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철학] 앤디 워홀과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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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술과 철학] 앤디 워홀과 백남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Andy Warhol
1. Andy Warhol’s brief personal record
2. Social Background
3. Tendency in His Works
4. Andy Warhol Criticism

Nam Jun Paik
1. Nam Jun Paik’s brief personal record
2. Social Background
3. Effected
4. Tendency in His Works
5. Nam Jun Back
6. A special Feature
7. Nam Jun Back

Andy Warhol vs Nam Jun Paik
본문내용
1. Andy Warhol’s brief personal record

본명: Andrew Warhola
미국 팝아트의 대표적인 화가, 영화감독

출생: 1928년 8월 6일, 필라델피아 출생
사망: 1987년 2월 22일
1983년 장 미셸 바스키아와 친분을 맺고 함께 작업
활동사항: 1979년 책 ‘1970년대의 조망’ 출간
1975년 책 ‘앤디 워홀의 철학’ 출간
1972년 《마오 Mao》시리즈로 다시 회화제작에 전념
1970년 사교계나 정치계 인물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
1966년 영화 ‘The Chelsea Girls’ 제작
1965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 프로듀스
1963년 첫 영화 실험영화 ‘슬립’ 촬영, ‘엠파이어’ 제작
1962년 시드니 재니스화랑 뉴리얼리스트전
1960년 기존의 상업미술 대신 순수미술로 전환해 배트맨, 딕 트레이시, 슈퍼맨 등 연재만화의 인물시리즈를 그림
1950년대 뉴욕에서 구두광고 등 상업적인 삽화가로 활동

2. Social Background

제 2 차 세계 대전 후 세계의 주도권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전
1960년대 베이비 붐 세대“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 소비사회의 풍요가 케네디 대통령의 확신에 찬 낙관주의 -
1950년 – 1960년 사이에 폭발적인 TV 증가
대중들의 획일화와 동질화, 대량생산과 소비 촉진
대기업을 포함한 거대조직 출현
자기지향적 인간 – 타인지향적 인간
추상표현주의 – 새로운 변화

3. Tendency in His Works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예술의 상업성을 간파
- 대중들의 일상과 밀접한 대상으로 작업 -
대량 인쇄와 상업적인 목적으로나 사용되던
실크스크린을 미술에 도입
미술품을 기계적으로 손쉽게 생산해냄으로써
대량생산, 소비사회에 걸맞은 예술형식으로 제시

4. Andy Warhol Criticism

1) 작품과 인사하기

“그의 작품은 천박하다.”

영국의 Tate Modern Gallery와 South Bank의 Andy Warhol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 받은 느낌은 “천박”이라는 단어로 시작되었고 마지막 한 작품까지 특별한 변화 없이 귀결되었다. 눈을 찌르는 듯이 형형색색으로 값싸게 빛나는 그의 작품들에는 어떠한 숭고한 이상도, 특별한 의도도, 내면적 아름다움도 없이 그저 표면 위에서 세치 혀를 놀리는 상업주의의 ‘혀놀림’ 뿐이었다.

당시 같이 있던 프랑스 동료 (Sarah Brickson)는 그의 작품의 천박함을 사랑한다고 하였지만, 나는 그녀가 그의 어떤 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감동을 받고 있는지 전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의 작품과의 첫 대면은 마치 “아홉살박이 어린아이가 자신이 좋아해 어쩔줄 모르는 것” 그리고 그 “피상적이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과연 저 실크스크린으로 대량 생산된 값싼 작품의 어느 곳에, 대체 어떠한 ‘숨겨진 힘’이 있길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을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