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토지개혁과 남한의 농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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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의 토지개혁과 남한의 농지개혁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작가소개 및 소설 요약
(1)황순원, 『카인의 후예』
(2)채만식, 『논 이야기』
(3)최정희, 『풍류 잡히는 마을』

2. 소설을 통해 바라본 북한의 토지개혁과 남한의 농지개혁
(1)배경
①북한 토지개혁의 배경
②남한 농지개혁의 배경

(2)과정
①북한 토지개혁의 과정
②남한 농지개혁의 과정

(3)결과
①북한 토지개혁의 결과
②남한 농지개혁의 결과

(4)의의와 한계
①북한 토지개혁의 의의와 한계
②남한 농지개혁의 의의와 한계

3.소설에 등장한 당대인들이 바라본 토지개혁
Ⅲ. 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였음에도 한반도가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지니게 된 것은 극심한 냉전이라는 당시의 국제 정세와 관련이 깊다. 또한 이러한 양극화 속에서 통일조국이라는 대의를 망각했던 민족지도자들 간의 대립과 당대의 시류 속에 이성적 판단으로 여론을 형성할 정도의 의식을 갖추지 못했던 일반 민중들의 한계가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분단이 고착화되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분단은 자연스럽게 남북 간의 정치, 이념, 경제 등 사회 전반의 차이를 야기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남한의 농지개혁과 북한의 토지개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 발표에서는 위와 같은 관점을 기본으로 하여, 남북한의 토지개혁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 채만식의 『논 이야기』, 최정희의 『풍류 잡히는 마을』이라는 소설을 통해 남북한 토지개혁의 구체적 양상과 이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을 살피고 최종적으로 이것이 오늘날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하여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본론

1. 작가소개 및 소설 요약

(1)황순원, 『카인의 후예』

①작가 소개
본관은 제안(齊安). 자는 만강(晩岡). 시인으로 등단해서 뛰어난 단편소설가로, 다시 장편소설가로 거듭 변신하면서 문학세계를 넓힌 작가이다.
평양 숭덕학교 고등과 교사였던 아버지 찬영(贊永)과 어머니 장찬붕(張贊朋)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3·1운동 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해 1년 6개월 동안 징역살이를 하기도 했다.
오산중학교를 거쳐 숭실중학교를 마쳤으며, 1934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제2고등학원에 입학, 재학시절 이해랑·김동원 등과 극예술연구단체인 '동경학생예술좌'를 조직했다. 1935년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도쿄[東京]에서 시집 『방가』를 펴냈다는 이유로 평양경찰서에 29일간 구류되었다. 1939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생활하다 1946년 월남했다. 서울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7년 경희대학교 문리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80년 정년퇴임 후 명예교수를 지냈다.

②『카인의 후예』
‘훈’은 평안도 순안의 지주이다. ‘오작녀’는 3년동안 아픈 ‘훈’을 간호해온 ‘훈’네 마름 ‘도섭 영감’의 딸이다. ‘훈’과 ‘오작녀’는 정신적인 사랑을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었다. ‘도섭 영감’은 ‘훈’의 아버지대로부터 충성하며, ‘훈’의 가족 심복 역할을 한다. ‘훈’은 그 자체가 심성이 따뜻한 사람이다. 소작농들의 경작을 돕거나, 물질적인 면에서 많이 베푼다.
그러나 해방이 된 후 북한 지역에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훈’은 지주층으로 사회주의 체제상 없어져야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적’이 된다. 항시 정부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심지어 ‘도섭 영감’까지도 북한 정부에 협력하면서 ‘훈’과 ‘오작녀’의 관계를 못마땅해한다. 그리고 북한 정부는 ‘훈’의 토지를 무상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무상분배를 하려 한다. 북한 정부는 소작농들 즉, 피지배층을 선동하여 그들의 의도인, 지주 계급의 숙청 및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실현하려 했던 것이다. 또한 북한 정부는 지주층에게 가혹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이는 북한 정부가 ‘지주층’의 토지를 몰수한 후 탄광이나 농어촌의 노동인력으로 내보내어 착취했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침내 ‘훈’은 ‘오작녀’의 도움으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사촌동생과 서울로 월남할 생각을 하게 된다. 즉, 북한 정부의 가혹한 탄압을 피해 월남한 북한에 거주하던 지주층들을 ‘훈’이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월남을 계획한 훈은 북한정권에 이용당했다가 버려진 도섭영감을 혁 대신 죽이기로 결심하고 결행에 옮기지만 실패하고 다시금 오작녀에게 달려가면서 소설을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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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rpia.co.kr의 한국사(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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