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생애와 업적-대동여지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

 1  김정호의 생애와 업적-대동여지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1
 2  김정호의 생애와 업적-대동여지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2
 3  김정호의 생애와 업적-대동여지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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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정호의 생애와 업적-대동여지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들어가며
고지도 제작의 역사적 배경
김정호의 생애와 업적
대동여지도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맺 음 말

본문내용
2. 고지도 제작의 역사적 배경

우리나라 고지도는 세계지도(천하도)·동아시아지도·전국도·도별도·군현도·관방도(關防圖) 등으로 구별할 수 있으나, 18세기 중엽 정상기(鄭尙驥) 지도가 출현하기 이전까지는 관찬지도(官撰地圖)가 주류를 이루었다. 정상기 지도의 출현 이후에도 그 성과를 흡수한 관찬지도가 영·정(英·正)시대에 여러 차례 제작되어, 18세기 말까지 지도제작의 주도권을 국가가 쥐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말∼19세기 초의 학인 홍석주는 '우리나라의 지지(地志)는 중국에 비하여 매우 소략하지만, 지도의 자세함은 중국을 능가한다'고 하여 우리나라 지도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는데, 현존하는 수 천 점의 조선후기 고지도는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고지도가 뛰어난 것은 '도(圖)는 형(形)이요, 서(書)는 언(言)이다. 형이 있고 나서 언이 있다'고 한 정조의 말에서 보이듯, 지도의 중요성을 국가가 충분히 인식하고 지도 제작에 임하였다는 데 원인이 있다.
지도 제작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것도 지도 제작에 대한 국가의 성의를 말해 준다. 산수의 형세를 풍수 지리적으로 읽어내는 상지관(相地官), 거리를 측량하는 산사(算士), 지지(地誌) 전문가인 관리, 그리고 지도를 직접 채색으로 그려내는 화원(畵員)의 협력이 지도 제작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사찬지도(私撰地圖)는 이러한 협력 체제를 갖출 수 없어서 관찬지도를 토대로 재편집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경우 거리 실측은 개인이 할 수 없지만, 편집 기술은 관찬을 능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상기 일가나 정후조 일가 그리고 김정호와 같은 우수한 지도제작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 풍수 지리적 특성

지도 제작은 토지측량 및 좌표 설정 등 편집 방법과 관련되는 과학의 발달에 따라 시대가 내려갈수록 정밀해진다. 지도발달사의 시대구분이 그래서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지도는 근대지리학이 수용되기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온 초시대적 특성이 발견된다. 그것은 음양오행사상에 바탕을 둔 풍수 지리적 관념의 투영이다.
우선, 우리의 국토를 살아있는 인체에 비유하여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장각 소장) 하단에는 백두산이 인체의 머리요, 대령(大嶺 : 백두대간)이 척추요, 호남의 제주도와 영남의 대마도를 두 다리에 비유한 설명문이 보인다. 이러한 설명문은 모든 지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의 지도에서는 거의 공통적으로 대택(大澤:천지)을 안고 있는 백두산을 크게 강조하고, 거기에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을 끊어지지 않은 척추의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제주도는 우리 땅인 만큼 당연하지만, 우리 땅이 아닌 대마도도 적어도 지리적 관념으로는 국토의 한 다리로 인정하여 어김없이 그리고 있다.
참고문헌
1) 한국사 시민강좌 23집(1998), 양보경
2) 한국 문화역사지리 제 7호 (1995.8),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편집부
3) www.angangi.com
4) 최신 교학지도집, 이찬외 2명, 교학사, 1995
5) "한국인의 과학성 탐구 : 옛지도", '과학동아', 동아출판사, 1995,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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