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작가론] 서거정의 생애와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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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작가론] 서거정의 생애와 문학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서거정의 생애와 인문 의식
1) 서거정의 생애
2) 인문의식

3. 서거정 시문학의 특징
1) 관각문학적 특징
2)‘한’의 정서

4. 동인시화의 편찬과 용사론
1)동인시화 편찬의 동기와 의의
2) 용사론
3) 用事와 관습적 표현

5. 필원잡기와 태평한화골계전
1) 필원잡기 작품의 내용과 그 의의
2) 필원잡기에 담긴 인문관
3) 태평한화골계전의 내용과 의의
4) 골계전의 웃음원리와 그 예

6.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서거정은 조선 세조에서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문물이 가장 잘 정비되고 안정된 시대를 살며 한 평생을 관료로서 살았던 인물이다. 국문․한문학계에서는 이 시기를 국가가 주도한 문예 열풍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러한 시대 상황에 참여하여 수준 높은 결과물을 생산해 낸 훈구관료들의 문학적 경향을 높이 평가해왔다. 서거정은 이러한 훈구관료의 대표적 인물로서 대각문학을 비롯하여 각종 국가 편찬사업을 이끌어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이에 우리는 서거정의 생애와 대각문학의 주도자로서의 모습을 살펴보고 나아가 서거정의 삶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2. 서거정의 생애와 인문 의식

1) 서거정의 생애

서거정은 조선 세종(世宗) 2년(1420)에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달성,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 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안주목사(安州牧使) 미생의 아들로, 어머니는 양촌 권근(權近)의 딸이었고 그의 누이도 최항(崔恒)에게 출가하는 등 그의 집안은 당시의 공신(功臣)들과 인척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그의 집안은 당시 명문(名門)으로 꼽혔다. 이경혜, 『徐居正 硏究』, 인문과학연구. 1993
여섯 살 때부터 글을 읽고, 시를 지어 신동이라고 불렸다. 19세(1438년)에 진사과와 생원과에 잇달아 합격하여 관료로서의 포부를 펼쳐 나갔다. 서거정(임정기 옮김),「四佳集」卷一 해제, 민족문화추진회, 2004

서거정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은 34세(1453년)에 일어난 계유정난(癸酉靖難)이었다. 계유정난에는 당시 집현전의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서거정은 당시 모친상으로 인해 복상(服喪)중이었기 때문에 현실의 극한 갈등을 다소 피하기는 했지만, 결국 그는 절의를 지키는 사육신과 생육신을 따르지 않고 계유정난의 주역인 한명회․신숙주․권남의 편에 서서 현실적인 노선을 택한 이후 순탄한 벼슬살이를 계속하게 된다. 김성우, 『15세기 중․후반 勳舊官僚 徐居正의 관직생활과 그에 대한 평가』, 대구사학회, 2006

그는 48세부터 예문관 대제학을 겸직하였는데, 이때부터 죽기 전까지 23년간 문형(文衡)의 자리에 있었다. 이에 나라의 전책(典策)과 사명(詞命)이 모두 그의 손에서 쥐어지게 되었으며, 주요 관찬서도 그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게 되었다. 관찬서 이외에도 그는 동인시화(東人詩話),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필원잡기(筆苑雜記)와 같은 개인문집을 남기는 등 생전에 남긴 저술의 양은 실로 엄청나다. 이처럼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서거정은 특히 문장에 재능을 보인 관료로서, 당시 중국 최고의 문장가 기순에 대응할 만한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통하였다.
서거정의 삶과 문학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외조부 양촌 권근(權近)이라 할 수 있다. 서거정은 외조부 권근(1352~1409)과 동시대에 살지는 않았지만, 권근의 아들 권제(權題)와 손자 권남(權擥) 등 권근 일족과의 교유를 통하여 훈구 관료의 의식세계와 국가관 등을 배웠다. 서거정은 최항이나 유방선과도 학문적 교류를 깊이 하며 영향을 받아왔는데 이들은 모두 권근으로 귀결된다 하겠다. 서거정(임정기 옮김),「四佳集」倦1 해제(2004). 민족문화추진회,
서거정이『서사가전집』「讀外祖陽村集」에서 자신이 선초 대명외교에서 문장보국으로 공을 세운 권근의 조카임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은 王郞風韻袁公額 왕랑의 풍운이요, 원공의 이마일세
楊惲文章太史甥 양운의 문장이요, 한림의 조카이네
頑我何能傳外業 부족한 내가 어찌 외조부의 대업을 전승하리오
平生翰墨只虛名 평생의 문장도 한낱 허명인 것을
-「讀外祖陽村集」,『서사가전집』, 시집보유편 권6. p478
, 그의 문집에 자주 접할 수 있는 긍지에 찬 모습이다. 이 긍지에 찬 자세는 그가 현실과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명분이면서, 동시에 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했다. 그 자신 평생의 문장이 허사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재능이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김영수, 『徐居正의 漢詩 硏究』, 漢文學論集, 근역한문학회, 1994


2) 인문의식

조선 전기 문학론의 흐름을 주도한 문인들은 당시의 정권을 담당한 관료문인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문학론에는 필연적으로 관료적 경향이 나타났다 김승회, 『徐居正의 文學論에서의 官僚的 性格』, 漢文學術潗, vol.12,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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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은 경세(經世)를 본받아 문장을 기르고 이로써 정사에 참여하는 것을 학문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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