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나타난 민간신앙

 1  삼국유사에 나타난 민간신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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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유사에 나타난 민간신앙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기이편에 나타난 민간신앙

1) 자연물신앙

2) 무속신앙

3) 풍수신앙

4) 금기신앙

5) 점복(占卜)신앙

3. 의의

1) 민중의식의 대변

2) 민족의 자주성

3) 민간신앙에 대한 재인식


본문내용
2) 무속신앙
그런데 그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웠으므로, 역신(疫神)이 그녀를 흠모하여 사람으로 모습을 바 꾸더니 밤에 그 집에 가서 몰래 그녀와 동침했다. 처용이 밖에서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 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자 이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물러 나왔다.
...(중략)...
그때에 역신이 형체를 나타내어 처용의 앞에 꿇어앉았다.
“제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지금 그녀와 관계했는데, 공은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시니 감동 하여 칭송하는 바입니다. 맹세코 이후로는 공의 형용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 겠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나랏 사람들이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쳐 경사를 맞아 들이게 되었다. 삼국유사 기이편 처용랑과 망해사 , p.266.


진평대왕眞平大王이 그 이상함을 듣고 궁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열다섯 살이 되자 집사執事 벼슬로 임명했더니, 밤마다 멀리 도망가서 놀았다. 왕은 용사勇士 50명을 시켜 그를 지키게 했 는데, 번번히 월성月成을 날아 넘어가더니 서쪽으로 황천荒川 언덕 위⎯서울 서쪽에 있다⎯에 가서 귀신을 데리고 놀았다. 삼국유사 기이편 도화녀와 비형랑, p.155


귀신은 곧 땅 속으로 들어갔다. 왕은 이를 괴이히 여겨 사람을 시켜 땅을 파보니, 깊이 석 자 가량 내려가서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거북의 등에 글이 씌어 이었는데 백제는 온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 해다. 무당에게 물었더니 무당은 말했다.
"온달이란 꽉 찬 것이오니 차면 이지러지는 법이오며, 초승달이라 함은 아직 차지 않은 것이오 니 차지 않으면 점점 차게 되는 것입니다."
왕은 노해서 무당을 죽였다....(후략) 삼국유사 기이편 태종 춘추공, p.179.


처용은 역신을 쫓아내는 존재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처용이 역신을 물리쳤다는 것은 오늘날 무당이 굿을 하여 귀신을 물리친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또 비형랑은 귀신을 데리고 논다. 귀신을 데리고 노는 행위는 일반인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신통함이 있는 특정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해석으로 본다면 그 당시 처용과 비형랑을 무당의 대표자로 내세움으로서 무당의 존재와 신통함을 알린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보면 어떠한 괴이한 일을 왕이 무당에게 물을 정도로 무당에게 의지 하고 있다는 것은 무당이 그 당시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가 높았다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3) 풍수신앙
마치 초생달 같은 한 산봉우리가 보이는데 지세가 오래 살 만한 곳이었다. 이에 내려와서 그곳 을 찾으니 곧 호공(瓠公)의 집이었다.
이에 속이는 꾀를 써서 숫돌과 숯을 몰래 그 곁에 묻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그 집 문 앞 에 가서 말했다......(후략)

풍수신앙은 묘나 집터가 지역에 따라 길흉이 있다고 믿는 신앙이다. 어떤 지세나 땅의 형세는 복을 받을 수 있다거나 또는 화를 당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은 풍수가 길흉화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