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음성문자의 고찰

 1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
 2  한글음성문자의 고찰-2
 3  한글음성문자의 고찰-3
 4  한글음성문자의 고찰-4
 5  한글음성문자의 고찰-5
 6  한글음성문자의 고찰-6
 7  한글음성문자의 고찰-7
 8  한글음성문자의 고찰-8
 9  한글음성문자의 고찰-9
 10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0
 11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1
 12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2
 13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3
 14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4
 15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5
 16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6
 17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7
 18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8
 19  한글음성문자의 고찰-19
 20  한글음성문자의 고찰-2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한글음성문자의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3. 결 론
본문내용
3) 조선

고려말 신유학(性理學)이 도입된 후, 이를 적극 수용한 신흥 사대부들에 의해 조선 왕조가 개창되자 유교는 國是로 천명되었다. 世宗 元年(1419)에는 유교의 지도이념에 합당한 체제정비를 수행하고 유교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자 ≪四書大典≫,≪五經大典≫,≪性理大典≫을 수입하여 본격적으로 學習·硏鑽하게 되어 유교의 이념은 국가 · 사회 · 가정 · 개인에게 모두 적용되었고 사회의 모든 문화양상은 유교를 사상적 기초로 하여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性理大典≫ 713권에 수록되어 있던 邵雍의≪皇極經世書≫의 聲音理論은 바로 유교 이데올로기에서 보편적인 聲音觀으로 인식되는 사상적 근거가 되었으니 朝鮮朝 純祖 · 憲宗 · 哲宗연간에 살았던 李圭景(1788-?)이 소옹이야말로 聲音學者 중의 第一人者라고 하면서 “邵子의 성음학에 능통해야만 비로소 韻學을 알 수 있을 것(能通邵子之聲音者, 始能知韻字乎.)”이라고 한 것은 소옹이 한글의 창제 무렵부터 그 뒤로 500여 년간 조선의 성음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이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 “천지 자연의 어떤 말소리도 반드시 그 말소리에 합당한 천지 자연의 글자가 있는 법이다. 만약 풍토에 따라 말소리가 각각 다르면 그 말소리에 합당한 글자도 각각 다를 것이다. 그러나 말소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말소리에 합당한 글자가 없어서 다른 말소리를 적는 글자를 빌어 사용하는 것은 마치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끼우는 일과 같은 것이다.” 라고 하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말소리가 중국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글자(한자)를 빌어 쓰고 있으므로 일상 쓰는 말소리의 만분의 일도 적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하였다.

우리 조선은 안팎으로 山河가 저절로 한 구획을 이루어 지리와 기후조건이 중국과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발음이어찌 중국음과 부합될 수 있겠는가? 한자음이 중국과 다른 것은 자연스런 이치이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