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영화] 누벨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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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영화] 누벨바그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제1장 . Prologue
제2장 . 누벨바그 이전 시대 프랑스 영화의 역사
제3장 . 누벨 바그
제4장 . [쥴앤짐, 400번의 구타,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 알아보는
스타일을 그려낸 카메라 기법들 .
제5장 . 프랑소와 트뤼포 그는 누구인가?
제6장 . 영화 파헤치기.
본문내용
‘누벨 바그’가 세계 영화사에서 가지는 중요성
영화는 인간 자신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물론 회화, 음악, 문학과 같은 다른 예술들 또한 영화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사상 내지 상상의 표현으로서의 ‘재현’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집적된 표현욕망을 실현함에 있어서 영화라는 매개체가 가지는 특수성을 우리는 시대적·문화적 측면에서 중요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과거는 물론 미래에 있어서도 영화가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벨 바그’는 당시 프랑스 주류 영화계의 흐름을 거슬러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때의 사상적·이론적·영화내적 특징은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재도 전 세계적으로 그 흔적과 영향을 찾아볼 수 있으며, 나아가 ‘누벨 바그’가 현대 영화의 형상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것은 그저 소비재로 간주되었던 영화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즉 영화는 토론의 대상이 되고 연구되는 대상, 해석되는 대상이 되어갔다. 현재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로 그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영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구경거리였을 뿐이다. 그러나 ‘누벨 바그’ 이후 종전에 있어왔던 영화의 경향과는 완전히 판이하고 독특한 경향들을 전면적으로 형성해갔다. 영화를 연구와 비평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특별한 표현형태를 지닌 아주 특별한 도구였고, 영화는 막연한 범예술적인 기준에서가 아니라 영화 자신의 역사 안에서 이야기되어야만 했다. 김성태,『세계영화사 강의』中「프랑스 누벨 바그」, 2004, 160~163쪽.








제2장 누벨바그 이전 시대 영화의 역사


Ⅰ. 영화의 탄생과 무성(無聲)영화 시대

1. 무성(無聲)영화의 시대

무성영화의 시기는 일반적으로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화가 탄생한 이후 영상과 음향을 일치시킨 최초의 유성영화『재즈싱어』가 등장한 1927년에 이르는 시기를 말한다. 무성영화(Silent Film)은 그 용어와는 달리 침묵상태로 상영되는 영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음악이 영상의 연속성을 보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배우들이 화면의 옆에서 대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영상과 음악이나 대사와 같은 음향이 일치하지 않는 영화를 뜻한다.
무성영화는 대사나 영상에서 비롯되는 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독특한 시각효과가 창출하려 노력했는데, 이런 점에서 무성영화는 유성영화가 갖지 못하는 독특한 표현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2. 영화의 탄생

1829년 ‘잔상(殘像, after-image)’ 빛의 자극이 제거된 후에도 시각기관에 어떤 흥분상태가 계속되어 시각작용이 잠시 남는 현상.
이라는 생리적 현상이 알려지면서, 많은 과학자들은 잔상의 효과를 전달하는 기계인 카메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1891년 ‘토머스 에디슨’은 최초의 실용적인 ‘키네토스코프’를 특허를 내고, 1893년부터 시장에 선보였다. 이것은 한 번에 한 사람씩 그 안에서 돌아가는 짧은 필름을 볼 수 있는 들여다보는 구경거리(peepshow)로 고안되었다. 이것은 관람자가 직접 장치를 들여다보아야만 가능한 형태의 관람 방식이었다. 이후 영사가 불가능한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가 지닌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해서 이동식 카메라인 ‘시네마토그라프’를 만든 ‘뤼미에르(Lumiere)’ 형제는 거리로 나가 실제 생활을 찍었다. 그들은 최초의 영화 유료 상영을 해내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찍어 보급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