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인상주의 작가 마네에관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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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미술사] 인상주의 작가 마네에관한 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소개
2. 작품
3. 비교
4. 역사
본문내용
1863년의 살롱에 출품하여 낙선한 작품으로, 같은해 '낙선전'에 출품되어 비난과 조소의 표적이 되었으며, 원래의 이름은《목욕》이었다.
그림은 파리 교외의 전원 행락 풍경에서 착상하였는데, 나체의 여인에 옷을 입은 남성을 배치한다는 구상은 조르조네(Giorgione)의 《전원의 주악》에서 얻었다고 한다.
마네는 이 그림을 통해서 인간과 자연을 참신한 분위기 아래서 조화시키고자 르네상스의 조르조네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와토·부셰·코로 등이 선호한 고전주의적 주제를 현대화한 것이다.


그러나 관람자에게는 현대생활의 한 장면에 나체를 채택한 주제의 대담성이 자극적이었다. 또 그늘에서 빛으로 옮겨지는 부분을 생략하고 밝은 표면(나체의 살결)도 어두운 표면(남자들의 검은 옷)도 각각 자체의 색채로써 평면적으로 포착하여 이들 색채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킨 수법이 전통적 회화의 비전에 익숙해졌던 사람들의 눈에는 매우 낯설게 비쳐졌던 것이다. 그림은 나체뿐만 아니라 앞쪽의 빵·바구니·천 등 정물의 표현도 뛰어나다. 처음에는 이를 89х115㎝의 캔버스에 그렸으나 뒤에 지금과 같은, 그로서는 처음의 대작으로 다시 그렸다. 모델의 나부(裸婦)는 《올랭피아》와 같은 빅로린무랑, 가운데 남자는 처남, 오른쪽은 마네의 동생이다.


올랭피아


1865년의 아카데미살롱에 출품하여 입선한 작품이다. 모델은 《풀밭위의 점심》의 나부(裸婦)와 같은 빅로린 무랑인데, 그녀는 1860년대 마네의 몇몇 작품에 등장한다. 착상은 이탈리아에서 티치아노(Vecellio Tizjano)의 명작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보고 했다고 한다. 그림은 별로 아름답지 못한 여인이 서슴없이 온몸을 드러낸 채 비스듬히 누워 있고, 발 밑에는 검은 고양이가 눈을 번쩍이고 있다. 그리고 흑인 하녀가 손님이 보낸 꽃다발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이 전시되자 평론가와 시인들의 혹평과 빗발치는 야유 때문에 작품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천장 밑으로 옮겨야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모델의 나체를 이상화하지 않았으며, 신화나 우의(寓意)의 베일을 씌우지 않고 거의 초상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람자들은 비너스 대신 모델이 된 거리의 여인을 보고 파리의 밤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하고 격분하였던 것이다.
살결의 밝은 우윳빛이 또렷한 윤곽에 의해서 검은 배경 속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효과, 그 평면적 표현의 기법을 평론가들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한 지나친 비난은 거꾸로 그가 제시한 표현 기법의 참신함과 근대적인 명쾌함을 일반에게 인상적으로 남겨 작가에 대한 관심을 모으게 하였다.


피리부는 소년


손과 발 부분을 빼고는 그림자가 전혀 없는 평면적인 묘사로, 인물의 실재감을 표출시킨, 마네의 재주의 자부심을 읽을 수 있는 대표작의 하나, 검정, 빨강등 몇 개 안되는 색면이 각기 다른 음을 내는 듯한, 이른바 음악적 효과를 겨냥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배면처리도 원근법이나 수평 감각을 배제, 종이를 바른 듯 '없어진 배경'인 이러한 단순함이 오히려 실재감을 강조한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대상을 이와 같은 '공기로 감싸는' 수법은 그가 1865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 벨라스케즈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배웠다는 사실이 마네의 편지에서 밝혀졌다.
이 1866년 살롱에서 거부되자 소설가 에밀 졸라가 자청해서 변호에 나섰다.
모델은 마네와 보들레르의 친구 근위대 사령관이 데려온 근위군의 소년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