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 백호 임제의 생애와 작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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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학사] 백호 임제의 생애와 작가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임제의 생애

1. 성장기

2. 수학기

3. 출사기

Ⅲ. 임제의 시 세계 -낭만성과 사상(思想)을 중심으로

1. 호방한 기개와 기상.

2. 여성적 정감과 낭만.

3. 주체적인 성리학 사상

Ⅳ. 우의적 소설 세계와 비판 정신

1.

2.

3.

Ⅴ. 결론

Ⅵ.참고문헌
본문내용

2. 수학기

어린 나이에 失學을 하고 자못 倈遊를 일삼아 창루주사娼樓酒肆에 분방하게 자취가 미쳤는데,
나이 20에 들어서 비로소 學에 뜻을 갖게 되었다. 『白湖潗』4권 p.959 참조.


그가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568년, 나이 20세 되어서이다. 이때는 선조가 즉위하여 조정에는 청의가 돌게 되고 재지 사대부들도 중앙 정계에 적극 진출하는 새로운 약진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임제의 課業도 이러한 시세에 부응한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과거 낙방으로 침체하여 다시 세속에 뜻을 잃고 방황하여 遠遊의 뜻을 품게 된 그는 마침 그의 율시 『白湖潗』서. , p.430, “바람에 눈 몰아치는 고당 가는 길/ 칼 한 자루 거문고 하나 천리 나그네./
종은 떨고 말은 병들어 의지 없는 신세련만/ 휘파람 불고 노래하니 신명이 나네./까마귀 우는 높은 나무 저녁 연기 차갑고/개짖는 외로운 마을 백성의 집 가난쿠나./유유하다 고향 생각 갑자기 일어나니/ 금수가에 매화 피어 남녘 땅 하마 봄이겠지.〔大風大雪高唐路, 日劍一琴天里人, 僮寒馬病却無賴, 嘯志歌懷如有神, 鴉啼喬樹暮煙冷, 犬吠孤村民戶貧, 悠悠忽起故園思, 錦水梅花南國春〕”
를 계기로 당대의 석학 대곡 성운을 만나 스승으로 삼고 수학하게 된다. 대곡 성운 선생은 높은 학문과 덕행으로 당대 사림의 추앙을 받았던 인물로 을사사화 때 그의 형이 죽음을 당하자 큰 충격을 받고 그 길로 세상을 버리고 속리산에 은거 한 채 학문과 시문으로 여생을 마친 은사였다. 그는 임제의 작품을 인정하면서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되고, 후에 은거생활을 하면서까지 스승으로서 임제에게 질정을 아끼지 않았으며 임제에게 학문적, 인격적, 정신적 사표가 된다.
22세 가을까지 속리산에 은거하던 대곡 성운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에 정진하던 그는 다음 해에 뜻하지 않게 모친상을 당하여 23~25세까지 복상(服喪)하게 된다. 그래서 임제는 모친의 服喪을 마친 후인 25세가 되어서야 다시 속리산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수학(修學)에 정진 한다. 이때 그는 중용 팔백독을 하고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 하고, 산은 속인을 떠나지 않는데 속인이 산을 떠난다〔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라는 중용의 글귀를 통해 깨우침을 얻었다.
임제는 유학과 성리의 가르침에 대해 나름대로 이치를 깨쳤으며, 자서한 『白湖潗』4권 참조.
에 의하면 대곡에게 감화되어 미욱한 기질이 거의 교화되었다 했다. 이제 그는 열정 속에 방황하던 청년기를 지나, 보다 원숙된 인격과 학문을 갖춘 장년으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산사에서의 수학기 동안 스승의 감화와 승려들과의 교유를 통해 자연에 침잠하고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넉넉한 정신의 여유와 사고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으니 이를 자양분으로 하여 백호의 시문학 세계는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내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27세 되던 해, 임제는 스승 성운과 달리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었고 마침내 고향 호남에 침노한 왜구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싸움에 종군하는 문무 兼全한 장부로 성숙하게 되었다. 그 해, 그곳의 방백인 박계현과 만나게 되고 둘은 뜻이 맞아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함께 어울리게 된다. 그때 서로 주고 받은 작품이 20여수에 이르고 그와 당시의 혼탁한 세상을 함께 개탄하며,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임제는 時流에 휩쓸리지 않고 더욱 호방한 기상과 저항의식을 표출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28세 되던 해, 임제는 진사시에 합격하고 29세가 된 해(선조 9년, 1577)에는 마침내 大科에 급제하고 제주목사로 있던 부친을 覲親하러 제주여행을 하고 宦路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의 나이 30세 때는 제주 여행에서 돌아와 일기체로 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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