서 유래한 ‘화학적 기술’에 대한 소개
2.‘조선도 이러한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 - 개화론, 부국론의 강조
3. 불火과 등燈을 중요시하게 다룸. - 개화론, 부국론적 성향
4. 화학,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기사. - 지식수준의 한계, 번역의 문제
Ⅲ. 당시의 화학에 대한 인식
1. 화학에 대한 무지의 양면성
2. 기술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3. 왜 다뤘는가?

Ⅳ. 결론 및 의의
본문내용
Ⅰ. 서론 - 조선에는 화학이 없었다!

화학 : 일반적으로 화학의 전신前身으로 중세 연금술, 이중 현교적 연금술 쪽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교적 연금술이란 금을 만들고 영생을 얻게 하는 '현자의 돌Elixir'의 추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고, 원소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기보다는 현실적인 특정 목표를 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실험이란 개념이 도입된 정도였다. 이론적 정립으로서의 화학이 등장한 것은 17세기 중반 보일이 화학현상에 대한 기계론적 해석을 시도하면서부터였다. 이를 통해 원소가 정립되기 시작하였고, 이 원소를 다루는 학문인 화학이 성립되었다. 화학이란 원소들에 대한 정립과 이를 통한 물질의 성질, 조성, 구조 및 그 변화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천문학과 기상학과 같이 보이는 대상에 대한 학문이 아니었기에 그 시작은 매우 늦어서, 서양에서도 근대에 와서야 비로소 성립된 학문이었다.
성리학 : 성리학은 기본적으로 성性, 즉 인간 심성과 리理, 논리, 이성이란 두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한다. 성리학에서는 인간 심성과 우주 질서를 통합적으로 보고 있으며, 이에 대한 것을 논리와 이성을 근거로 하여 설명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성리학에서는 이와 기의 개념을 동원하여 우주의 생성, 구조 및 인간 심성의 구조, 사회에서의 인간의 자세 등 폭넓은 주제에 대하여 깊이 사색하고 있는데, 그를 통해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실천철학적實踐哲學的 부분에 있어 많은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성리학이 형이상학적 분야 뿐 아니라 실천철학적 분야에 있어서도 큰 역할을 했다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성리학은 민본주의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실천주의적 성향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는 이기론理氣論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인데, 이 중 리는 우주의 근본 원리에 대한 문제이며, 기는 만물의 구성 요소를 말한다. 성리학자들의 역할은 이 두 가지의 관계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이 중 기에서 실천적 성향이 연결된다. 기는 만물의 구성 요소를 말하며, 따라서 기의 추구는 현실이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과 상통한다. 이 특성은 현실에 도움이 되는 실천적 학문들과의 연계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성리학이 주목한 것은 가장 직접적인 실천이었으며, 현대 과학의 주가 되는 이론적 요소 등은 추구하지 않았다. 특히 화학과 같은 경우 경험에 의한 통계자료에 따른 구성이 아니라 성분들에 대한 분석, 실험 등을 토대로 하여 이론을 정립한 이후에 실용적 학문으로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화학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발전한 부분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리학적 속성은 민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실천적 학문의 발전을 촉발했는데, 당시의 주도적 산업인 농업과 국가에서 요구하는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산업들이 중시되었다. 이에 따라 농업과 관련된 부분과 부국강병에 대한 실천학문의 발전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과학의 발전은 오로지 실천적, 실용적 측면에 집중되어있었기에 대부분이 자료의 수집을 통한 통계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 내면에 있는 이론적 특성을 주목하기보다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기술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 개화기 이전 화학적 요소가 포함된 한국의 기술
1. 청동기, 철기 등 금속 제련기술
2. 화약으로 대표되는 무기제조기술
3. 김치, 절임 등 식품 보존기술
4. 농산물 생산을 위한 퇴비의 이용
5. 유약, 안료 사용 등에서 보이는 도자기제작기술
cf. 연단술 : 서양에 연금술이 있었다면, 동아시아에서는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연단술煉丹術'이 있었다. 이 중 선약을 조제하여 먹음으로써 장생하고 신선이 될 수 있다 생각했던 외단학外丹學이 연금술과 유사한 모습을 가지는데, 도교 사상이 강했던 중국에서는 이 부분이 황제와 연결되어 크게 발달한 반면 한국 쪽에서는 특별히 발전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의학 분야와 연결되어 어느 정도의 자료가 남아있는데, 세종 15년의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 보면 70종 가까이의 불로장생한다는 신선방神仙方이라는 처방이 등장하고 있다. 이 신선방의 처방은 당나라 초의 명의이자 신선가였던 손사막의 저서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또한 세종 25년의 《의방유취醫方類聚》에도 중국의 유명한 연단술자들의 의서가 망라되어있다. 이러한 연단술은 당시 양반 계층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실제로 송시열과 같은 경우 어린아이의 소변을 약으로 복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는 모두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국 독자적으로 연단술을 발전시킨 부분은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 사회에서 화학에 대한 독자적인 실험 방식이나 연구 방식 등은 주목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참고문헌
•《한성순보漢城旬報》1884. 5. 25
•《한성순보漢城旬報》1884. 6. 4
•《한성순보漢城旬報》1884. 3. 18
•《한성순보漢城旬報》1884. 4. 25
•《한성순보漢城旬報》1884.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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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래.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교보문고. 1998.
• 오진곤. 《화학의 역사》. 전파과학사. 1993.
• Hudson, John. 《화학의 역사》. 고문주 역. 북스힐. 2005.
• 리기용. . 1997.
• 정광룡. . 1992.
• 최성락. . 1992.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