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족생활문화] 조선시대의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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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가족생활문화] 조선시대의 이혼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1.1 이혼이란?

1.2 이혼이란 주제를 선정하게 된 이유

2. 본론

2.1. 조선시대의 이혼 사유
2.1.1. 이혼사유별 사례분석
2.1.2. 기별문서 작성자
2.1.3. 시기별 분석
2.1.4. 혼인구성 원리
2.2. 현대의 이혼사유

2.3. 조선, 현대의 이혼법

2.3.1. 조선시대 이혼법

2.3.2. 현대의 이혼관련 제도

2.4. 이혼, 조선에서 현대로 과연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2.4.1. 조선시대 여성의 위치와 이혼

2.4.2. 현대사회의 여성의 사회 인식 변화와 이혼

2.5. 공시적 관점에서 비교

2.5.1 허난설헌이 현대에서 이혼한다면

2.5.2 최진실이 조선시대에서 이혼한다면

2.5.3. 대본

3. 결론

4. 피드백

5. 참고문헌

본문내용
2.본론

2.1. 조선시대의 이혼 사유
2.1.1. 이혼 사유별 사례 분석
1. 정변과 전쟁으로 인한 신분의 급변
① 정변
정변은 개인이나 가족의 신분의 변화를 가져왔다. 정변으로 인해 남편이 역적으로 인정되어 죄인이 되면 그의 아내는 천인이 되었다. 왕실의 딸인 경우에는 이러한 신분의 하강을 막기 위해서 강제 이혼을 시켰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조선조 초기에 나타난다. 그리고 또한, 공주나 옹주처럼 왕실의 자손이 아니라 나라를 어지럽힌 신하의 자녀 경우에도 조선 초기에 강제이혼을 시켰다.
정변으로 인해 이혼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적신의 아내 경우는 이혼이 되었으나 혼인한 딸들의 경우는 구제되었다, 이는 외손도 저절로 연좌되는 법이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그 법에 국한시키지 않은 예외의 법, 즉 인정(人情)에 의한 배려가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② 전쟁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으로 많은 사대부 집의 부녀자가 포로로 끌려갔다가 되돌아온 경우가 있었다. 돌아온 부녀자들은 실절을 했는지 안했는지에 관계없이 실절을 의심받았다. 그러나 실록에 의하면 돌아온 부인이 조상의 제사를 모시지 못하게 하고자 이혼해야 한다는 남편의 청을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많은 사대부 집안의 문제이기도 했고, 이를 허락할 경우 생길 사회문제를 염려한 까닭이다.
하지만 왕명으로 같은 집에 살기는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동거를 하지 않은 경우들이 속출한 것으로 보아 실제적으로 이런 왕명이 잘 지켜지지 않은 듯하다.

2. 칠거지악
칠거지악에 속하는 것으로는 무자, 투기, 불효, 간통, 질병, 수다스러움, 도벽을 들 수 있고 이 중 구체적인 사례로는 다음과 같다.

① 무자
조선은 유처취처를 금했는데 실제로 조선 초기에는 중혼이 드물지 않게 보고되었다. ≪대명률≫에는 유처취처 자는 장 구십에 이혼하게 한다고 해서 강제 이혼을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적처의 자식이 없거나, 적처의 자손과 후처의 자손 가운데 남편이 후취의 아들을 적손으로 삼고 싶을 경우에 전처를 첩으로 사칭하여 후취를 적실로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이 적발되면 처벌을 받았다.
참고문헌
동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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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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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2007), 「조선전기 이혼제도의 특징」
김혜영(2003), 「한국의 가족주의와 여성 인권」
박미숙(2007),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이혼양상에 관한 연구」
이순형(1997), 「조선조 혼인 관계의 유지 원리」
이욱(2005), 「조선시대 이혼의 사회사」
이종한, 이윤희(2000), 「이혼제도와 실태」
장병인(1999),「조선시대 이혼에 대한 규제와 그 실상」
정현숙(2008), 「사회경제, 인구학적 요인과 이혼율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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