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학] 원효설화

 1  [불교문학] 원효설화-1
 2  [불교문학] 원효설화-2
 3  [불교문학] 원효설화-3
 4  [불교문학] 원효설화-4
 5  [불교문학] 원효설화-5
 6  [불교문학] 원효설화-6
 7  [불교문학] 원효설화-7
 8  [불교문학] 원효설화-8
 9  [불교문학] 원효설화-9
 10  [불교문학] 원효설화-10
 11  [불교문학] 원효설화-11
 12  [불교문학] 원효설화-12
 13  [불교문학] 원효설화-13
 14  [불교문학] 원효설화-14
 15  [불교문학] 원효설화-15
 16  [불교문학] 원효설화-16
 17  [불교문학] 원효설화-17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불교문학] 원효설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 목 차 >


1. 머리말

2. 원효소개
2-1 원효의 생애
2-2 원효의 사상

3. 토감우숙
3-1 설화소개
3-2 기존의 설화분석들
3-3 기타분석들

4. 설총에 관한 부분
4-1 설화 소개
4-2 파계의 관한 긍정적 의견
4-3 파계의 관한 부정적 의견

5. 맺음말
본문내용
원효 설화를 ‘탄생, 성장, 출가, 청익, 고행, 오도, 교화, 시적’의 팔상도적 배열을 바탕으로 본다면, 토감우숙은 그 중 고행과 오도 부분에 관련된 설화이다. 수도인이라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고행의 과정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고승 설화 중에 고행과 오도 부분을 다룬 설화가 유난히 많다. 원효 역시 고행과 오도 설화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흔히 ‘원효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은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원효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은 이야기’의 원전은 중국문헌이며, 초기의 국내 문헌에선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중국의 몇몇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961년 중국의 영명연수 스님의 『종경록』, 988년 찬녕 스님의 『송고승전』에 수록된 「당신라국 의상전」, 1107년 혜홍 각범 스님의 『임간록』에 기록된 ‘원효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은 이야기’를 살펴보자.

옛날 동국(東國)에 원효법사와 의상법사가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당나라에 와서 스승을 찾으려 하였다. 그들은 우연히 밤이 들어 노숙하면서 무덤 속에 머물게 되었다. 원효법사가 목이 말라서 물을 찾았다. 그는 왼편에 물이 많은 것을 보고는, 몹시도 달게 그 물을 마셨다. 다음날 원효는 그 물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원래 그것은 시체의 썩은 즙이었다. 그러자, 마음이 불편해 토하려 하다가 크게 깨닫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 듣기에 부처가 삼계(三界)가 유심唯心이고, 만법萬法이 유식唯識이라 했다. 좋고 싫은 것은 내게 있으며, 물(水)에 있지 않구나.” 마침내 고국으로 되돌아가서, 지극한 가르침을 널리 베풀었다. 연수, 『종경록』 11권, 『대정신수대장경』 48권, p.477.


원효법사가 의상과 더불어 같은 뜻으로 서쪽으로 유행(遊行)하고자 떠났다. 그들은 본국(신라)의 해문(海門)이자 당(唐)으로 들어서는 지경에 다달았다. 그들은 큰 배를 구하여 거친 바다 물결을 넘으리라 계획하여, 길을 가던 도중 갑자기 험한 비를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길 옆의 토감(土龕) 사이에 몸을 숨겨 의지코자 하였다. 그들은 거기에 들어가서 습하게 몰아치는 비를 피했다. 이튿날 새벽에 보니 오래된 무덤의 해골 곁이었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고, 땅 또한 질퍽한 진흙길이었다.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웠다. 무덤 앞에 머물면서 길을 나서지 못했다. 또, 그 무덤굴 벽 가운데 기대어 있었다. 밤이 깊지 않아서,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 놀라기도 하였다. 원효가 탄식하여 말하였다. “전날에는 무덤을 토감이라고 생각하고 잤는데도 편안히 잘 수 있었고, 오늘밤에는 그 곳을 피해 잤는데도 귀신이 넘나드는 변을 당했다. 생각 따라 갖가지 일이 생기고, 생각을 없애니 토굴이니 무덤이니 하는 구별이 없어진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마음가짐 하나 탓이다. 이 마음 외에 또 무슨 진리가 있으리오. 나는 당으로 건너가지를 않겠다.” 원효는 짐을 메고 다시 신라로 향해 돌아섰다. 찬녕, 『임간록』, 권4 「당신라국의상전」(『대정신수대장경』 권50, p.729.)


元曉는 황폐한 언덕길을 가다가 밤이 되어 무덤 사이에 자게 되었다. 밤에 심한 갈증으로 옆에 있는 샘물을 손으로 움켜 마셨는데 달고 시원하였다. 날아 밝아 보니 그것은 해골 속의 물이었다. 元曉는 역해서 토할 것만 같았다. 그 때 元曉는 크게 깨우치고는 탄식하며 말했다. ‘마음이 생김에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멸함에 해골이 둘이 아니구나. 부처님께서 三界唯心이라 하셨으니 어찌 우리를 속이리오.’ 드디어 다시는 스승을 구하지 않고 그 날 해동으로 돌아갔다.. 박쌍주, 『원효설화의 상징적 의미』,「교육철학」 v.13~15, 1995~1997. p.145.


위의 세 개의 설화는 각각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원효가 깨달
참고문헌
□ 참고문헌
김부식,『삼국사기』원효 불기전
김상현, 이종찬『지천주의 구실을 한 설총』, 「어문논집」7.8, (1985)
김인환 『기억의 계단』「현대문학과 역사에 대한 비평」
김태준 『원효전의 전승에 대하여』, 「어문논집」7.8, 1985
박쌍주,『원효설화의 상징적 의미』,「교육철학」 v.13~15, 1995~1997. p.145.
신범식,『원효설화 연구』, 불교 춘추사, 2001.
오대혁 『원효설화의 미학』
오대혁 『동아시아 문학과 불교』
오대혁,『원효, 그의 위대한 생애』,「원효설화의 전승과 수용의식」, 불교춘추사, 1999.
찬 녕, 『임간록』, 권4 「당신라국의상전」(『대정신수대장경』 권50, p.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