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작가론]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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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작가론]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소품문.
⑴ 소품문의 정의.
⑵ 소품문의 유래.
① 문학적 배경.
② 시대적 배경.
⑶ 소품문의 특징.
① 소재적 특징.
② 문체적 특징.
⑷ 소품문 창작의 발달 과정.
⑸ 소품문을 창작한 사람들. (이덕무와 동시대 사람들)-이용휴, 유득공, 박제가.

2. 이덕무의 소품문.
⑴ 이덕무에 대한 기존논의
⑵ 이덕무
⑶ 이덕무의 소품문.
⑷ 이덕무의 소품문에 대한 당시 평가.

3. 이덕무의 「이목구심서」
⑴「이목구심서」형성 배경
① 시대적 배경
② 개인적 배경
⑵「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의 의미
⑶「이목구심서」의 내용구성.
① 독서에 대한 열정.
② 전적의 자구와 내용에 대한 고증
③ 의학 및 농업과 관련한 기록.
④ 사물에 대한 인식의 특징- 영처(嬰處)의 호기심.
⑤오륜의 강조와 그 일화의 재해석.
⑷「이목구심서」의 특징.
⑸ 이덕무 소품문의 가치

본문내용
⑷ 소품문 창작의 발달 과정.

18세기 소품문 창작에서 정점을 이루는 인물들은 여럿 있으나 그 중, 백탑파 백탑파란, 원각사지 10층 석탑 인근에 살았던 북학파 시인을 말하는 것으로,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박지원 등이 있다. 현재의 서울 종로 2, 3가 일대는 원각사가 있었기 때문에 대사동(大寺洞) 또는 큰절골로 불렸다. 원각사의 ‘흰색 10층 석탑(白塔)’ 부근에 살던 지식인 집단이 백탑파였다. 종실(宗室)인 통덕랑(通德郞) 이성호(李聖浩)의 서자 이덕무(李德懋)가 영조 43년(1767) 백탑 부근으로 이주하고, 이듬해 양반 출신이지만 스스로 시대의 이단아가 됐던 박지원(朴趾源)이 이주하고, 유득공·서상수·윤가기·이희경 등 서얼 지식인들이 뒤따라 이주해 지식인 촌락이 형성된 것이다.
가 가장 유명하다. 이들 백탑파에는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남공철, 유득공 등이 있으며 이들은 주로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의 실천을 주장하는 다분히 고증학적인 북학파이자 실학파였다. 이들은 중국의 공안파 작가, 경릉파, 그리고 진계유, 탕현조 등의 작가들의 소품을 주로 읽으며 기존 산문에 반하는 스타일로서 소품문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백탑파의 글에는 새와 곤충과 풀을 다룬 이서구의 글과 화초 키우는 법을 다룬 박제가의 글 등이 있으며 이들은 자유롭고 실험적인 글쓰기 방식으로 일상의 소재를 다루었다. 그러나 그들의 글이 가진 이러한 성향들은 반체제적 성향으로 인식되어 지배계층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

기존의 조선의 고문 고문은 중당(中唐)시대의 한유와 유종원이 제창하였다. 육조(六朝) 이래 그때까지 유행하던 변려문(騈儷文)은 기교를 중시한 나머지 허식에 흘러 내용이 허술하므로, 《맹자》, 《사기(史記)》 등의 문장이 가진 간결함 ·힘참·명쾌함이 깃든 문장으로 되돌아가는 일이야말로 산문의 이상이라고 하였다.
은 유가사상의 범주 속에서 지배집단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윤리지향성을 가진다. 조선 500년간 유지되어 사대부들에 의해서만 읽고 쓰이며 조선왕조의 체제 지향적 논리를 선전하므로 조선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따르는 문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소품문은 당시의 지배계층들이 추구하는 정치와 윤리로부터 벗어나 이를 부정하며 개인의 예술성과 서정성을 추구한다. 소품문의 특징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의도적이지는 않았으나 경전과 성현의 말씀보다는 화초 키우는 법, 정원 만드는 법, 사투리 기록, 차와 담배의 가치, 그림 수집 법, 등산동호회 규칙, 시장의 모습 등 다분히 실용적인 내용으로서 고증학적인 성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소품문이 가진 성향으로 인해 정조는 소품문이 유가 사상을 오염시키고 반 유가 사상을 전파할 위험성이 있다는 판단 하에 결국 전통 고문을 어지럽힌 다는 이유로 ‘문체반정’을 감행했다. 소품문을 창작하던 백탑파의 우두머리 격이었던 박지원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고 정조가 출제한 과거 시험에 소품체 과문을 제출한 성균관 유생 이옥을 퇴학시킨다. 군자의 도를 연마하기 위한 방법이 아닌 개인의 개성 추구와 취미 고양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독서와 글쓰기를 방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품문은 소품문이 가진 신변잡기 적이며 일상적인 이야기, 그리고 솔직한 내면 감정의 표
참고문헌
※ 참고문헌.

참고문헌.

박제가 지음; 안대회 옮김, 『궁핍한 날의 벗』, 태학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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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미쳐야 미친다』, 서울: 푸른역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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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공철, 『작은 것의 아름다움』, 태학사, 2006.
임유경,『대장부의 삶』, 역사의 아침, 2007.
안대회, 『고전산문산책』, 휴머니스트, 2008.


참고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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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현, 「만명과 조선후기의 소품문 창작 배경연구」, 『중국어 문학 논집』 제 39호, 2006.
길진숙, 「이덕무 소품문의 특징과 산문교육의 의의」, 『국어문학』 제 43집, 2007.
김경희. 『이덕무의 독서 방법론 연구-「사소절」과 「이목구심서」를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교육대학원, 2008.

참고 사이트.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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