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사] 조선후기 한국문학 -열하일기와 시조의 붕괴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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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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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근대의 산문
(1) 가족제도의 붕괴
(2) 열하일기

Ⅲ. 근대의 시가
(1) 시조 붕괴의 배경
(2) 사설시조
(3) 가사와 판소리

Ⅳ. 결론

Ⅴ. 참고 문헌

Ⅵ. 연표

Ⅶ. 연구사 목록
본문내용
Ⅰ. 서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 흐름을 타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전 시대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조에서 변화의 모습이 가장 크게 나타난 시대가 바로 영·정조 시대부터이다. 이 시기에 사회는 점점 더 발전하고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과거 체제에 대한 모순을 깨닫게 된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는 그 자체 내의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기 시작한다. 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 민음사, 1996, p. 47
김홍도와 신윤복은 해학과 풍자를 섞어 서민 사회의 생활 정서를 묘사하고, 당시에는 사용하지 않는 색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 지식인 계층은 사회 근본을 구성하고 있는 유교적인 바탕을 넘어서서 과학과, 기술을 도모하며 실용이라는 면모를 처음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서민층 역시 변화하였는데, 농업의 발달로 경영형 부농의 등장했고, 상업의 발달로 수공업이 발달하여 중인층의 지위가 크게 상승되었다. 또한 유교이념으로 인해 억압을 받았던 서자와 여성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변화는 조선 후기 문학의 변화까지 이끌어 낸다.
임진(壬辰), 병자(丙子) 양대 국란과 실학정신의 출현으로 인해 조선 후기의 사회는 급격하게 변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사회의 변화가, 조선 후기 문학의 변화 및 발전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에서는 어떻게 노력하였는지 분석하였다. 크게 근대의 산문과 근대의 시가로 나누어, 근대 산문에서는 가족제도의 붕괴와 박지원의 작품 중심으로, 근대의 시가에서는 시조의 붕괴를 중심으로 살펴 볼 것이다.














Ⅱ. 근대의 산문

(1) 가족제도의 붕괴

우리가 지금 흔하고 익숙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계중심의 가족제도는 조선시대 후반기에 중국의 유교사상이 조선의 이념으로 유입되면서, 성리학을 정착시키려는 노력 가운데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중반기까지만 해도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방법 서류부가혼: 결혼 후의 생활이 장기간동안 처가에서 이루어지는 혼인형태
으로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었다. 이러한 혼인풍속은 처의 부모나 외조부모의 은의가 동성친족에 못지않았고, 처부모를 친부모처럼 여기며 처부모도 사위를 친아들처럼 여김으로써 동성친족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송영희, 「조선후기 가족제도의 변화」, 인제대학교 교육대학원, 2005, p. 5
하지만 17세기 이후 성리학의 발달하며 부계 중심의 가족 제도가 확립되면서 혼인 후 곧바로 남자 집에서 생활하는 친영제도가 결혼 후 곧바로 남편의 집에서 생활하는 제도
정착되었다. 그로 인하여 처음에는 딸들이 그리고 점차 큰아들 외의 아들들도 제사나 재산 상속에서 그 권리를 잃어갔다.
유교사상에 입각한 부계중심의 가족제도는 사회에 정착되면서 크나큰 모순을 만들어 냈다. 가장의 권위를 극도로 신장시켜 다른 구성 요인들에 대한 고려를 거의 하지 않은 데 있다. 김윤식.김현, 앞의 책, p.50
앞서 말한 다른 구성요인들에는 여자와 서자가 해당한다. 이들의 고통과 슬픔은 부계중심의 가족제도 비판의식으로 문학작품에 나타나게 되었다.
가족제도의 모순으로 인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문제점들 한 가지가 적서차별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으로 허균의 《홍길동전》이 있다. 허균은 이전에 유재론(遺才論)이라는 글을 썼는데 이 글에 적서차별의 부당성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있다. 《홍길동전》은 유재론에서 제기한 문제를 소설적으로 대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박기석 외, 『한국 고전문학 입문』, 집문당, 2005, p. 216


"밤이 깊었거늘 네 어찌 자지 아니하고 방황하느냐?"
길동이 복지(伏地)하고 대답하여 가로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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兪玉女,「燕岩小說에 나타난 庶民意識 考究」, 同德女大 大學院,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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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위경,「에 내재된 연암의 종교사상 연구」, 梨花女大 大學院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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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부 「연암문학과 경제사상」,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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