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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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 목 차 >


A. 서 론 - 동북공정의 의미 및 배경, 인식 실정


B. 본 론


a. 역사적인 부분
- 1. 고구려는 어떤 민족인가
- 2. 벽화와 언어를 통한 분석
- 3. 중국내 고구려 유적지에서 왜곡되고 있는 역사
- 4. 중국 측 문헌이 말해주는 우리 역사들


b. 경제적인 부분
- 1. 고구려의 대표 유적
- 2. 중국이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한 유적지 자료


c. 교육적인 부분
- 1. 중국의 역사왜곡과 역사교육
- 2. 21세기‘세계화’의 흐름과 바라본 ‘민족주의.’교육의 한계점과 방향.



C. 결 론 -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고찰


본문내용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의 박물관, 역사 교과서 등에서 많이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왜곡이라고 해서 기록된 자료를 수정을 하거나 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로서는 알아채기 힘들거나 너무 당연하게 받아드리게끔 교묘하게 말을 인용하여 써 놓았다는 점이다.

1. 고구려는 어떤 민족인가

東夷舊語以爲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
동이의 옛말에 부여의 별종이라 해서 언어와 여러 일들이 부여와 더불어 많이 같다. 진수(陳壽), 「동이전-고구려」,『삼국지』, 중국 진(晉) 나라 초기.


여기서 언어가 부여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부여가 만약 중국의 역사라면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고 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부여가 중국의 역사라는 주장은 이미 중국의 역사기록에 의해 말도 안되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 부여 편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蓋本濊貊之地, 而夫餘王其中,
개본예맥지지, 이부여왕기중,
아마도 본래 예맥의 땅이었는데, 그런데 부여가 그 가운데에서 왕이 되었으므로, 진수(陳壽), 「동이전-부여」,『삼국지』, 중국 진(晉) 나라 초기.


時句麗·鮮卑彊, 度 以夫餘在 二虜之間, 妻以宗女.
시구려·선비강, 탁 이부여재 이로지간, 처이종녀.
이 때에 [고]구려와 선비가 강성해지자, [공손]탁은 부여가 두 오랑캐 사이에 있음으로써 [부여와 동맹을 맺으려고] 종녀(높은 여자)로서 처를 삼았다(일족의 딸을 [그 왕에게] 시집보내었다).

여기서 먼저 두 번째 자료를 보자. 중국인이 직접 부여를 끼고 있는 고구려와 선비를 오랑캐라고 부르고 있다. 오랑캐는 자기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 또는 족속을 비하하여 부르는 어휘로써 이는 고구려가 중국과는 다른 족의 나라임을 중국인이 스스로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면 첫 번째를 보자. 여기를 보면 예맥이 어떤 민족이고 예맥의 땅이 어디인가를 알아야 이해가 될것이다. 실은 예맥족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논란이 있는 부분이긴 하나 이들이 동이족과 함께 고조선을 이루는 주된 종족이었음은 중국이건 한국이건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맥(貊:貉), 또는 예(濊:穢 ·薉)라고도 약칭하였다. 중국 고전의 기록에 의하면 《시경(詩經)》
참고문헌




서길수,「‘오녀산산성사적진열관’과 ‘집안박물관’을 중심으로」,『중국의 역사 왜곡 현장에 관한 사례 분석』,고구려연구회
최광식, 「‘동북공정’의 배경과 내용 및 대응방안」, 2004.2.16,
네이버 백과사전 ‘동북공정’
1954년 16만명이던 위구르지역 중국인이 1959년엔 51만명에 이르렀다.
압록강변에 위치하고 있고 고구려가 지금의 환인현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겨 왔다가 평양으로 천도를 한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곳이다. 고구려와 관련하여 가장 역사적인 유적과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고 출토가 된 곳이기도 해서 중국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하여 자국의 역사로 편입을 하려 하고 있다.
「‘중국 동북공정 간판 바꿔 계속 추진 의혹’」,연합뉴스, 2007.04.12.
진수(陳壽), 「동이전-고구려」,『삼국지』, 중국 진(晉) 나라 초기.
진수(陳壽), 「동이전-부여」,『삼국지』, 중국 진(晉) 나라 초기.
네이버 백과사전 ‘예맥’
신용하,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동아일보」, 2007.05.19.
진수(陳壽), 「동이전-부여」,『삼국지』, 중국 진(晉) 나라 초기.
네이버 지식검색 ‘부여’
중국 옥녀산성 진열관의 설명글 이다.
진수(陳壽), 「동이전-고구려」,『삼국지』, 중국 진(晉) 나라 초기.
서길수,「‘오녀산산성사적진열관’과 ‘집안박물관’을 중심으로」,『중국의 역사 왜곡 현장에 관한 사례 분석』,고구려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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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렴(姚思廉),「고구려」,『양서』, 중국 당나라(629).
진수(陳壽),「동이전-고구려」,『삼국지』, 중국 진(晉) 나라 초기.
범엽(范曄),「동이전-동옥저」,『후한서』, 중국 남북조시대.
진수(陳壽),「동이전-옥저」,『삼국지』, 중국 진(晉) 나라 초기.
범엽(范曄),「동이전-예」,『후한서』, 중국 남북조시대.
진수(陳壽),「동이전-예」,『삼국지』, 중국 진(晉) 나라 초기.
요사렴(姚思廉),「신라」,『양서』, 중국 당나라(629).
요사렴(姚思廉),「백제」,『양서』, 중국 당나라(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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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lovegoguryo.com/koguryo/05_exploration.asp?menu_ke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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