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남한의 한국사 시대구분론 비교 -`고대와 중세의 기점구분` 논쟁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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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과 남한의 한국사 시대구분론 비교 -`고대와 중세의 기점구분` 논쟁을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북한의 고·중세사 시대구분론
ⅰ. 1950년대 시대구분론
ⅱ. 1960년대 시대구분론
ⅲ. 1970·80년대 시대구분론
ⅳ. 1990년대 시대구분론
Ⅲ. 남한의 고·중세사 시대구분론
ⅰ. 1950년대 시대구분론
ⅱ. 1960년대 시대구분론
ⅲ. 1970년대 시대구분론
ⅳ. 1980년대 시대구분론
ⅴ. 1990년대 시대구분론
Ⅳ. 북한과 남한의 시대구분론 비교
ⅰ. 북한과 남한의 서로 다른 시대구분 인식
ⅱ. 북한과 남한의 서로 다른 시대구분 전개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Ⅱ. 북한의 고·중세사 시대구분론

ⅰ. 1950년대 시대구분론
해방이후 일제시기에 활동했던 마르크스주의 학자 최창익, 백남운, 박시형, 전석담 등과 같은 좌익계열의 학자들과 유물론자들.
들이 대거 월북하여 주류를 형성한 북한 학계에서는 사적 유물론의 방법론(유물사관) 마르크스주의의 근거가 되는 역사관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역사에의 적용이며, 그 근본 사상은 역사가 발전하는 원동력은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라고 하는 데 있다. 즉, 社會史로서의 역사의 실체가, 자연과 노동에 의해서 자연에 작용하는 인간, 그리고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규제하는 생산 관계 등, 물질적인 것으로 성립되며 그것이 자기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이다.
에 입각한 역사연구가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이현희,「北韓에서의 時代區分과 그 特徵」,『한국사의 시대구분에 관한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p.476.
특히. 1950년대에는 일제시기 백남운 백남운은 조선사회의 停滯性을 강조한 일본인 관학자들의 왜곡된 조선사관을 비판·극복하고 조선사학의 正體性을 확립한 인물로서, 사학사에서 그 업적을 중요히 평가하고 있다.
의 논지 조선민족의 박전사는 그 과정이 아무리 아시아적이라 하더라도 사회구성 내면의 발전법칙 그 자체는 완전히 세계사적인 것으로서 삼국시대의 노예제사회, 신라통일기 이후의 동양적 봉건사회, 오늘날의 이식자본주의사회에 이르기까지 조선역사의 총발전단계를 표시하는 보편사의 특징이며, 각기 특유한 법칙을 갖는다. 여기서 조선연구의 법칙성이 가능하게 되고, 세계사적 방법론으로만 과거의 민족생활사를 내면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또한 현실의 위압적 특수성에 대하여 절망을 모르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백남운,『조선사회경제사』제1장, 1933.
백남운의 논지요약 : 고대 노예제사회 단계인 삼국을 지나 통일신라에 들어오면 대토지소유제의 전개와 특권획득에 의한 특권층의 장원화, 즉 봉건적 사령이 형성되어 간다. 동시에 노예와 일반 농민의 농노화도 진행되었고, 봉건제로의 이행이 준비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립한 고려사회는 토지국유제를 물질적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적 봉건사회였다. 요컨대, 고려 성립 이후 중세 봉건제사회가 전개되었다는 논지이다.
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을 중심으로 고·중세사 시기구분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논의는 1956년 10월 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주최한 ‘삼국의 사회경제 구성에 관한 토론회’ ‘조선로동당 제 3차 대회’가 사상․과학 산업 분야에서 제시한 ‘정확한’ 노선에 근거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방법으로, 북한 역사학계에 존재하는 중요 문제들을 ‘옳게, 또 급속히’ 해결하는 것이 당시 북한 역사학자들에게 부과된 가장 긴급한 과제였다. 따라서 1956년 9월 사회과학자대회에서 이 문제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으며, 한 달 후 과학원 력사연구소에서도 삼국의 사회경제구성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의 결과로 나온 논문집이『삼국시기 사회경제구성에 관한 토론집』이다. 과학원 역사연구소, 1985,『삼국시기의 사회경제 구성에 관한 토론집』.
에서 더욱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이 토론에서 나온 여러 학자들의 논지는 대별하여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 일찍이 노예소유자사회가 존재하였다(이하 ‘노예론자’로 약칭)고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다(이하 ‘봉건론자’로 약칭)는 것이다. 입장 대립의 주요한 원인은 그들이 취한 방법론상의 문제, 특히 노예와 농노를 구분하는 징표에 대한 견해 상 차이와 동방 노예소유자사회에 관한 의견 차이에 있었다. 송호정,「전근대사의 시대구분」, 『북한의 한국사인식 Ι 』, 한길사, 1990, p.21.
토론자들은 모두, 우리나라 역사에서 노예소유자사회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삼국 시기의 사회경제구성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토론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 논의가 논문집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예제사회의 유무 문제를 토론하는 데 있어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문제를 빠트리고 삼국시대부터 출발하였다는 것은 한계로 지적될 수밖에 없다. 또한 토론에 참가한 고고학자들조차 삼국의 사회경제구성을 논하는 데서 고고학적 자료의 적용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도식적 차원에서만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을 적용하고 있었다. 송호정,「전근대사의 시대구분」, 『북한의 한국사인식 Ι 』, 한길사, 1990, p.21.


먼저, 임건상·백남운·한길언 등 흔히 노예론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단계설을 그대로 수용하여 삼국시대를 노예제 사회로 간주하고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를 봉건제 사회로 설정하였다.
참고문헌
1. 강만길 외, 『디지털-한국사』, 한길사, 2000.
2. 도면회,「북한의 한국사 시대구분론」,『남북역사학논총2 · 북한의 역사학(1)』,
경기도 : 국사편찬위원회, 2002, 295-326쪽.
3. 도면회,「북한의 한국사 시대구분론」,『북한의 역사 만들기』,
서울 : 한국역사연구회 북한사학사연구반 · 도서출판 푸른역사, 2003, 59-85쪽.
4. 송호정,「전근대사의 시대구분」,『북한의 한국사인식 Ι 』,
서울 : 한길사, 1990, 13-45쪽.
5. 이현희,「북한에서의 시대구분과 그 특징」,『한국사의 시대구분에 관한 연구』,
경기도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457-480쪽.
6. 전덕재,「봉건제사회의 기점을 언제로 볼 것인가」,
『1991 봄 계간12호 역사비평 ; 특집2 남북한의 ‘우리역사 시기구분’을 둘러싼 쟁점』, 서울 : 역사문제연구소 · 역사비평사, 1991, 233-243쪽.
7. 최광식, 「남북한의 ‘한국사 시대구분론’비교 연구 -고대와 중세의 기점을 중심으로-」, 『제2회 고대사학회 학술대회 : 공동주제 ; 세기 전환기 역사학의 반성과 전망』,
역사학연구회(구 고대사학회), 2000.
8. 하일식,「노예제사회는 존재하였나」,
『1991 봄 계간12호 역사비평 ; 특집2 남북한의 ‘우리역사 시기구분’을 둘러싼 쟁점』, 서울 : 역사문제연구소 · 역사비평사, 1991, 223-232쪽.
9.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강의』, 한울아카데미, 1989, 31-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