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상처와 분단 고착화

 1  한국전쟁의 상처와 분단 고착화-1
 2  한국전쟁의 상처와 분단 고착화-2
 3  한국전쟁의 상처와 분단 고착화-3
 4  한국전쟁의 상처와 분단 고착화-4
 5  한국전쟁의 상처와 분단 고착화-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한국전쟁의 상처와 분단 고착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한국 전쟁의 상처

1)드러나지 않았던 상처

2) 남한에서의 학살

1]국민 보도 연맹사건

2]형무소 재소자 학살

3]함정학살

4]미군에 의한 학살

3)북한에서의 학살

2. 분단의 고착화

1)내부적요인

2)외부적 요인

3. 참고자료
본문내용
3)북한에서의 학살
북한에서의 민간인 학살의 주체 세력은 크게 미군, 국군, 우익단체에 의한 학살로 파악할수 있다. 우익단체에 의한 학살의 희생자는 대부분 공산당원이거나 정권기관, 대중단체 등에서 활동사람들, 그리고 피난민이었다. 그러나 이북에서의 학살의 희생자를 논함에 있어 '좌익혐의자'에 대한 해석이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광범위 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여러 논문에서 이북의 학살에 대해 객관적 자료의 고증이 어려움을 들어 완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남한에서의 학살의 희생자는 '보도 연맹원'이나 '형무소수감자'와 같은 일정한 형식을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나 북한의 경우는 활동가가 아닌 일반 농민이나 가족의 희생이 컸다. 이신철, 「6 · 25 남북 전쟁시기 이북지역에서의 민간인 학살」, 『역사와현실』54, 2004, p149.
북측에서 내세우는 대표적인 학살의 예로는 황해도 신천면 경지리의 우말제 가족의 경우이다. '열성 농민'이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우말제의 남편을 비롯한 7명이 희생되었다.
직접적인 학살에 빠지지 않는 단체가 '치안대'와 같은 극우무장단체인데 대표적인 예가 황해도 신천의 대량 학살이다. 이 학살을 두고 미군이 주체가 되어 주동했다는 논의가 활발한데, 다음 증언에서 한국전쟁이 미국이라는 이민족과 북이 벌인 싸움인 동시에 우리 민족 내부에서 벌어진 적대적 이데올로기간의 투쟁이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죽여야지, 빨갱이는 죽여야지, 왜? 그놈 살려두면 우리 10명, 20명씩 죽이니까, 그 놈 하나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10명, 20명씩 죽어야 되니깐 그놈은 죽여야 한다. 빨갱이는 죽어야 한다." 이신철, 위의 논문 p154 재인용.


서로 다른 이민족이 한편이 되고, 같은 민족이 적이 된 상황은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종족적 대립으로 전환시켰다. 학살 가해자는 빨갱이를 죽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학살을 정당화했다.
이북에서는 우익단체에 의한 민간인 학살뿐만 아니라, 미군에 의한 학살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1950년 7월 20일 흰 옷 입은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발포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또, 미군의 대규모 폭격은 초기의 군수시설이 목표가 되었으나, 나중에는 민가와 저수지등에 대한 폭격으로 확대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전쟁 전 후의 민간인 학살』김득중
『한국전쟁과 양민학살』서중석
『한국정쟁 양민학살의 양태 분석』
『역사와현실』-「6 · 25 남북 전쟁시기 이북지역에서의 민간인 학살」 이신철
『노근리 사건 몇가지 검토』최병수
『강대국의 긴장완화와 분단 고착화』아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