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pptx2.한국현대문학에 나타난 성(姓)담론에 대한 고찰
3.영화에서 나타나는 성담론..
‘두더지처럼 어둠 속을 응시한다, 하원. 적막하고 푸르구나. 귀가 차게 고독을 느낀다. 뜨거운 설탕이 먹고 싶다, 하원’
차갑고 하얀 느낌과 깊은 어둠, 고독, 뜨거운 갈망이 시각, 청각 미각, 촉각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온몸의 감각기관이 열리면서 서로 어우러져 공감각적 이미지를 혀로 핥아보는 느낌이다. 감탄사처럼 붙어 있는 '하원'이라는 이름은 하-라고 입김을 내뿜듯 푸른 어두움에 하얀색의 차가운 기체를 뿜어낸다. '원'에 이르러서는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꿀꺽 하얀 입김을 뜨겁게 삼키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색깔의 선명한 대비로 주제를 그려내고 있다. 흑백 텔레비전이라는 제목도 색깔의 선명함을 대비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윤대녕은 한동안 검은 캠퍼스를 응시하다 푸르고 적막한 고독의 형상을 찾아내었다. 그것을 촉각과 미각을 이용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구현해낸다. 흰 고독과 뜨거운 욕망이 설탕처럼 혀끝에 닿을 것 같다. 뜨거운 용암이 식도를 타고 내려온다. 그 차가움과 뜨거움의 흰 통로 끝에 하원이라는 여자가 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단 두 줄의 문장으로 모든 감각의 수문을 열어 젖히며 시작한다.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한 사건을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과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근친상간과 이복자매 하원과 정원의 동성애적 요소, 주인공과 두 자매의 사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들이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처럼 느껴지게 한다. 흔히 국어 시간에 배워오던 근대 문학들에서 느껴지던 픽션이라는 이미지 대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거나, 내 경험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의 섬뜻함이 느껴진다. 이런 극도의 사실감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수많은 이미지와 상징들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의 제목인 ‘흑백 텔레비전 꺼짐’에 대한 물음에 작가는 “밀레니엄을 앞두고 80년대, 90년대의 정체성이 새 시대와 함께 종료되고 디지털, 밀레니엄의 분기점에서 고민하면 창작했다.” 라고 밝히며 “지난시대의 마지막 회고.” 라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즉, 흑백으로 대변되는 과거의 이미지, 작품으로 따지자면 하원의 이미지와 밀레니엄, 정원으로 대표되는 현재 또는 미래의 이미지를 서로 대비시키면서 일도라는 일인칭화자를 통해 그 이미지를 표현해 내고 있다.
하원은 흑백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고독한 순수 자아를 표상하고 있다.이런 흑백과 순수자아의 이미지인 하원은 진한 코발트빛 시계, 푸른 바다와 하늘색 블라우스, 연초록 바다, 빨간 공 등의 선명한 색채로 부각되고 있다. 이것은 흑백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흰색과 검은색이라는 의미만이 아닌 과거라는 큰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하나의 단편이다. 혹은 선명한 색채로 부각되는 하원이 지글거리는 흑백 텔레비전 속에서 안녕을 고함으로써 지난 세기와 지난 밀레니엄에 대한 종료를 나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