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 태권도의_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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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태권도의 유래
1. 역사
1) 고구려시대 2) 신라와 백제 3) 고려시대 4) 조선시대 2. 국기로서의 태권도3. 기술
4. 경기
5 . 단급제도
6 . 전문용어
본문내용
태권도의 유래
2000년 전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창시된 고유의 전통 무술로, 오늘날 세계스포츠가 된 격투경기이다. 태권도는 이제 세계화된 국제적으로 공인된 스포츠로 2004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태권도는 전신운동으로서 상대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맨손과 맨발로 인체의 관절을 무기화하여 자신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무도이다.또한 수련을 통하여 심신단련을 꾀하고 강인한 체력과 굳은 의지로 정확한 판단력과 자신력을 길러 강자에게 강(强)하고 약자에게 유(柔)하며, 예절바른 태도로 자신의 덕(德)을 닦는 행동 철학이다. 태권도의 정신은 수련으로 얻어지는 기술의 소산(所産)이다.
1. 역사
1) 고구려시대 삼국시대 때 고구려의 문화는 말할 것도 없이 한민족문화의 여명기로서 독창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 태권도의 가장 오래된 실증(實證)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풍속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고구려가 도읍으로 정했던 국내성(國內城 3∼209)과 환도성(丸都城 209∼427)이 위치했던 지금의 중국 땅인 둥베이[東北:滿洲] 퉁화성 지안현 퉁거우[通化省輯安縣通溝] 지방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고분 중 하나인 무용총(舞踊塚) 널방[玄室]의 천장지송부(天障持送部)에 두 사나이가 서로 마주 서서 겨루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또 삼실총(三室塚:퉁거우 지방에서 발굴된 고분)의 삼실 동벽과 서벽에 품세의 자세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황해도 지방의 고분인 동수묘(冬壽墓:황해 안악군 유설리에서 발굴된 고분)는 요동(遼東)에서 고구려로 귀순한 연(燕)의 장군묘로서 357년에 봉분(封墳)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앞방[前室] 동벽에 태권도 겨루기의 자세가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태권도가 많은 고구려인들에 의해 수련되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2) 신라와 백제 태권도는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의 정립시대(鼎立時代)로 들어가 상충적대(相衝敵對)하게 되자, 자연히 무예진흥을 서두르게 되었고, 특히 진홍왕(24대:534∼576) 때 편제를 개편하여 범국가적인 청소년 수양단체가 되었던 화랑(花郞)들의 무예수업을 빼놓을 수 없다. 신라의 무예는 화랑도의 수련기술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그들은 학문을 닦는 한편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의 하나로서 수박(手搏)을 행하였다. 그들은 유 ·불 ·선(儒 ·佛 ·仙) 사상을 바탕으로 하였고, 그 중에서도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경주 불국사의 석굴암에 부조(浮彫)된 금강역사 보살상이 태권도의 막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석가모니의 호위장으로 역사(力士)를 표현한 것이나, 이 상(像)으로 인하여 당시 화랑들에게 미친 태권도의 영향이 대단히 컸을 것으로 본다. 또 그런가 하면, 고려 고종 때 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제왕운기》에 나오는 신라 무술의 대목에서 탁견술(托肩術)을 기술한 것이 있는데, 그 중 비각술(飛脚術)의 신비한 기술을 묘사한 시구(詩句)가 있다. 태권도의 옛말인 ‘태껸’도 이 탁견에서 유래한다. 백제에서는 태껸, 즉 태권도가 행해졌다는 기록이나 유적을 볼 수 없으나, 《제왕운기》에 의하면 백제의 무술로 수벽타(手擘打)의 오묘한 기술을 묘사한 시구가 전해지고 있다. 3) 고려시대 고구려 ·신라 때 어느 정도 틀을 갖춘 태껸이 더욱 체계화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이다. 특히 무인들의 사회에서 무술연마의 일환으로 독특한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실은 여러 사실(史實)에 의해 알 수 있다. 고려사에서는 태권도를 수박(手搏) 또는 수박희(手搏戱)라고 기록했으며, 무예로 권장했기 때문에 그 수준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에서도 수박희를 잘하는 사람에게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는 기록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의종(毅宗)은 이의민(李義旼)의 수박희를 가상하게 여겨 벼슬을 올려 주었고, 그 밖에 두경승(杜景升) ·최충헌(崔忠獻) 등이 수박희를 매우 잘함으로써 많은 일화를 남겼다. 4) 조선시대 태권도는 무인들의 사회에서 주로 돋보였던 고려시대의 수박희와는 달리 조선시대에서 일반화되어 대중의 수련과 겨루기 등 일반 백성들의 생활영역에까지 크게 파고들었다. 《태종실록(太宗實錄)》 권21, 권32, 《단종실록(端宗實錄)》 권14 탁견(托肩)의 조(條)에 의하면 수박을 잘하는 사람을 특채할 정도로 수박희가 보편화되었고, 나라에서도 그 실기를 높이 평가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충청 은진현(恩津縣) 경계에 있는 작지(鵲旨) 마을에서는 해마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이면 근방 충청과 전라 두 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수박희를 겨룬다 하였다. 이 때는 수박희가 이미 무예의 영역에서 벗어나 스포츠로까지 확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병조 의흥부(兵曹義興府)에서 수박희로 인재를 시험하여 방패군(防牌軍)으로 뽑되 세 사람을 이긴 자를 채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나라에서 수박희로 시험을 보아 군사를 뽑는다는 소문을 듣고 이방 향리(鄕吏)의 관노(官奴)들이 모여 수박희의 경기를 가졌다고도 했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普通志)》는 정조(正祖) 14년 왕명에 의해 이덕무(李德懋)와 박제가(朴齊家) 두 사람이 출간했는데, 이 서지(書誌)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병법서로서 권4 첫머리에 권법이라는 이름으로 태권도의 동작이 실려 있다.
