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조선왕조실록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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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학] 조선왕조실록 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조선왕조실록 – 이은복
Ⅱ.수정실록 – 박혜원
Ⅲ.송시열과 실록 – 이준영
Ⅳ.실록에 나타난 궁녀 - 박주국


본문내용
『조선왕조실록』은 태조(太祖: 1392년 즉위)에서 철종(哲宗: 1864년 승하)까지 25대 국왕 472년간의 역사를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거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역사책이다.
『조선왕조실록』 은 국보 15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내에서의 문화재적 가치를 이미 인정받은 셈이다. 그런데 1997년에 유엔(UN) 산하 기관인 유네스코(UNESCO)의 세계유산위원회(WHC)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아, 그 의미가 전 세계로 확산되게 되었다.

편찬 시기
조선의 역대실록은 왕이 승하한 직후에 새 왕이 즉위하면 곧바로 선왕의 실록을 편찬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러한 전례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조선의 첫 번째 실록인 『태조실록』을 편찬할 당시에 이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사관들은 선왕의 실록을 곧바로 편찬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비록 왕은 죽었어도 그 왕대에 활약한 신하들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필화의 불상사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당시에 실록 편찬의 담당자였던 영춘추관사 하륜은 오히려 노성한 신하가 죽지 않았을 때에 본말을 갖춰서 실록을 만들어야한다고 하면서 선왕이 승하한 직후에 실록을 편찬하길 주장했다. 게다가 예조에서도 중국의 실록편찬을 전거(典據)로 제시하면서 하륜의 주장에 동조했다. 이에 태종은 하륜의 손을 들어 주었고, 그 이후부터 왕이 죽은 직후 곧바로 실록을 편찬한다는 전례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 실록 편찬의 담당자였던 영춘추관사 하륜은 오히려 노성한 신하가 죽지 않았을 때에 본말을 갖춰서 실록을 만들어야한다고 하면서 선왕이 승하한 직후에 실록을 편찬하길 주장했다. 게다가 예조에서도 중국의 실록편찬을 전거(典據)로 제시하면서 하륜의 주장에 동조했다. 이에 태종은 하륜의 손을 들어 주었고, 그 이후부터 왕이 죽은 직후 곧바로 실록을 편찬한다는 전례가 세워지게 되었다.

수록 내용
왕이 죽은 후에는 춘추관은 실록청을 설치하여 실록편찬을 시작했다. 실록청에서는 편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미 준비된 자료 외에 다른 자료를 수집했다. 각 관청의 업무일지라고 할 수 있는 등록류, 「승정원일기」, 「경연일기」, 「비변사등록」, 「일성록」, 「 조보(朝報) 」 등의 관찬자료와 양반 개인의 문집, 야사(野史)를 비롯하여 민간에 떠도는 구전 등의 민간자료까지 모두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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