2. 국기로서의 태권도
여러 문헌을 통해 태권도는 2000년 전인 삼국시대부터 이미 행해졌음이 입증되었고, 한국의 국기로서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역사와 내용이 담긴 무예적 스포츠이다. 중국 권법은 1500년 전 소림사(少林寺)에서 시작되었고, 일본 가라테[空手:唐手]는 500년 전 오키나와[沖繩]에서 시작되었음을 볼 때, 태권도는 동양무술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무술임을 확증할 수 있다.한민족의 얼과 생활 속에 맥맥이 이어내려온 태권도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침체되는 듯하다가 끝내 일본의 침략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일본의 속박에서도 민족적 기개를 꺾이지 않고 독립운동의 수단이나 민족적 울분을 태권도의 수련으로 승화한 사실은 비일비재하다.8·15광복과 더불어 비전(秘傳)되어 오던 태권도는 소수의 이 방면 지도자들에 의해 태권도의 재건과 진흥을 위해 각각 도장을 차려 후배 육성에 임하였는데, 청도관(靑濤館)·지도관(智道館)·송무관(松武館)·창무관(彰武館)·무덕관(武德館) 등이었으며, 이때부터 태권도의 저변확대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61년 9월 16일 태권도의 국내 통합체로서 KTA(Korea Taekwondo Association:대한태권도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 무도에서 스포츠화하였으며 경기화의 서장을 열게 되었다.1962년 6월 20일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에 경기단체로 가맹하였고, 1962년 11월 11일 제1회 전국승단심사대회를 개최하였으며, 1963년 10월 4일 전주에서 열린 제44회 전국체육대회에 정식종목이 되었다. 1966년 10월 28일 제1회 대통령 하사기쟁탈 전국단체대항 태권도대회가 개최되었고, 1967년 11월 30일 제정 품세를 심의공포하였으며, 1971년 3월 15일 태권도 계간지를 발간하였다.1972년 4월 4일 제1기 지도자 교육을 개최하였고, 그해 11월 30일 국기원을 건립(초대원장 김운용)하였으며, 12월 1일 태권도교본(품세편)을 발간하였다. 1973년 5월 25일 서울에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고, 1973년 5월 28일 WTF(The World Taekwondo Federation:세계태권도연맹)를 창립(초대총재 김운용)하였으며, 1974년 10월 18일 제1회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1975년 10월 5일 ISF(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국제경기연맹)에 WTF가 가맹하였고, 1976년 4월 9일 국제군인선수권대회에서 태권도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였으며, 1978년 10월 5일 각 관을 폐쇄하고 KTA 중심으로 단일화하였다. 1980년 7월 17일, 모스크바(Moskva)에서 열린 제83차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 정기총회에서 WTF를 공식승인하였으며, 1980년 11월 1일 서울 국제군인선수권대회에서 태권도경기를 개최하였다.1981년 7월 24일 미국 산타클라라(Santa Clara)에서 제1회 월드컵태권도대회가 개최되었고, 1983년 8월 13일 팬암게임에서 태권도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였다.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였고,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선정되었으며,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3. 기술
태권도의 수련방법은 기본동작으로부터 품세·겨루기·격파·호신술 등으로 구분한다. 기본동작은 태권도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손과 발을 이용한 역학적 요소를 지닌 기술로 주먹과 손날을 이용한 막기·지르기·찌르기·치기와 발을 이용한 차기를 각종 서기[立]의 자세에서 취하는 것이다.품세는 혼자서 상대를 가상하여 연무선을 통해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한 자리에서 두 동작 이상을 순간적으로 행하여 속력과 힘, 유연성 및 중심이동, 그리고 호흡 및 동작의 완급 등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품세의 체계는 단순하여 쉬운 것부터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 점진적으로 배워 나간다. 이의 종류로는 유급자의 품세로 태극 1∼8장, 팔괘 1∼8장이 있고, 유단자의 품세로 고려(高麗)·금강(金剛)·태백(太白)·평원(平原)·십진(十進)·지태(地跆)·천권(天拳)·한수(漢水)·일여(一如) 등이 있다.겨루기는 품세를 통해 익힌 공격·방어의 기술을 응용하여 실제로 상대편과 대결하는 기술로, 두 사람이 일정한 틀에 맞추어 연습하는 맞추어 겨루기와 기술의 제한이 없이 연습하는 겨루기 등이 있다. 맞추어 겨루기는 상호 주어진 공격과 방어를 맞추어 연습하는 겨루기이고, 겨루기는 자유자재로 실전에 임한 자세로 상대의 급소를 겨루고 방어하는 기술을 숙달시키는 기술이다.격파는 손과 발 등의 공격 및 방어의 부위를 각종 보조기구를 통하여 강화·단련함으로써 파괴력을 기르는 것으로, 품새·겨루기와 함께 태권도의 3대 기본 구성요소이다. 손발의 기술체계를 숙달하고 심사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